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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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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에세이 - 서복순 1986년 06월 52호
유월은 여름으로 들어서는 관문과도 같은 달이다.
뜨락에는 장미가 피어나고 산야에는 귀촉도가 지천으로 울어대는 달이다. 유월이 오면 나는 내 고향의 풍정(風情)을 잊을 수가 없다.
내 고향의 유월이면 강변의 무성한 미루나무 숲과 함께 논에서는 개구리가 밤을 새워 우는 곳이다. 우리들은 유월의 그런 밤에는 평상에 누워 멀리서 둘려오는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들으며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곤 했다.
그리고 이맘때 쯤이면 햇보리쌀이 흔해서 열무김치와 함께 먹는 맛과 갓 캐어온 감자를 푸짐하게 삶아 먹는 맛은 가히 천하의 일미였다. 그것도 모심기를 하고 논두렁에 앉아 먹는다면 더욱 그랬다.
지천으로 피어나던 찔레꽃과 엉겅퀴, 뱀이 나올세라 조심해서 따먹던 뱀딸기의 맛은 어린날의 한 추억이 되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태어나고 자라난 고향을 평생 잊을 수가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특히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가 서러울 때나 낯선 거리에서 당혹해질 때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가 도연명이나 헬만·헛세가 아니라 하더라도 고향은 늘 우리들 마음에 살아 있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나에게 아름다운 꿈을 주었던 내 고향의 산야(山野)는 이젠 내가 그리던 산야는 아니다.
물론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아담하던 초가집도 홀로 걷던 콩밭길도 이미 다 없어져 버린지 오래 되었고, 이 몇 해 사이에 개구리 소리가 아련히 들리던 논은 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찔레꽃과 엉겅귀가 피어나던 곳에는 공장이 들어서 버렸다. 물론 그 만큼의 문명의 혜택을 입게 되었지만 내 꿈속의 고향은 이젠 영영 사라져 버리고 이젠, 내마음 속에만 그 고향의 의미가 살아있을 뿐이다.
사실 고향은 늘 어머니의 품속 같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들의 보편적인 심리인 것이다.
그것은 마치 못나고 무식해도 자기 어머니가 이 세상에서 제일이듯이 찌그러진 초가집이라도 제 고향을 잊지를 못하는 것이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시골 여자였던 자신의 어머니가 하루 아침에, 도시 여자들의 이상한 차림으림 변해 있다면 누구나 당혹감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고향도 마찬가지의 의미를 가진 것이다.
고향의 이미지를 나타낸다고 민속촌을 만들어 놓는다고 그 의미를 대행할 수 있을까 그것은 가짜로 만들어진 고향의 의미는 될지 몰라도 이미 고향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유월이 오면 모진 전쟁 중에 잊어버린 실향민들을 생각하게된다.
그래도 나는 고유한 고향의 의미는 상실되었지만 고향땅에 가볼 수는 있지만 고향땅을 지척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실향민들의 고통은 어떠할 것인가? 하늘도 땅도 옛과 같은데 인간들은 어째서 서로 갈려서 살아야만 하는가?
인간이 만든 주의(主義)니 사상을 인간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갚히고마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저 푸른 들, 맑은 하늘은 무엇이라 할 것인가. 나는 가끔 인간의 본성보다 이데올로기나 사장이 우위에 있을 때마다 강한 회의를 느낄 때가 있다.
이데올로기나 사상은 시류(時流)에 따라 변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영원한 것이 아니겠는가 마치 고향처럼…
그런 의미에서 나는 유월의 산야 앞에 서면 부끄러워진다. 저토록 싱그러운 푸르름 앞에서 인간들의 사악한 마음들이 너무나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들 가슴 가득히 유월의 들녁처럼 더욱 싱그러워지고 아름다워지자. 그리고 마음껏 자유와 평화의 노래를 불러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