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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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편집실
1985년 09월 43호
하나의 사물을 오랜시간 동안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사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들어나 보이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심히 흘려 보낸 본질이 홀연히 그 실체를 드러내 보일 때에 발견이랄지, 깨달음이랄지 양과 질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예상치 않게 신선한 기쁨으로 충만되어져 오는 경험이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기쁨과 신선함이 인생을 살아나가는 가운데 단 몇번 정도만 있을 수 있어도, 그 폭이 조금만 넓고 깊었어도 우리들의 삶은 지금의 상태보다 한결 더 풍요로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 어린아이의 눈길에 의해 포착된 진실의 모습이 겉잡을 수 없는 감동을 안겨주기도 한다. 과장하거나 축소시킨 것이 아니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눈은 닫혀 있다는 자각을 심어주는 그러한 아이의 마음은 바로 도의 길을 가고 있는 때묻지 않은 마음과 같은 믿음을 갖게 하기도 한다.
이름없는 무명의 작가, 한 어린아이의 표현 속에서도 순수한 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에 그들의 눈빛을 생각하게 된다. 일생을 오로지 한길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 그 눈길들이 진실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것은 그나마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마음의 눈, 그 열려 있음에 대한 부러움의 심정일 것이다.
8가지의 바르게 걸어가는 길의 덕목을 말씀하신 불타께서 바르게 볼 줄 알아야 하는 것을 첫번째 중요함으로 강조하신 것은 기나긴 고통으로 구도 속에서 체험하신 절실함이었으리라. 빼거나 보태지 않고 세상을 볼 줄 아는 자만이 올바르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며 그러한 바른 사유를 거친 과정만이 완전한 깨달음을 기약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신 그 간곡한 부촉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린 채 살아가고들 있다.
“눈이 열린다” 는 표현을 경전에서 자주 발견하게 된다. 물론 깨우쳐서 바라본 모든 존재의 실상들이 물속에 고기가 노닐고 공중에 새가 날아간다는 오도송의 노래로서 불려질 때에 그 상황은 활짝 열려진 문으로 꺼리낌 없이 발길을 내딛는 힘있는 이의 뒷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무한한 평화처럼 감싸오던 산마루 저녁놀이 안개와 폭풍우 속에서 막막한 절망으로 비추어 올 때에 열려진 세계를 향하여 흔들림 없기를 기원하던 마음의 모질지 못함이 안스럽고 육신의 눈과 마음의 눈은 어디 만큼 떨어져서 갈망뿐인 날들을 살아가고 있는지 서글퍼지는 것이다.
스스로 볼 수 없음에 대한 자각과 그로 인한 고통, 진리에 대한 무지스러움의 죄갚음일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는 각층의 사람들, 닫힌 눈으로 사물을 보면 서도 부끄럽지도 죄스럽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이 구축되고 있으며 더욱 불행한 것은 그같은 자신의 무지와 아집을 타인에게 강요한다는 사실인 것이다. 더욱이 지배 계급에 위치한 사람들이 그같은 형태의 독선을 띨때에 훨씬 많은 수의 사람들이 이로 인하여 고통받게 되는 것이며 그같이 핍박되는 세월을 일컬어 사람들은 비극의 시대라 말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일들이 서슴없이 자행될 수 있음은 닫힌 눈 보이지 않는 어둠이 아니라면 결코 가능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이 지상에서 난무하고 있는 증오와 배반의 숨결들은 그 어느 때보다 거칠다. 희망보다는 절망이 기쁨보다는 비극이 지배하는 시대를 일컬어 사람들은 말세라고들 표현하였으며 그러한 죽음같은 막다름을 생각하면서 서로를 위로하였다. 그러한 심판과 구원의 말씀들이 지상의 가장 가치로운 단어로서 등장하기도 하는 것이다.
미륵보살이 오시고, 예수가 재림하시는 날의 그리움이 오늘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백성들의 가슴속에 그 어느 때보다 새롭게 열망되고 있는지 모른다. 미륵이어도 좋고 예수이어도 좋을 열린 눈을 가진 분, 길은 분명히 있는 것이며 가고 안가는 것은 오직 자신의 의지 뿐이라고 일깨워 주시는 분, 두려움 없이 길을 가르치시고 시들지 않는 용기를 일깨워 주시는 거룩한 이의 모습이 너무나 그리운 시절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항상 기억하여야 하리니 열려질 수 있는 눈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