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하여 줄곧 큰스님을 모시고 살아 온 시간이 나에게는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편이어서 자연 어른스님의 심부름 등으로 나다니는 일이 잦은 편이다.
한번은 부산에 갔다가 해인사를 돌아오기 위해 기차를 탄 일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탄 차는 보통 기차와는 다른 전동차(電動車)라고 하는 객실이 2량만 있는 옛날 전차를 연상시켜 주는 기차였다.
뿐만 아니라 좌석배치 또한 특이해서 좌석의 반은 차의 진행방향으로 반은 그 반대방향으로 놓여 있었다. 그날 내가 앉은 좌석은 기차의 진행방향과는 반대되는 자리였다.
누구든지 여행을 하게 되면 안락한 의자에 몸을 맡기고 물끄러미 차창 밖을 바라보면서 어떤 감상에 젖기 마련인데, 그 날도 무심히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상한 감흥에 젖고 말았다.
지금까지는 기차를 탔을 때 그 진행방향으로 향한 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차창에 스치는 풍물이 눈에 익어 별 신기로움을 느끼지 못했으나, 전동차의 반대방향으로 앉아서 보는 바깥 풍물은 사뭇 그 느낌이 달랐던 것이다.
차의 진행방향이라면 으레히 길가의 가로수나 전주가 기차의 달림에 따라 내 앞으로 다가와서는 곧 시야에서 벗어나 버렸는데, 오늘은 다가오는 물체는 하나도 없고, 모든 물체들이 멀어져만 갈 뿐이었다. 앉은 자리 하나에 따라 사물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하고, 스스로 감탄하고 있었다.
전동차의 진행방향으로 앉아 가고 있는 사람에게 이런 나의 느낌을 들려준다면 그 사람은 과연 이런 나의 소견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나의 인식을 긍정해 주겠는가? 하는 생각과 그는 결코 긍정해 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와같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똑같은 공간에 있다 하더라도 자기의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개인 개인의 인식과 체험이 엄청나게 다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어떤 전율마저 느껴져 왔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나의 조그만 인식을 가지고 무슨 위대한 진리라도 발견한 것인 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마저도 우스운 것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또한 생각하기를, 결국 이 전동차의 종점인 대구에 도착하면 우리 모두는 내려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앞을 보고 왔건, 뒤를 보고 왔건 간에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오면 누구도 예외없이 그 공간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점이다. 설령 내가 그 전동차 안에서 나와 반대의 좌석에 앉아 온 사람과 각기 자신의 인식만을 옳다고 내내 시비를 걸고 입씨름을 하고 왔다고 가정하더라도, 나는 옳고 상대는 상대대로 옳은 채로 우리는 하차하여야 할 것이다. 그럴 때 과연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 이 시간과 공간, 즉 우리들의 세상을 한 전동차로 비유해 볼 때 우리의 전동차는 어떤 모습으로 가고 있는가?
이 시대의 전동차는 남의 생각을 이해하고 긍정해 주는 평화와 안락의 전동차인가? 아니면 각기 자기 주장만이 옳다고 고함지르며 남을 무시하고 읍박지르고, 자유를 유린하고 진실을 호도하고 있는 불행과 지옥의 전동차인가?
우리 사회가 처해 있는 시간과 공간이야말로 우리 모두 함께 타고 가는 전동차와 같다. 각각의 생각이 다르고 모습이 달라도 그 역사적 종점에 가면 우리 모두 함께 내려야 하는 운명이다.
따라서 그 역사의 전동차를 타고 가는 우리들은 어떤 모습의 승객이어야만 가장 훌륭한 승객일 수 있을 까를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역사의 전동차를 타고 가는 동승임을 깊이 인식하여 모든 승객들을 위한 최선의 논리를 정립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승객 스스로가 승객 스스로의 최선을 다하여야 함을 깊이 명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