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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룻밤의 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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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전상윤 1990년 07월 101호
요즈음은 세월이 좋아져서 휴가철이 오면 갖가지의 교통수단을 동원하여 이젠 전국 어디든지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세월이 되었다.
특히 자가용의 엄청난 증가로 인하여 휴일 오후의 교통체증은 오히려 큰 문제거리로 등장한 지 오래일 뿐 아니라 태고적 정취가 풍겨지던 큰 산들도 도로가 나는 바람에 그 자연의 신비는 없어지고, 대신 사람홍수는 물론이요 그에 따른 쓰레기는 큰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전국 어디든지 명산이면 으레 절이 있기 마련이다. 명산 치고 절이 없는 산은 아마 없을 것이다. 큰 산에는 큰 절이, 작은 산에는 작은 절이 고요히 향냄새를 간직한 채 다소곳이 마치 산유화처럼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아마 33년도 더 된 이야기이다. 그 해 나는 출가를 결심하고 집을 나섰던 적이 있었다. 마침 여름방학이고 해서 학교수업도 없었고 가족들에게는 여름여행을 갔다 오겠다는 핑계도 좋고 해서, 나는 집을 도망쳐 나오듯이 출가를 결심하고 그 당시 고승이시던 스님이 주석하시는 조계산으로 갔었다.
워낙 교통이 좋지 않던 시절이라 버스를 여러 번 갈아 타고 조계산에 막상 도착한 시간은 의외로 늦어 땅거미가 지는 저녁 무렵이었다.
어둑한 산길을 걷노라니 웬지 얼마 뒤 밝혀지고야말, 나의 출가에 대한 홀어머니의 슬픔을 생각하니 마음도 울적해지고, 막연한 미지에 대한 불안까지 겹쳐 나의 발길은 무겁기만 하였다.
물론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수없이 되풀이한 끝에 집을 나섰지만 막상 절이 보이는 동구에 들어서니 더럭 불안해지는 것이었다.
그 동안 얼마나 자주 접했던 절이며, 얼마나 동경해왔던 출가였던가. 그러나 반가운 사람을 갑자기 만나 전혀 할 말을 하지 못했을 때처럼 나는 어둠이 내리는 절 주위만 배회했지 모든 것이 서툴기만 할 뿐이었다.
몇 차례인가 절 주위를 서성이고 있으려니 먼 발치에서 보고 있었던지 한 노스님이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어떤 계기가 주어지기를 기다리던 나는 지옥에서 부처님을 만난 것처럼 뛰어갔다.
“아무래도 당신은 보아하니 출가하러 온 사람 같은데 곧 어둠이 내릴 것 같고 해서 불렀노라”고 나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었다. 이미 공양시간도 끝나 있었지만 스님의 배려로 저녁을 얻어 먹고, 구석지고 한적한 방에서 잠도 잘 수 있었다.
산의 어둠은 의외로 빨리 왔다. 각 당(堂)에 불이 꺼지고 잠을 청했으나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았다.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와 풀벌레 우는 소리가 짧은 여름밤을 밝히고 있었다. 간간히 인근 산에서는 소쩍새가 울고 모기장 밖으로 보이는 수국꽃이 내 머리 속에서 구름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잠시 피곤해 눈을 붙이는둥 마는둥 아침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가 온 산에 메아리가 되어 울리고 있었다.
나는 일어나 세수를 하고 법당으로 가 예불을 올렸다. 예불을 마치고 내 방으로 돌아오자 시자스님인 듯 한 젊은 스님이 나를 부르러 왔다.
그 스님을 따라 노스님 방에 이르자 스님께서는 나를 앉게 한 후 왜 출가하려는지를 물으셨다. 그때의 기억은 어슴푸레하지만 대충 무상(無常)을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이어 가족상황을 물었는데 홀어머니가 계시고 그 어머니가 거의 생계를 I맡아 사시노라고 말씀드리자, 스님은 당장 정색을 하시며 출가도 중요하지만 효는 더욱 중요하다고 말씀하시었다. 특히 홀어머니의 심정을 헤아려 본 적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허락을 받기 전에는 출가할 수 없노라고 단호하게 잘라 말씀하셨다.
“무상함이 급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천륜은 더욱 중요한 것이며, 자신을 낳고 길러준 어머니를 편안하게 해드리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만 중생을 제도할 수 있겠느냐”고 하시면서 “당장 날이 밝는 대로 하산하라”는 명령 아닌 명령이셨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무슨 말을 드릴 수가 없어 쫓겨나듯 하산하고 말았지만, 늘 가슴 속에는 출가의 아쉬움이 남아 있다.
물론 나는 그 날로 집으로 돌아왔으며 어머니를 모시고 평범한 가장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 여름날의 산사의 기억은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이젠 나의 출가를 포기하게 했던 그 노스님도 나의 어머님도 고인(故人)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여름의 조계산을 어찌 잊겠는가? 그 물소리랑 풀벌레 울음소리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언뜻언뜻 출가하고 싶어질 때가 더러 있다. 한때는 문학적인 감수성으로, 때로는 깊은 종교적 법열 때문에도 아마 나는 그때 꼭 출가해야겠다는 확실한 결심과 물음이 적었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출가를 포기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물음을 종종 나 스스로에게 물어보곤 했었지만 사실 지금 생각해도 나는 역시 평범한 인간 그 이상이 아니라는데 쉽게 동의하고 만다.
그래도 다행히 몇년 전부터 조계산 송광사에서는 일반인을 위한 수련법회, 특히 선수행 법회가 열린다고 하니 거기라도 한번 다녀올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단 하루뿐이었던 나의 출가생활을 조금 더 연장하고도 싶고 진정한 출가생활이 어떤 것인가도 알아볼겸 이번 여름에는 그때처럼 혼자서 훌쩍 떠나보고 싶다. 이제까지 살아온 나의 삶을 뒤돌아보기도 할 겸 일상에서 새로운 삶으로의 전환을 다시 한번 꿈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