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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놈 참 스님 상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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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박수일 1990년 07월 101호
친구로부터 용덕사에 가자는 동행제의를 받은 것은 열일곱 되던 해의 고동학교 여름방학 때였다.
용인에서 하루 네 번 왕래하는 마지막 버스는, 비포장도로 위에서 천식든 노인처럼 헐떡거리며 40여 분 동안 요동치더니 가쁜 기침 후에 한숨 토하듯, 밤 열시의 허허벌판에 우리를 뱉어놓았다. 둘은 진저리치듯 몸을 떨던 버스가 큰 기침으로 날리는 먼지를 고스란히 뒤집어쓰면서 망연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둠이 눈에 익기도 전에 버스 꽁무니의 불빛도 사라지자 하늘의 별들이 쏟아져 내렸다. 어둠의 바다에서 표류하듯 미아가 된 상태에서 바로 앞산 중턱의 불빛을 발견했다. 우리는 그것을 용덕사라고 단정하고 불빛을 등대 삼아 산행을 하기로 했다. 별빛을 의지해서 산 초입까지 갔던 우리들이 숲 속으로 들어가자 어둠은 우리를 완전히 삼켜버렸다. 바로 옆 사람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에 빠져 단 한 걸음도 더 나갈 수가 없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는 상황 속에선 나는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다.
다시 숲 밖으로 나온 우리는 산 아래서 크게 소리치면 절까지 들린다는 친구의 말에 따라, 손나발을 만들고 목청을 최고로 높여 외쳤다.
“스으으으 니이이이이엄임”
몇 번을 외친 후 목이 매어 콜록거리고 있자,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렇게 큰 힘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몇 번의 외침이 오간 후, 어둠에 묻혀 있던 숲 사이로 불빛이 번뜩번뜩 뚫고 나왔다 사라지면서 밑으로 내려왔다. 두 개의 빛을 가져온 행자님을 관옴보살의 화현으로 맞으며, 한밤중 산길을 더듬었다. 산은 높지 않았으나 매우 가파라서 길이 지그재그로 나 있었다. 온몸을 땀으로 적시며 30여 분을 올라가자, 절 밑에서 보았던 불빛의 근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숨도 고르지 못하고 마당에서 합장 반배 드리는 내게, 주지스님은 불쑥 한마디 던지셨다.
“고놈 참 스님상홀세.”
당황한 얼굴과 의아해하는 고갯짓으로 그 뜻을 묻자, 스님은 밤이 늦었으니 우선 샘으로 가서 씻고 자라는 말씀과 함께, 빛 바랜 창호지문 안으로 사라지셨다. 멍청히 서서 직사각형의 뿌윰한 문틀을 바라보다가 그 창호지 문마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땀에 젖은 속옷이 온몸을 후덥지근하게 조이고 있음을 느꼈다.
법당 오른편으로 돌아가면 굴이 하나 있는데, 샘은 그 굴 입구 양 쪽에 있었다. 한 쪽은 물이 차가우면서도 맑았고 다른 쪽은 덜 차갑고 약간 탁했다.
다음날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굴 입구는 너비와 높이가 4미터 쯤 되고 열 걸음 정도 들어가면 서늘한 냉기와 함께 사방이 좁아지면서 한 사람이 편히 앉을 만한 자리가 나왔다. 며칠간을 틀고 앉아 용맹정진하던 선승이 여럿 거쳤을 자리였다. 그곳에서부터 더욱 좁아지면서 위쪽으로 뚫린 굴을 기어올라가면 머리 위로 하늘이 보였다. 굴을 나오면 바로 아래 법당 지붕이 보였다. 굴은 한 15미터 쯤 되었을까.
그곳은 옛날에 용이 수행하던 곳으로, 굴 초입이 용의 머리이고 두 개의 샘은 용의 눈이었는데, 승천하던 날 한 쪽 눈을 다쳐서 한 쪽 샘이 탁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용굴이라고 불린다. 용굴은 용이 수행하던 원력이 스며 있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굴을 세 번 돌면서 기도하면 소원이 성취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웬지, 용이 눈을 다쳐서 승천하는 길을 찾지 못해 흘린 눈물이 샘을 이루고, 용덕사는 그 용의 한을 달래기 위해 지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비극적인 생각을 했었다.
샘에서 몸을 씻으니 온몸에 달라붙던 속옷의 끈적거림은 사라졌지만, 주지스님의 말씀은 귀에서 맴돌며 떠나지 않았고 머리 속에 박힌 채 가슴을 휘저어 놓았다.
“고놈 참 스님상훌세.”
스님의 이 한마디는 열일곱의 나에게 하나의 주술 같이 다가왔다. 당시 상호라는 말 자체도 생소하건만, 웬지 그 말의 의미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은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다음날 아침문안을 드리는 내 얼굴을 살피시던 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물으셨다.
“니 절에 오면 기분이 어떠냐?”
“마음이 편해집니다.”
“꼭 고향에 돌아온 것 같자?”
“네 바로 맞습니다. 스님.”
서울하고도 중구 다동이 본적인 내겐 사실 향수로 다가오는 고향이 없다. 그러나 절에서 느끼는 편안함이 바로 고향에 온 마음일게라고 단정해 버렸다.
“고향에 온 것 같은게 아니라 바로 고향에 왔기 땜에 그런게다.”
의아해하는 내 얼굴을 보던 스님은 또 한마디 하셨다.
“넌 전생에 중이었다. 열심히 수행을 하다가 파계를 해버렸어. 전생에 파계를 했으면 인간 몸 다시 받기가 쉽지 않은데, 네가 전생에 하도 장하게 수행해서 다시 한 번 인간 몸을 받은갑다. 그러니 절이 고향처럼 여겨질 밖에. 허니 너는 이생에 몸을 받은 동안 전생에 못다한 수행을 마저 끝내야 돼.”
“스님상호란 중상이란 말이다. 중상. 중될 상.”
그 말은 열일곱의 내 운명을 결정해 주는 하나의 주술이었다. 회오리바람처럼 나를 감싼 채, 기존의 치기 어린 소망을 모두 날려버리고 새로운 하늘을 열어주는 격한 바람이었다. 이후 난 내 생명의 근원을 발견한 듯 들뜬 흥분에 또다시 몇 밤을 설쳤다.
지금 생각하면 스님의 말씀은 감수성 강한 열일곱의 사춘기 아이에게 던진 농이셨고, 굳이 절이 아니라 도 산에 오면 마음이 불편한 아이가 몇이나 있을까만, 그때의 내겐 그 말씀이 당연히 가야 할 길로서 그리고 가슴설레는 운명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느낀 것도 소위 운명이라면 운명이랄까?
지금은 많이 변했겠지만, 당시의 용덕사는 단청도 안된 열평 남짓한 법당에 조그만 스님방과 대중방이 하나씩 있을 뿐이었다. 산도 별로 수려하거나 크지 않았고 계곡이라 할 만한 것도 없었다.
그러나 수십년 전 여름 밤에 스님의 한마디에 밤을 새우던 용덕사는 비록 머리는 깎지 않았지만, 그 이후 내게 부처님 곁을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묘한 주술을 걸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