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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지(摠持)제일 아난다 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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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등불을 이어온 이 땅의 스님들 - 편집실 1986년 06월 52호
아난다는 범어로 Ananda라고 하며 그 뜻은 환희(歡喜), 경희(慶喜) 또는 무념(無染)이니, 곧 기쁨, 깨끗함이라는 말이다. 아난다 존자는 거의 평생을 부처님의 시자(侍者)였으므로 가장 가까이에서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들었으며 또 한번들은 것은 결코 잊지 않은 총명이 있어 혼히 그를 일러 총지제일이라고 하거나 다문제일(多間第一)이라고 해왔다.
아난다는 석가족의 왕자였으며 부처님과는 사촌간이며 불교 교단의 이단자 데바닫다의 친동생이었다.
아난다는 그 용모가 아름다워 마치 동산 위에 떠 오르는 보름달 같았으며 그러한 용모로 인하여 언제나 많은 여자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으며 동시에 그로 인하여 교단에도 적잖은 물의를 일으킨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의지가 굳었으며 언제나 슬기롭게 행동하였으며 그의 언행과 성품은 자비로우면서도 고결하였다.
아난다는 석가족 일곱 왕자와 함께 출가하였으니 출가할 때에는 스물살이 아직 되지 않았다.
그후 모든 장로들의 추천으로 20살에 부처님의 시자가 되었으며 온 정성을 기우려 부처님을 받들어 모셨다.
부처님의 법이 널리 전파되어 인도 사회의 많은 지식인들이 부처님의 사상에 감명을 받고 부처님을 따라 출가해 날로 승가(僧伽)는 번성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여인들에게는 출가가 허락되지 않았다.
부처님의 이모인 마하프라자파티를 비롯한 500명의 여인들은 젊은 왕자들의 출가에 뒤이어 출가를 희망했으나 부처님께서는 허락하시지 않았다.
여자가 출가해서 비구들과 같이 생활하게 되면 깨끗한 승단의 계율이 지켜지기 어렵고 승가의 질서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질 것을 부처님은 염려하셨기 때문이었다.
세번이나 간청했으나 허락하지 않는 부처님께 아난이 나아가 「세존이시여 마하프라자바티 부인은 부처님의 이모이시며 부처님을 양육해 주신 분이며 다른 오백인도 지난날 부처님을 섬겼던 야수다라비를 비롯한 사카족의 귀족들일뿐 아니라 저토록 법을 배우고자 간청하오니 허락하소서. 불법에 어찌 남녀의 구별이 있으며 절대 평등한 교단에 차별이 있을 수 있읍니까」라고 간청하였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여인의 출가를 허락받도록 하였으며 비구니에게는 더욱 엄격한 계법을 주셨다.
무엇보다도 아난다의 가장 수승한 행적은 부처님의 경전을 결집(結集)함에 있다. 마하가섭을 상수(上首)로 한 500명의 비구들이 결집하였을 때, 30년간이나 부처님을 모셨을 뿐만 아니라 총명한 아난다가 물을 딴그릇에 옮기듯이 맑은 목소리로 부처님의 말씀 한자(一字) 한구(一句)도 틀림없이 송출(題出)하였다.
오늘날 대부분의 경전이 모두 「내가 이렇게 들었읍니다」 하고 시작하는 것도 아난다의 송출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경전은 대개 ①여시(如是)-믿음의 성취와 ②아문(我聞)-들음의 성취, ③일시(一時)-시간의 성취, ④불(佛)-설법하는 분의 성취, ⑤재 처(在 處)-처소의 성취, ⑥여대비구중 0 0구(與大比丘衆O O具)- 듣는 이의 성취등 여섯 성취에 근거하여 성립되어졌다.
이렇게 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남겨진 아함부 경전과 비유경 법구경등이 편찬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결집의 공덕은 순전히 아난다의 비상한 기억력과 30여년을 한결같이 부처님을 시봉한 공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후 아난다 존자가 열반에 드실 때에 히말라야에서 오백 아라한이 찾아와 설법을 청하매 설법하여 주고 그 오백 아라한 가운데 상라화수(商那和修)에게 법을 전하고는 허공에서 여덟가지 변화를 보인 뒤 풍분신삼매(風奮迅三味)에 들어 입적하니 그 사리를 도리천과 사갈라용궁과 비사리와 아사세왕이 각각 보배탑을 세워 공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