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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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 김수용
1990년 07월 101호
골짜기가 깊어지고 물이 맑아질수록 일행들의 감탄사도 다양해지고, 몇몇은 이런 산골은 정말 처음이라는 듯이 벌어진 입을 닫지 못하고 있었다.
어제 그저께까지만 해도 별 볼일 없던 농어촌에 공업단진가 황금요강이 들어섬으로 갑자기 비대해진 도시를 떠나 하루쯤 차 소리 안들리는 계곡에서 머리나 식히고 오자는 김선생의 제안에 통갑계원들이 대찬성, 걸치락거린다고 아이들까지도 떼버리고 부부들로만 승용차 두 대의 정원을 채워 삼소 골짜기를 찾아오게 된 내력이었다.
일행들은 이 깊고 깊은 산 속에도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을 보고 신기해했지만, 10여 가구 남아 있는 삼소 주민들이야말로 우물을 봐도 한 우물을 깊이 파라는 속담을 만고의 진리로 깨달은 사람들이었다.
전보를 배달하러 온 우체부도 반드시 한 마디는 하고 돌아서던 삼소마을. 계절을 바꿔 날아가는 철새조차도 앉아 쉬고 가기를 꺼리는 이곳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원효라고도 하고 혜공선사라는 주장도 있는데, 하여튼 일찍 대오각성하신 큰스님께서 산세를 둘러보고 하신 말씀이 “이 골찌기는 자라 배꼽혈에 해당하는 길지로, 대명당에 터를 닦아 집을 짓고 살면 개인의 평생에 크게 세번은 웃을 일이 생길 것이요, 마을 전체로 봐서도 세 번의 파안대소할 기회가 있다”는 선문답 같은 암시를 남겼기 때문에, 실없이 남의 말 믿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곳에다 자리를 잡고 씨를 퍼뜨린 것만은 분명했다.
과연 법력 높으신 큰스님의 혜안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삼소 사람들은 임란이 일어난 사실조차 모르고 살았고, 6·25때도 은은한 포성과 날아가는 삐씨구(B -29)는 구경했지만 빨갱이가 노랗게 생겼는지 이마에 뿔이 돋았는지 주민들은 알 길이 없었다. 두 번의 난리가 이 삼소골만은 고스란히 피해갔기 때문이었다.
삼세판이란 말도 있거니와 동민들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웃고 나면 바로 말세가 온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큰스님의 가피인지 동란 끝난 지가40여 년, 한 세대가 바뀔동안 이곳 삼소골에는 웃음을 짓기는 커녕 늘어나니 한숨이요. 떠나느니 이삿짐이었다. 박 아무개라고 하는 장군이 대통령이 되고부터는 새마을인가 뭔가 하는 운동 덕분에 너도나도 잘 살게 되었다고 이구동성 기뻐하는데, 그놈 새벽종도 삼소골과는 인연이 없어, 서울 큰집 잔치에 다녀 온 종숙이 아비는 석달 열흘 데리민가 테레비 차량에 일손을 놓았고, 방직공장에 취직되어 간다더니만 그해 추석에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나는 옷차림으로 쥐 잡아먹은 입술을 해가지고 빼딱구두를 신고 찾아 온 복순이의 출세를 보고는 동네 처녀들은 하나같이 보따리를 꾸려버렸다.
가뜩이나 사람이 기럽던(그립던) 동네에 처녀들이 꼬리를 감추자 총각들이 그냥 있을 까닭이 없었다. 어쩌면 앵두나무 우물가에 어쩌고 하는 유행가가 삼소골을 소재로 해서 만들어 졌는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떠날 사람은 대부분 다 떠나고, 배운 글 없고 가진 돈 없는 사람들만이 남아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던 이 골짜기에 서서히 활기가 돌기 시작한 것은, 달력 없이도 충분히 잘 지내던 사람들이 주말과 일요일을 손꼽고, 바캉스라나 박카스 철을 목놓아 기다리게 된 것과 때를 같이했다.
등허리에 젊어지는 것이라고는 지게 밖에 몰랐는데, 알록달록한 도시것들이 고생을 사 가며 이 골짜기로 찾아와 뿌리고 가는 돈이 일년 뼈빠지게 일해서 벌이는 수입을 훨씬 웃돌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작년에는 무슨 운수로 뽕인가 변강쇠를 찍으러 온 영화사 사람들 덕분에 파 한 뿌리도 돈 받고 파는 물건이라는 것을 배웠다.
영식이네 할배 같은 이는 도시것들이 카메라를 들고 초가집 촬영을 하려들면 렌즈 앞을 가로막고 서서 손바닥부터 벌리는 바람에 산골인심이 도시 상혼 뺨친다는 소리를 듣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주민들은 수단껏 돈 만드는 방법을 개발해 행락객들이 돌아간 뒤에는 수북한 지전을 헤아리며 입이 찢어져라 흐뭇해하고는 했으니, 삼소의 예언은 모두 적중한 셈인데, 이제 말세만 남았다고 은근히 걱정이 될 때도 있었다.
그런 사정을 까닿게 모르는 김선생 일행은 ‘촌닭백숙’ 전문이라고 숯껌정으로 벽에 간판을 해 놓은 종구씨네 집으로 들어갔다.
울도 담도 없는 들판을 헤쳐다니며 모이를 찾는 촌닭은 구경만 해도 입에 군침이 돌았기 때문이었다.
한 마리 값이 만 3천원 씩이라고 했다.
흥정을 할 필요도 없이 두 마리에 2만 5천원에 합의를 보고, 모처럼 백숙다운 진짜 촌닭 백숙을 먹었다고 좋아하며 산나물과 약초 몇 가지를 사들고 기분좋게 삼소골을 빠져 나오던 일행들이 고개를 가우뚱한 것은 맞은편에서 동네로 들어오던 닭장차 때문이었다.
좁은 길이 막혀서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린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닭장차에는 먼 길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금방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폐계가 하나가득 실려 있었다.
성질급한 이선생이 닭장차 기사에게 물었다.
“아저써, 그게 무어요?”
기사는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부터 뀌고 대답을 했다.
“보고도 모르시겠소?”
“그거 폐계 아니오?”
“잘 알면서 왜 물어요?”
“아니, 닭인 줄 알긴 아는데 이 산골에서 폐계를 어디다 씁니까?”
“케이지에 갇혔을 때 폐계지, 이 공기좋은 곳에 한 달만 제 맘대로 던져 두면 만 3천원 짜리 촌닭이 된단 말입니다. 이제 아셨으면 차 뒤로 좀 빼쇼. 뭐라고? 순 사기라고? 에이 여보슈,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고운 말 좀 쓰쇼. 이게 왜 사기요. 촌사람 도시 가서 시치
미 묵 떼고 사는 것이나, 도시닭 촌에 와서 촌닭 되는 것이나 오십보 백보요. 장군멍군에 피장파장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