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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에 가서 별을 보고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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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홍미경 1990년 07월 101호
일년의 반을 뒤로 하고 본격적인 불볕더위가 시작되는 칠월.
성급한 사람들은 벌써부터 찌는 더위 가운데 청량감을 더해준 여름휴가를 설계하며 잔뜩 기대에 부풀고 있을 것이다.
올해도 예년과 같이 몇몇 사람들은 내가 많은 곳을 다녔다는 이유로 물어올 것이다.
“여름 휴가를 어디에서 보냈으면 좋겠습니까?”
이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은 몇해 전부터 한 가지이다.
“해인사에 가서 별을 보고 오세요”
어떤 이는 이 무슨 해괴한 선문답인가 여기겠지만, 해인사와 더불어 바라다보게 되는 별은 단순한 별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자각에 이르는 깨달음의 별이라고 힌트를 준다면 너무 거창한 표현일까?

“와아! 선생님, 별이 억수로 많네요!”
아이들은 저마다 환호와 감탄사를 질렀다.
몇해 전, 내가 담당하고 있던 중학생법회 아이들을 데리고 해인사에서 여름수련대회를 할 때였다. 서른 다섯 명의 아이들과 해인사 운동장 한 켠에 텐트를 치고 2박 3일간의 일정에 들어간 첫날, 큰법당에서 저녁예불과 108참회를 마치고 어둠이 내리는 운동장에 모두들 등글게 모여 앉았다.
평소 스님들이 그립던 아이들은 법보종찰다운 웅자한 가람의 규모며 가사장삼을 수하고 단정히 예불을 드리는 많은 스님들의 모습에 적잖이 감동되고 신심이 나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의 두 눈은 감동에 젖어 빛났고, 다가올 시간들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잔뜩 설레고 있었다.
산 속이 온통 밤의 세상으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짜여진 일정대로 30분간 저녁명상-별바라보기에 들어갔다. 별바라보기를 하는 이유와 방법을 간략하게 듣고 묵언(默言) 속에서 아이들은 저마다 우주여행을 떠났다. 어떤 아이는 가부좌를 틀고 어떤 아이는 엄마없는 아이처럼 쪼그리고 앉고, 어떤 아이는 아예 벌렁 몸을 눕혔다.
사방은 고요했고 어둠 속에서도 나무며 바위들의 명암이 느껴졌다. 간간이 계곡물 소리며 풀벌레 소리, 새들의 깃치는 소리가 적막을 더해주었다.
아! 하는 마음의 울림이 온 우주공간으로 진동되어 퍼져가는 듯한 느낌, 밤하늘은 맑았고 별투성이였다.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바로 이것일까. 무시무종(無始無終)이라는 말도 이해가 가닿을 듯하였다.
올려다보면 볼수록 정말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별의 생태를 보며 나의 존재도 무시무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전생 어디쯤이 시작이고 미래의 어느 지점이 끝이 될 수 있을까. 그래 무시무종이다. 그러면 어째서 무시무종인가?
별들은 크고 작고 혹은 선명하고, 안개처럼 여리기도 하고, 홀로 서 있기도 하고 무리무리지어 엉켜 빛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별무리들은 현기증이 나듯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좌로, 우로 둥글게 또는 타원형으로 빙글빙글 다가왔다가는 멀어져 가물거렸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시골마을은 별천지였다. 여름날 마당 한 켠에 모기불을 피워놓고 평상에서 할머니 무릎을 베고 바라보던 밤하늘, 그때 별은 곧 나의 꿈이었다. 그 밤하늘에게서 얼마나 많은 물음과 꿈들을 키워왔던가. 싯다르타 태자가 어린 날 가졌던 생노병사에 대한 의문을 나도 여름날 밤하늘 별들을 보며 고민했음을 기억했다.
“할매, 사람이 와 죽노?”
“늙어 병들면 죽제.”
“와 아프고 늙노?”
“사람이 태어나면 누구나 다 늙고 죽는기라. 아프기도 하고.”
“와 그렇노? 죽으면 우째되노?”
“사람이 착하게 살면 부처님이 다 알아서 하는 기라.”
“부천님이? 부천님이 어데 있노? 그라만 부천님은 모르는 기 없나? 사람이 와 죽는지도 아나?……홍순이 할매가 죽어서 어디간지도 아나?……저 별들이 와 저래 반짝거리는지 부처님은 다 아능강?”
끝도 없는 물음들, 바라다볼수록 아득하기만 하던 밤하늘을 바라보며 끝없는 물음을 던지다 곤히 잠이 드는 어린 날의 나를 보았다.
할머니 ! 할매―. 오랫동안 잊었던 할머니의 자애롭던 모습이 다가왔다가 별 사이로 사라져 갔다.
국민학교 5학년 가을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지붕 위에 할머니 저고리가 던져지고, 나는 웬일인지 눈물도 나지 않았다.
‘우리 할매도 죽었구나. ’
그 가을에도 밤하늘에는 여름 수풀마냥 별들이 무성했었다.
‘별아! 니는 알겠제 ? 우리 할매는 인제 어데 있노? ’
뒤늦게 별을 보며 나는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러한 이후 머지않아 도시로 전학오면서 별도 할머니도 한동안 내게서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아아! 얼마나 오랫만인가, 이렇게 다시 별들을 만나는 것이. 별과 더불어 싯다르타 태자처럼 존재의 의문에 잠겨 보는 것이 !
죽비를 세 번 올리자 아이들은 모두 우주여행에서 돌아와 느낌 한마디씩을 내뱉었다.
“가만히 보니 별이 모양이 없데예 ?”
“부처님이깨달으실때 봤던 그별에 가보고 왔데이!”
“사기치고 있네 !”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운동장 가득 울려퍼졌고 곧 이어서 가진 상견례 시간에 나는 ‘별’을 불렀다.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앞에 나섰더니
서산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달이 별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별은 뉘별이며 내별 또한 어느게오.
잠자코 홀로 서서 별을 헤어보노라.

밤이 깊어 아이들은 저마다 정해진 텐트 속으로 들어가 단잠에 빠졌고 잠 못이루는 아이들의 얘기소기가 두런두런 들려왔고, 나는 마음이 한없이 한없이 열려와 온 우주를 그대로 다 안을 것만 같았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무작정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대적광전 비로자나부처님 자애가 내 가슴 속에 머무르는 듯했다. 내 존재가 그 부처님에게서 났다고 생각하니 내게서 어둠이란 없는듯 인식되었다.
“별아 니만 빛나나? 나도 빛이다. 언젠가 내 안의 무한한 빛을 끄집어낼 때, 그때는 멀리서 니가 내 빛을 바라보게 될기다.”
그야말로 별 혜는 밤, 해인사의 밤은 깊어만 가고 밤이 깊자 금방 새벽이 왔다. 3시 30분, 죽비소리에 아이들은 끙끙대면서도 일어나 고양이 세수를 하고 새벽예불에 임할 복장과 자세를 가다듬었다. 여전히 별들은 하늘을 돌리며 반짝거렸고 내 마음은 온통 깨달음처럼 화두처럼 ‘별하나의 부처님 부처님 ! ’으로 환희했다.
누군가 내게 “여름 휴가를 어디가서 보낼까요?”물어온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대답할 것이다.
“해인사에 가서 별을 보고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