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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원행(願行)과 공덕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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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무관 1986년 06월 52호
내 이름은 무한한 수명과 빛이라 불리우리라. 서방정토(西方淨士)란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와 같은 예토(穢士)에 상대되는 말이다. 불교의 수행문을 팔만사천이라 하고 그것을 경절문(經截門)의 선종(禪宗)과 염불문(念佛門)의 정토종(淨土宗)과 관정문(灌頂門)의 진언종(眞言宗)과 언설문(言說門)인 교종(交宗)의 사분(四分)으로 크게 나누고 있다. 이 사종중(四宗中) 정토교는 서방(西方)의 성자(聖者)가 계시는 곳이요 오탁(五潤)의 더러움이 없는 깨끗하고 즐거운 세계에 대한 교설(敎說)이다. 서방정토 극락세계(極樂世界)는 시방정토(十方淨士) 중의 아미타불(阿彌陀佛)이 현재(現在)하시는 정토로서 다른 정토보다 수승(殊勝)한 세계이다.
경전에서 정토란 미(迷)한 인간이 사는 세계가 아닌 불국토(佛國士), 불국(佛國), 불세계(佛世界), 불찰(佛利)이라고도 한다. 이 불찰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이 사는 세계라는 뜻의 부처님이 만든 청정한 세계라는 의미와 부처님이 미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출현하신 미한 세계 즉 청정한 국토가 아닌 중생제도를 위한 오염된 세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바로 대승보살이 교화활동을 하기 위해 머무는 세계를 의미한다. 방광반야경 건립품(放光般若經 第十九建立)에서는 “수보리가 보살은 어떻게 잘 불토를 맑힘니까? 하고 여풍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처음 발심(發心)한 이래 항상 몸과 입과 뜻을 깨끗이 하고 따라서 다른 사람을 감화시켜 몸과 입과 뜻을 깨끗이 하게 하며… 이런 까닭에 보살이 모든 악한 것을 버리고 스스로 육바라밀(六婆羅密)을 향하며 또한 다른 사람에게 권해서 육바라밀을 행하게 하며 이 공덕을 가지고 중생과 함께 불국의 청정(淸淨)을 구한다”고 하였다. 이에 의하면 불도를 수행함에 있어서 자기 자신의 몸과 입과 뜻의 삼업(三業)을 청정하게 하고자 구체적 실천 덕목으로서 육바라밀의 행이 설해지고 있다.
이와 같이 국토를 청정히 하는 정토의 행은 현세를 청정한 나라로 하고자 하는 것과 현세와는 별도의 다른 곳에 청정한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두가지의 의미가 있다. 이러한 정토의 존재를 설한 가르침은 북방(北方)에 전래된 대승불교 국가에서만 발전하였다.
희망과 빛의 세계 당신의 이름(莊嚴)에 돌아가게 하소서.
극락세계는 수행자가 보살도를 완성하고 깨달음을 연 세계이다. “무량겁전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이 출세하시니 그 나라에 교시가(橋尸迦)라는 임금이 있었는데 보리심을 내어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법장비구(法藏比丘)가 된 뒤 세자재 왕부처님 앞에 나아가 깨달음을 열어 성불할 때 가장 수승한 정토를 만들어 일체의 사람들을 이 정토에서 구하겠다고 발원하고, 오겁(五劫)동안 사유하여 사십팔원(四十八願)을 세우고 육바라밀의 보살도를 닦았다. 그 수행은 영겁에 걸친 오랫동안의 수업이었다. 그는 인간계 보다 천상(天上)이나 장자(長者) 거사(店士) 바라문(波羅文) 국왕(國王) 전륜성왕(轉輪聖王) 욕계(欲界)의 육천왕(六天王)과 범천왕(梵天王)으로 태어날 때도 이 원과 수행을 버리지 않고 항상 보살도를 닦았다. 또 많은 부처님을 공양하고 많은 사람들을 인도했다”고 무량수경 (無量壽經)에 설하고 있다.
이 정토의 위치는 화엄경에서는 “연화장세계(運華藏世界) 제일 아래에 풍륜(風輪)이 있고 풍륜 위에 향수해(香水海)가 있으며 향수해 가운데 대연화(大違花)가 있으며 연화위에 십불가설(十佛可說) 불찰 미진수(微塵數) 찰종(利鍾)이 있으니 이것을 화장세계라 하며 많은 찰종은 모두 이십중세계(二十重世界)로 되었다. 그 한복판에 있는 찰종의 제십삼층(第十三層)에 우리가 살고 있는 사바세계가 있는데 십삼불찰(十三佛刹) 미진수 세계로 둘러 싸였으며 사바세계의 서쪽으로 십만억 세계를 지나가서 극락세계가 있으니 사바세계와 같이 제십삼층에 있다.
이 정토의 모양을 아미타경(阿彌陀經)에서는 “대지(大地)는 금(金), 은(銀), 유리(琉璃), 산호(珊湖), 호박(琥珀), 자거(硬硬), 마노(硬硬)의 칠보(七寶)로 되어 아름답게 광명이 비치고 있고, 이 칠보의 땅은 갓이 없이 넓다. 또 높은 산과 큰 바다와 호수 크고 작은 계곡과 우물등이 없이 평탄하다. 춘하추동의 네 계절의 변화가 없고 항상 온화하여 몸에 적응하기 좋은 곳이다. 따라서 이 나라는 칠보로 된 수목이 정연(整然)하게 무성하며 가지와 잎과 꽃과 열매가 아름다운 칠보로 빛나고 시원한 바람이 이 나무들 사이에 불면 기묘한 음악을 연주한다.
그 가운데에 아미타불이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가 있으니 높이는 사백만리며 가지의 넓이는 이십만리나 되며 칠보로 되어 있다. 따라서 월광마니(月光摩尼)와 지해륜보(持海備寶) 등은 모두 보배중의 왕이라는 것으로 장식되어 있다. 또 강당(講堂), 정사(精舍), 궁전(宮嚴), 루각(樓聞) 등의 뛰어난 건물이 있고 모두 칠보로 되어 있다. 이러한 건물의 좌우에 크고 작은 연못에 팔공덕수(八功德水)가 가득하다. 못의 언덕에는 전단향(格檀香) 나무가 있고 향기가 감미롭게 풍기고 청색, 홍색, 황색, 적색, 백색의 연화가 되어 있다”고 한다.
진실한 자기로서 영원한 붙다. (唯心淨土 自性弼院)
경전에서는 무량수불의 광명은 모든 붓다의 광명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이 광명은 널리 시방세계를 비추며 장애가 없다. 이 광명이 비추는 곳에 삼독(三毒)의 번뇌가 소멸되고 신심이 생기고, 명을 마칠 때 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 이 붇다는 영원의 수명을 가졌고 이 정토에 머무는 성자도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이 성자들의 수명도 또한 한량이 없다.
저 아미타 붇다의 세계에 왕생한 사람은 몸도 입도 마음도 청정하다. 몸에서는 청정한 신구(身軀)를 입에서는 미묘한 음성을, 뜻에서는 육신통(六神通)을 얻을 수 있다. 주거(住居)하는 궁전과 몸에 의복과 음식과 그 밖의 미묘한 꽃과 향과 장식은 육계 육천과 같이 뛰어난 것이다. 식사를 하고자 하면 칠보식기에 생각나는 대로 나타나며 그 가운데 감미로운 음식이 가득하다. 이와 같이 정토는 쾌락안은한 곳으로 항상 변하지 않는 진리 뿐이다.
극락세계는 오욕(五欲) 등이 없으므로 욕계가 아니다. 또 극락정토는 땅에 의거(依居)하므로 색계가 아니다. 그리고 극락세계는 형상(形象)이 있으므로 무색계도 아니다.
이 극락세계의 교주이신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Namo Amita--Buddha)의 나무(Namo)는 중생이 부처님께 진심으로 귀의(歸依), 경순(敬順)한다는 말로 귀의(敬依), 귀경屬敬), 경례(敬禮), 구아(救我)의 뜻으로 몸과 마음을 바치는 절대 신앙의 뜻이다. 아미타(Amita)는 헤아릴 수 없다는 무량(無量)의 뜻이며 불다(Buddha)는 깨달은 사람 각자(覺者)의 뜻이다. 나무아미타불은 “무량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의 뜻으로 무량수경, 반주삼매경에 나타난 의의이다. 아미타경과 칭찬정토불수섭경(稱護伊土佛受攝經)에도 “저 여래와 모든 중생의 수명이 무량무수대겁(無量無數大劫)이다. 또 여래는 항상 무량무변한 묘광(妙光)을 나투어 시방불토(十方佛士)를 두루 비추어 불사(佛事)를 베풀어 장애가 없기 때문에 무량광이라고도 한다”고 하였다. 무량의 뜻은 이 붇다의 자유자재성(自由自在性)과 절대적인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무량광이란 이 부처님의 공간적 중생 구제의 무한한 지혜능력을, 무량수란 시간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중생구제의 절대능력을 표현한 것이다. 영원한 생명의 아미타 붇다는 죄가 무겁고 복과 지혜가 엷은 범부 중생들이 아미타 붇와 같은 절대자에게 의지해야만 구제를 받을 수 있으므로 아미타 붇다에게 귀의해야 된다는 의미이다.
대승불교에서는 삼세제불(三世諸佛)이 모두 자신의 지혜광명은 무량세계를 비추어 밝히며(慧光照、無量), 수명은 영원한 세월에 지속된다(壽命無數劫)고 하고, 법화경 여래수량품(法華經 如來壽量品)에도공통된 불덕(佛德)을 찬양하고 있다. 모든 불다가 갖춘 불덕이 다 같으나 각각 성불하기 전의 인행시(因行時)의 서원(誓願)이 각기 특별하였으므로 성불후에는 서로 분별이 있게 되고 아미타불이란 이름은 그 붇다의 일반적인 덕성을 고유명사화한 것이라 할 것이다. 이렇게 살펴볼 때 광명과 수명의 무량인 아미타불은 모든 붇다의 근원이 된다. 그러므로 반주삼매경(般冊三味經)에 “과거, 현재,미래 삼세제불은 모두 아미타불의 염불삼매(念佛三味)로 성불한다”고 하였다. 비화경(悲華經)에서는 지난 선지겁(善持劫)에 산제랍(刪提嵐)이라는 세계에 무쟁념(無靜念)이라는 전륜성왕(轉備聖王)이 바로 아미타불의 전신으로 보장여래(寶藏如來)가 출가 성불하니 그 붇다 앞에서 서원하여 정토에서 성불하기를 발원하였다. 이러한 인행시의 내용은 지인경(智印經), 보석경(寶積經), 고음성왕다라니경(鼓音聲王院羅尼經), 법화경(法華經), 대승방등총지경(大乘方等總持經), 대법거라라니경(大法炬陀羅尼經), 일향출생보살경 (一向出生菩薩經), 불설생경(佛說生經), 여환삼마지무량인법문경(如幻三摩地無量印法門經), 뢰확화라소문덕태자경(賴託和羅所問德太子經) 등에 나타나 있다.
감추어진 것을 찾아내어 당신께 돌아가게 하소서. 우리에게는 외치도록 목소리를 가졌다. 믿고 알고 깨달음을 얻어 인격과 지혜의 해탈을 위하여 실천에 옮겨야 한다. 열반경에 말씀하시기를 “믿음만 있고 아는 것이 없으면 어리석음만 더 하고, 아는 것만 있고 믿음이 없으면 교만만 는다. 그러므로 믿음과 앎을 고루 갖추어 실천에 옮기도록 하라”고 하셨다. 용수보살(龍樹菩睡:Nagarjuna)은 지도론(智度論)에서 지혜의 눈과 실천수행하는 발을 하나로 하여서 비로소 청량지(淸凉地)에 이른다”고 하였다.
원시불교에서는 사념처(四念處), 사정단(四正斷), 사신족(四神足), 오근(五根), 오력(五力), 철각지(七覺支), 팔정도(八正道) 등이 실천수행설이다. 그러나 대승불교에서는 각 종파에 따라 그 수행방법도 다양하다.
선종에서는 참선법(參禪法), 유식종에서는 오중유식관(五重唯識觀) 화엄종에서는 일심법계관「一心法界觀),천태종의 일심삼관(一心三觀), 진언종의 아지본불생관(阿字本不生觀), 정토종의 염불관(念佛觀) 등이다.
정토종에서는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행을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아미타경 등에 자세히 말씀하고 있는데 크게 여래정토(如來擇土)의 생인성(生因說)과 중생정토(聚生律土)의 생인설(生因說)의 둘로 나눌 수 있다. 여래정토의 생인은 보살이 정토를 건설하려고 발원하고 실천 수행하는 방법으로 법장보살(法藏比丘)의 사십팔원이 아미타불의 생인이있다.
중생정토의 생인은 보살들에 의해 결정되어 있는 정토에 왕생하려는 실천방법으로 정토삼부경과 반주삼매경에 말씀되어 있다. 염불생인설(念佛生因說), 문명생인설(聞名生因說), 칭명생인설(稱名生因說), 제행생인설(諸行生因說) 등이다.
염불(Budhanusmrti)는 가장 초보적이고 종교적이며 보편적 수행법이다. 부처님을 쉴사이 없이 상호(相好)를 생각하거나 관찰(觀察)하거나 부처님의 명호를 불러 마음에 잊지 않고 새기는 것이다. 잡아함경(雜阿含經 33)에 여섯가지 법(六隨念處)인 염불(念佛), 염법(念法), 염승(念借), 염계(念械), 염시(念施), 염천(念天 :여기서는 極樂이다)이다. “그대는 여래를 생각하도록 하라. 불자가 여래를 생각하면 그 마음에 탐욕과 성냄과 우치에 사로잡히지 아니하고 그 마음이 여래에 대하여 정직하게 되느리라”고 하며 “참으로 마음이 정직한 불자는 부처님의 진리를 믿어 받게 되며, 법을 믿어 받으면 법과 함께 하는 즐거움을 얻고(法說), 법열 얻는 자는 몸이 가볍고 평안(輕安)하다. 경안을 얻은 자는 즐거움(樂)을 받는다. 락을 받는 자는 마음이 정(定)에 든다. 그리고 이것이 법의 흐름(法流水)에 들어 염불을 닦는 것이다”고 하였다. 증일아함경과 장아함경에는 “염불하여 삼악취를 떠나 천상에 태어난다”고 하였다.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Bc 2세기 후반Gre-ece의 국왕Menandros와 Nagasena와의 대화로 엮은 경)에는 “100년간 악을 행하였는데 임종에 한번 염불하면 천상에 왕생할 수 있다고 한 것을 믿을 수 없다”고 한데 대하여 “백의 수레에 실을 만한 돌이라도 배에 실으면 물위에 뜨듯이 사람이 악을 여이고 한 때라도 염불하면 곧 열반에 들어서 천상에 태어난다”고 하였다.
염불하는 데는 실상염불(賣相念佛), 관상염불(觀像念佛), 관상염불(觀想念佛), 칭명염불(稱名念佛)의 네가지가 있고 특히 칭명염불은 구청염불(口稱念佛)로 순수한 타력신앙(他力信仰)이 주장되어진다. 염불을 하는 것은 부처님이 인간을 통해서만 원행(願行)이 이루워지기를 바라고 여기에 호응하는 중생이 자기의 무력을 자인하여 무조건 귀의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부름과 명령에 의해 왕생을 위한 정업(正業)과 정행(正行)의 근본은 칭명염불이며 왕생의 정인이 되는 것이다.
칭명염불에도 몇 가지가 있다. 또 염불수행의 세가지 요건인 믿음(信), 서원(誓願), 부지런히 수행하는 세가지를 갖추어야 왕생하기 쉽다. 불교의 믿음은 화엄경에서 말씀하셨고 법망경(法網經)에서는 “일체의 행을 믿음을 으뜸으로 삼는다. 모든 덕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대승법경(大乘法經)에 “믿음이 최상의 법이다. 이것으로 정각(正覺)을 이루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정토문에서는 특히 일체 중생이 신심 하나로서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믿음에는 바른 마음(正心)과 깊은 마음(深心)과 자비로운 마음(慧悲心)으로 자기자신이 번뇌를 구족한 최악 중생의 범부라는 것을 믿어야 부처님의 서원을 믿을 수 있다.
다음으로 간절한 원(願)을 발해야 한다. 우리는 생사윤회고(生死輪廻苦)에 빠져 있으므로 이를 싫어하고 극락정토의 깨달음의 법열을 사모하여 지은 선업을 회향하여 그 정토에 나기를 원하고 악업을 참회하여 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하며, 혼자만이 아닌 모든 중생이다 함께 일시에 왕생하여 성불하기를 원해야 하는 것이다. 지도론에 “모든 불사를 성취하는 데는 행(行)만 있는 복덕으로 되지 않고 반드시 원력(顧力)이 있어야 한다. 비유컨데 소가 수레를 끌지만 몰고가는 사람이 있어서 가고자 하는 곳에 도달하는 것과 같이 정토에 왕생하는 원도 그러하여 행하는 복덕은 소와 같고 원은 몰고가는 사람과 같다” 하였다. 그러므로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여래십대발원문(如來十大發願文)을 세우셨고 모든 보살들도 사홍서원(四弘誓願)을 세워 정업(正業)을 수행하는 보리심을 발하였다.
그리고 부지런히 수행함인데 아미타경에서는 일심으로 불란하여 마음이 순일하고 청정하여야 한다. 이는아미타불의 정토염불로서 몸이 극락에 왕생활 수 있음을 강조하신 것이다. 관무량수 경에는 극락세계에 왕생하려는 이는 십선업을 닦고 부모를 공경하며, 삼귀계(三歸戒) 받고 위의(威儀)를 범하지 말고, 보리심을 발하여 인과를 믿고, 게으르지 말고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이 급하고 용맹스러운 마음으로 실천수행에 힘써야 한다고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관무량수경에서 정신을 통일하여 정토를 관상(觀想)할 수 없는 말법시대의 범부를 위하여 왕생의 방법을 설하고 상품상생(上品t生)에서 하품하생(下品下生)에 이르는 왕생의 방법을 말씀하셨다. 세친(世親)은 왕생론에서 다섯가지 수행문으로 예배(禮拜), 찬탄(護曉), 작원(作願), 관찰(觀察), 회향(뼈向)을 말씀하였다. 신업(身業)으로서의 예배와 구업(口業)으로서의 찬탄문과 의업(意業)으로서의 작원문과 지업(智業)으로서의 관활문을 그리고 지업방편(智業方便)으로서의 회향문이다. 이는 자리(自利)로서 신·구업과 이타(利他)로서 의업과 지업과 지업방편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토 왕생의 오종정행(五種正行)에서는 독송(讀調), 관찰(觀察), 예배(禮拜), 청명(稱名), 찬탄공양(護曉供養)이라 했다. 이것은 선도(善道)대사의 관경소(觀經疏)에 밝혔다.
무량수경과 관무량수경에는 정토와 왕생하는 방법으로 십념(十念)을 갖추어야 한다고 설하였다. 잡아함경에서는 여래십호(如來十號)를 생각하는 것이라 설했고 미륵발문경(彌勒發問經), 발각정심경(發覺淨心經), 대보척경(大寶積經)에 언급되어 있다. 신라의 원효(元曉)대사는 구체적으로 현요는 은밀의 십념으로 나누고 은밀의 십념은 미록발문경에 설을 들고, 현요의 십념은 관무량수경의 하품하생자의 임종시 십념염불로 왕생하는데 두있다. 이는 범부와 성자가 모두 왕생할 수 있는 길이라 본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온갖 욕망을 지니고 있다. 본능적인 욕구로부터 재산, 명예, 권력, 향락 등을 충족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인생은 사랑과 미움, 은혜와 원수, 시기, 질투등 온갖 근심 걱정 불안 공포 번민의 연속적인 현실을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출요경(出醒經 十卷)에 “범부는 악을 행하더라도 자각하지 못하는데 우치쾌의(遇獅快意) 하나 후에 울독(鬱毒)을 받는다” 하였고 법화경 비유품이나 입능가경(入 伽經)에도 육체적인 욕구생활이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고 항상 의식(依食)과 명리(名利)에 집착하여 번뇌적인 자기 존재를 자각하지 못하는 인간을 범부라고 하였다.
정토불교에서는 지혜가 없고 최악이 깊고 무거운 중생이 염불하여 왕생하는 것이 본원의 정의(定意)라 한다. 그러므로 죄악심중(罪惡深重)의 범부 중생이야말로 가장 적격자(正機)라 하였다. 이것은 생사유전이 최악이라는 의미이다. 나 자신이 번뇌를 구족한 죄업생사의 범부로 지옥에 떨어지게 되어 있는 선근이 업은 인간이다. 그러므로 삼계(三界)의 유전을 벗어날 인연이 없음을 깊이 믿고 정선(定善)의 문에 오르려하여도 의미(意馬)가 광분하여 육진경계(六塵境界)에 머무르고 산선문(散善門)을 바라보려 해도 심원(心遠)이 광분하여 십악(十惡)의 지류에서 허우적거리므로 아미타불의 서원을 믿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각에서 출발하여 믿음의 자세가 갖추어진다. 예를 들면 물을 받을 그릇을 위로 향하여 바로 놓아야 법수(法水)를 담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마음의 빈 그릇을 위로 향하여 바로 놓는다면 법앞에 겸손하고 부드러운 자세로 마음의 문을 열고 아미타불다의 사십팔원으로서 구제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