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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을 서양에서는 야한 색이라 말한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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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김경주 1990년 07월 101호
여름에 접어들기 시작하면 마음이 항상 들뜨게 된다. 더위에 짜증스러운 권태감도 함께 찾아오지만 여하튼 신선하고 야한 계절이라는 느낌이 먼저 와닿는 것이다.
이런 계절엔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또 훌쩍 어디론가 여행을 가고 싶어진다. 나무 우거지면 매미우는 여름날의 산사(山寺).
먼지 뿌옇게 날리는 산길을 덜컹거리며, 흐르는 땀조차 서늘한 산사에 찾아들면 마음 숙여 합장하고 부처님 같이 싱긋이 웃으시면.
키작은 대나무에 바람이 스치고, 법당에 앉아 있으면 바림이 지나며 향내음을 흩뿌린다.
나는 대개 쉬는 날이나 휴가때면 으레 절을 찾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의 습이랄까.
국민학교 2학년 때로 기억된다.
우리가 어릴 때 가장 큰 행사로 삼는 것은 아마도 소풍이 아닐까 한다.
내가 살던 시골은 칠성사이다도 무척 귀한 아주 시골마을이었다. 그러나 소풍을 가는 이 날은 김밥이랑 새우깡, 사이다를 맘껏 가방에 넣고 달리 갈 곳이 없는 곳이기에 십리나 걸어야 되는 사찰에 가곤 했다.
한약내음 같은 싱그러운 송진냄새가 온 계곡을 꽉 채우고 법당 뒷켠으로 나 있는 조그만 오솔길에는 돌멩이를 쌓아 만든 작은 탑들, 길 양켠에 빽빽이 서 있는 키작은 대나무 숲에서 휘파람 소리 같은 획획 스스슥 나는 소리, 그 모든 것들에 매료되었다.

어느해 여름이던가 몹시 방황할 때, 도피처로서 안식처로서 사찰을 찾은 적이 있었다.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사찰이었는데 그때가 피서철이었음에도,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해수욕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곳이었다.
낮에는 시랑대라 불리우는 곳에 올라앉아-이곳은 빠삐용에 나오는 그런 절벽이 있는 근사한 곳이다-하릴없이 바다를 쳐다보고 밤에는 바다와 마주한 법당 앞에 앉아 멀리 보이는 써치라이트를 보며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며 지낸 적이 있었다.
객방에 누워 일기를 한 움끔씩 찢어내며 무척이나 힘들어 했던 기억이 지금은 희미한 웃음 속에만 남아있기도 하다.
새벽에 스님을 따라 도량석을 돌고 법당에서 예불을 마치고 해가 뜨는 것과 바다안개와 바닷바람에 무척이나 황홀해하며 나를 조금씩 정리해 나갔었다.
씩씩하게 부딪치지 못하고 도피해서 찾아온 곳. 결국은 다시 돌아가야 활 곳에서의 도피란 왜 그리 절실했던지.

어렸을 때 내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풀을 먹인 하얀 모시저고리를 입은 고운 분이셨다. 참빗으로 곱게 빗은 머리를 쪽을 지으시고 정성껏 골라 담은 공양미를 보자기에 싹서 절에 올라가시곤 했다.
법당에서 기도를 하시는 할머니 이마에는 땀방울이 솟아나고 그 흐르는 땀은 저고리를 어깨에 붙여 놓았다. 왜 그리 그때 그 어깨선이 고와보이든지 한참을 쳐다보았었다.
그 당시 무척 개구장이였던 나는 사찰탐험에 들어가 풀이 우거진 오솔길을 걸어 부도도 발견하고 법당 뒷켠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 바위 틈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마시기도 하고 사천왕 앞에서는 더 무서운 표정을 짓겠다고 억지표정을 짓기도 했었다.
더위를 무척 타는 나였음에도 햇살이 한가득 쏟아져 내리는 그곳이 이상스러이 덥지가 않았다.

견우직녀 만난다는 칠석날이었나 보다. 서로가 만나는 반가움이 너무 컸음인지 비도 내리지 않는 더운 오후였다.
휙휙 휘파람처럼 들라는 해녀들의 자맥질소리에 이끌려 내려갔었다. 함께 자맥질을 하며 한스런 한숨처럼 토해내는 휘파람 소리도 함께 내보기도 했었다.
그네들에게는 삶의 소리였을 휘파람 소리가 내게는 단지 흉내의 소리, 그리움의 소리로만 들리고 있었다.
파도소리만이 있는 밤, 바닷바람 맞으려 문 열어놓은 법당에서 절을 하며 해녀들의 삶의 모습, 나의 이기적인 욕심, 연연함, 이런 것들과 어릴 적 할머니의 젖은 모시적삼, 지금 내게 얼마나 커다란 무게로 와닿는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나 보다. 서울에서 공부하던 나는 방학 때마다 시골에 내려갔었다.
지난해에 돌아가신 할머니 산소에도 들르고 절에 올라가면 반갑게 스님께서 맞아주셨다. 차도 달여주시고 여러 가지 이야기도 해주셨다.
“된다는 생각만 있으면 꼭 이룰 수 있어요. 욕심을 내지 말고 최선을 다하면 결국은 경주보살 것이 될 수 있어요.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세요.”
개미가 지나가는 길이라 함부로 걸음도 내닫지 않으시던 스님.
그 후에 어머니께 안부 전하시고 어느 산속 토굴로 들어가셨다는 그 스님이 매미소리 요란한 이 계절에 무척 생각이 난다.

“애기보살 차 한 잔 들어요”
많이 힘들어하고 스스로 정리하고 기도가 끝나갈 즈음에 스님께서 차 한 잔을 내어주셨다.
이겨냈다는 하사품처럼, 이겼다는 전리품처럼 차를 마시며, 오랫만에 시원한 웃음을 날릴 수 있었다.
할머니의 기도도, 해녀의 휘파람소리도, 그 스님의 편안한 웃음도 이 차도 결국은 내 웃음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결국은 또 여름이 찾아오고 휘파람 불며 또 나는 이 야한 여름을 맞이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