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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량(  )의 노래(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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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 종림 1986년 06월 52호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있는 것에 대하여 무엇이냐는 것과 어떻게라는 것의 두가지로 생각해 볼수 있다. 있는 것 그것이 무엇이냐고 하는 존재 자체를 문제삼는 것을 존재론이라고 하고, 존재의 문제에 접근하는 태도에 따라서 종교적 철학적 자연과학적인 방법등의 여러가지가 있다.
있는 것에 대하여 창조되어진 것으로 생각하는 태도는 이 세계나 인간을 창조자의 뜻에 따라 만들어진 피조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창조자로서의 절대자나 만물을 주재하는 인격신으로서의 신을 가지는 종교적 태도를 말한다. 자연과학적인 태도는 유물론적인 사고를 말하는 것으로서, 자연의 질료로서 물이나 궁극적 실체로서의 원소 또는 그 질료의 구성에 관한 법칙을 추구하는 접근방법이다. 철학적 접근방법은 존재의 궁극적 실재나 현상계의 원리를 관념적으로 파악하려는 인식의 태도를 말한다.
불교철학에서 가장 근본적으로 삼았던 문제는 실상론(實相論)과 연기론(緣起論)으로 실상론은 있는 것에 대한 실체와 본질에 관한 존재론이고, 연기론은 이루어진 것 즉 현상에 관한 현상론이다.
불타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은 것은 존재의 실상으로서 연기의 법이였으나 녹야원(塵野苑)에서 다섯 비구에게 행한 최초의 설법은 삶의 태도로서의 중도(中道)의 설이 있다. 이 연기의 논리가 불교의 기본교리인 삼법인(三法印)과 사성제(四聖諸)로 체계화되고 중도의 설은 팔정도(人正道)와 육바라밀(六波羅密)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연기(緣起)란 인연생기의 뜻으로 인(因)과 연(緣)이 회합하여 결과를 낳고 서로 의지하는 상의성, 관계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인과 연의 가합(假合)으로 이루어진 관계로서의 존재이고 독립된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저것이 생긴다」는 연기의 원형적인 논리는 상주불변하는 자성을 가진 실체로서의 존재를 부정한 것이다.
불타 당시 인도 사상계의 주류로 베에다의 전통적인 전변설(轉變說:Parmamavada)과 일반 사상계의 척취설(積聚說:Arambhavada)을 들 수 있다. 전변설은 브라흐마(첼:Brahma)라는 유일한 인격신이 있어서 우주를 만들었다는 창조주의적인 설이고, 우주의 근원으로서의 실재인 브라흐마가 변화 분열하여 만유가 생하게 되었다는 유신론적 사고도 베에다 이래의 인도의 전통사상이다. 적취설은 일반 사상계의 사상으로 창조주의적인 인격신의 존재를 부인하고 다수의 원소가 질료가 되어 쌓이고 모여서 만유가 형성되었다는 유물론적인 사상을 말한다. 이러한 전변설이나 적취설의 실재론(實在論)적인 사상에 대하여 상주불변하는 자성을 가진 실체로서의 자아에 대하여 무아를 말하고 상주에 대하여 무상의 이치를 주장하는 연기의 논리야말로 불교가 불교로서 존립할 수 있는 근본적인 입장인 것이다.
연기의 논리는 존재의 실상을 여실이 파악한 불타의 탁월한 지혜요, 인간을 고뇌에서 벗어나게 하는 획기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리고 이 연기의 논리로 현상을 본 것이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면 본체에 적용한 것이 제법무아(諸法無我)이고, 인간의 이상을 말한 것이 열반적정(涅槃寂靜)으로 이것을 삼법인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실채론적인 사고가 낳은 결과이다.
고정불변하는 실체로서 무엇이 존재한다고, 그리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실재론적인 사고는 피조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인격적인 절대신의 관념이나 범신론적인 실재의 개념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는 신과 인간, 본체와 현상, 주관과 객관이라는 이원론(二元論)적인 결과를 낳을 수 밖에 없고, 이 실재론적인 이원론은 존재를 상대화시켜 인간을 모순 갈등 속에서 헤매이게 하는 것이다.
상주불변하는 실체의 개념에 대하여 변화의 개념으로 인식하는 것은 서양 철학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존재를 최초로 변화의 개념으로 본 것은「만물은 유전한다」 라고 말한 혜라크레이토스(Heracleitos:그리스의 철학자)의 사상에서 발견할 수 있다. 객관적인 실체로서의 대상에 대하여 대상은 일정한 관계로서의 구성으로 보고, 관계의 파악이 참된 인식이라고 주장하는 렷셀이나 화이트혜드(Whithead:영국의 수학자)는 논리학 수학을 철학의 중심과제로 삼고 있다. 칸트가 물자체(物自 )는 인식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형이상학적인 실체는 인식의 대상서 제외시켰으나, 신 칸트학파의 카시이러 (Cassirer)는 실체로서의 순수주관도 순수객관도 부정하고 실체성의 문제는 함수로서의 관계나 계열의 수식으로 현상계의 인식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불타가 연기의 법을 깨닫고 다섯 비구에게 행한 최초의 설법은 중도의 설법인데 여기서 말하는 중(中)이란 연기의 발달된 논리로서의 공(空)의 의미나 이원적인 양변을 떠난 초월적인 의미의 중이 아니라 실천한 생활의 태도로서 중간 적당한, 중용의 뜻이다. 불타 당시의 전변설의 입장에서는 만물을 주재하는 절대신을 인격적으로 보는 경우에는 기도나 제사를, 비인격적인 원리로 보는 경우에는 선정을 주로 하고, 적취설의 입장에서는 쾌락주의와 고행주의를 주로 수행의 방법으로 채택하였다.
불타는 출가하여 수정주의(修定主義)의 입장에 서있는 아라라 카라마(alara kalama)의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과 웃타카 라마풋타(Usdaka-Ramaput)의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을 닦았으나 해탈의 길이 아니라고 버리고, 브하가바(Bhagavat) 아래서 고행도 했으나 극단적인 고행의 방법도 무익한 것이라고 버리고 독자적인 새로운 수행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수행의 방법으로 극단적인 고행주의와 쾌락주의를 버릴 것을 설하고 고행에 대해서 이것은 스스로를 괴롭힐 뿐 부질없는 일이며 무익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또 쾌락주의는 탐욕에 빠져 애욕의 만족에 헤어나지 못하는 것도 어리석고 헛된 것이라는 것을, 궁중생활의 쾌락이나 수행시 고행의 경험을 예로 들고 거문고 줄을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두가지 극단을 버린 중도의 길은 마음의 눈을 열어 지혜를 더하고 마음의 평화와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해탈의 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생활의 실천덕목으로 팔정도(八正道)를 설하고 이 팔정도는 사성제(四聖論)의 교리 속에 종합되어 완성된 하나의 체계를 이루게 되있다.
삼법인(三法人)이란 불교의 변하지 않는 세가지 진리라는 뜻으로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을 말하고 일체개고(一切皆苦)을 더하여 사법인으로 말하기도 한다. 공은 존재에 대하여 실체가 없고 자성이 없다는 것으로 연기 즉 관계로서의 존재를 말하는데, 이 공을 시간의 차원에서 모든 현상계를 본 것이 제행무상이라면 공간의 차원에서 실체에 적용시킨 것이 제법무아이다. 그리고 공의 세계 그 자체를 불교의 이상으로 보고 열반적정이라 말하는 것이다.
제행무상의 제행이란 무엇에 의하여 지어진 것 즉 인과 연의 화합에 의하여 형성된 물(物), 섬(心)의 모든 현상을 말하고, 이 모든 현상은 잠시도 쉬지 않고 생멸 변화하여 상주하는 것이 아니고 무상하다는 것이다. 제법무아는 물, 심의 모든 존재에 고정불변하는 실체로서의 아(我)가 없다는 것이다. 실재론에서 말하는 불변하는 자성을 가진 궁극적이고 독립적인 실체로서의 존재를 부정하고 모든 존재는 인과 연이 화합한 상태로서의 존재라는 것이다.
무아(無我)라는 것은 망아의 황홀상태나 무상무념의 무의식의 상태도 아니고, 실체로서의 아의 부정이지 행위의 주체가 없다는 것도 아니다. 열반적정은 인간이 무명으로 인하여 탐진치(貪賑癡)등의 업을 지어 생사의 고해에 윤회하는 고통을 당하게 되는데, 이 탐진치 삼독에 의한 탐욕의 불이 번뇌의 불이 꺼진 고요한 마음의 상태를 열반이라 하고 종교적 실천에 의하여 실현되어지는 불교의 이상을 말하는 것이다.
사성제(四聖諸)라고 하는 것은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제를 말하고 제(論)는 진리 진실이라는 말로 불교의 가장 근본적인 네가지 진리라는 뜻이다.
고제는 존재의 실상으로서 연기의 법을 밝히 알지못하고 무명에 의한 탐진치 등이 일으키는 생노병사 등의 인간의 고뇌를 말한다. 고는 중생의 삶의 양상으로 고뇌로부터 해탈이 불교의 목적이라면 생이 고라는 전제는 불교의 시작이다.
집제는 고제의 원인을 밝힌 것으로 무명을 연으로 하여 생노병사 등의 인간의 고뇌가 생하는 과정을 12인연으로 설명한다.
멸제는 고의 멸에 관한 12인연의 역관(遊觀)을 말하고 그리고 고멸의 이상적 세계에 도달하는 실천수행의 방법을 도제라고 말하는 것이다. 원시불교에서는 37조도품(三十七助道品)을 말하고 있으나 출가자의 수행방법으로 정견(正見), 정사(正思),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正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의 팔정도로 정리되고, 대승불교의 보살의 실천 덕목으로 보시(布施), 지계(持被), 인욕(忍뭘), 정진(精進), 선정(輝定), 지혜(智慧)의 육바라밀(六波羅密)로 발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