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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사찰의 무력한 포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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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현진 1985년 10월 44호
얼마전 운수(雲水)의 발길을 경상도 쪽으로 정하고 부산을 거쳐 남해와 지리산 근처 호남일대를 둘러보고 돌아왔다.
주요한 관광사찰은 거의 다 둘러본 셈인데 여러가지 느낀 감회가 있어 다소나마 개선, 변화될 수 있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비록 글은 서툴고 시각은 또한 한정되어 있음을 알지만 감히 이 글을 적어 본다.

불교가 아무리 위대한 종교이고 거룩한 가르침을 펼칠수 있다 할지라도 그러한 위대함이나 거룩한 진리를 실천하고 보여주는 일에 수행자인 스님들이 세인들에게 공감이나 기쁨을 줄 수 없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오늘날 이 땅의 관광지는 대개가 중요 사찰을 중심으로 이룩되어 있음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복받은 명산 대찰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훌륭한 선조들의 덕을 보고 었다는 것과 그 은혜를 제대로 갚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반성의 느낌이 이번 길에서 마음을 무겁게 하였던 것이다.
그 첫번째 안타까움 중에 하나가 관광을 목적으로 전국 유명 사찰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유형의, 진정한 정신적 관광을 함께 누리게 함으로서 부처님의 진리를 발견하게 할 수 있는 너무도 좋은 여건을 스님네들이 갖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가장 기초적인 포교의 일을 너무 소홀히 하고 있다는 죄스러움 이었다.
부처님께서도 기회 있을 때마다 진리를 전파하는 일에 대하여 어떠한 장애도 극복할 것을 강조하셨거늘, 어찌보면 스스로 찾아오는 수많은 괜광객들이 사찰에 왔을때 이미 불교에 대한 이미지의 반을 심어갖고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포교의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다면 우리의 수행은 또 다른 동체대비의 보살행을 이룩할 수 었으며 그러함으로서 시대에 맞는 수행의 한 형태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관광사찰을 재정확보의 단순한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추세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웬만한 본사규모의 절들을 가보면 한결같이 법당앞에 “천일기도” “가사불사”“개금불사” 등의 천편일률적인 현수막 구호를 내걸고 진정한 하화중생의 간절함이 없는, 보시만을 유도하는 행위 등은 진실로 고려해봐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그 어디를 가보아도 그곳의 역사를 소개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속에 조명하여 찾아오는 사람들을 전도하는 포교 소책자 하나 제대로 보급하는 곳이 없는 것도 솔직한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물론 기도도 중요하고 불사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조상들이 산좋고 물좋은 터전에다 대가람을 한마음으로 이룩하여 오늘까지 물려준 귀중한 정신적, 물질적 문화유산인 불교를 보존하고 계승하여 나가는 일에 있어 우리는 너무 소홀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그 유산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데에 전심전력을 다하여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다.
이제 몇 년 안에 이 작은 나라안에서 국제적인 대규모 행사가 몇 차례에 걸쳐 벌어질 터인데 외국에 있는 수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와서 이 나라 문화를 보고 가겠다고 한다면 도대체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막말로 우리가 교회의 많음을 자랑할 것인가 아니면 도시에 고층 빌딩이 많고 서울에 사람이 이리 엄청나게 많이도 살고 있음을 내세울 것인가? 역사와 문화가 제대로 계승 발전되어 가지 못한 땅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 부끄러움을 그나마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사찰을 중심으로 진정한 외형적, 정신적 관광으로서 불교를 소개할 수 밖에 달리 방도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지나칠런지 모르나 그 확신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솔직한 필자의 심정인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정신적 관광의 역할은 누가 하여 줄수 있겠는가?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사원에 살고 있는 스님들이요 그 다음이 관광정책을 행하고 있는 위정자들이라고 본다. 지금부터라도 중요가람에 살고 있는 소임자 스님들은 눈을 바로 떠서 해당 사찰의 안내책자를 포교적인 차원에서 잘 만들 것이며 도량을 고치는 데에 있어서도 주지스님 및 몇몇 사람들이 비전문적인 안목으로 손댈것이 아니라 전문위원의 학술적 조언과 신심있는 원력으로서 사원을 가꾸어야 할것이다.
얼마 전에 우연히 기회가 있어 일본과 동남아를 돌아보고 온 적이 있다. 그중에서 일본과 대만을 돌아보고 특히 불교 사원에서 우리쪽과 비교되는 인상적인 몇 가지가 있었다. 일본의 나라와 경도라는 곳은 사찰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인데 그곳 전차역에 내리게 되면 미리 관광버스 몇대가 대기하고 있다가 안내원들이 저마다 관광책자를 나누어 주는데 물론 그 관광안내 책 속에서는 사찰을 중심으로 한 코스가 소개되어 있으며 책자는 그 도시 어디에서나 통일된 책으로서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리하여 작은 안내책 하나에도 서로 협력하며 충실을 기하는 일본 사람 특유의 기질이 엿보이긴 하는데 사실상 우리 같이 중구난방의 독단적으로 책을 만드는 것보다는 그와같이 실속있게 비용마저 절감시키는 방법도 매우 바람직한 것이다.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불국사가 석가탑, 다보탑 그리고 청동 비로자나불, 아미타불이 국보로 정하여져 있지만 그 가치에 대하여 대충 흩어보고 오는 정도이지 설사 불교를 조금 아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 의미까지 이해를 하고 그 모습을 마음에 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설명이나 책자는 전무한 실정이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절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이지만 이렇게 귀중한 문화유산들을 절에 사시는 스님들께서 설명하여 주시고 불교에 대하여도 좀 일러 주신다면 얼마나 좋겠냐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대중이 좀 많이 모여 살고 공부하는 학인 스님들이 있는 곳, 예를 들면 해인사 같은 도량에서는 스님들이 시간을 나누어 하루에 사람이 가장 많이 몰려오는 시간만이라도 절 안내를 차근차근 설명을 하여 주는 형태도 충분히 가능하고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진다. 그리하여 ‘멀리 나가서 새삼 포교를 한다고 애쓰는 것보다 집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지금의 우리 스님들의 자세는 얼마나 소극적인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이러한 안내를 겸한 포교방법을 실제화 할 수 있다면 그 얻어지는 효과중의 하나로서 오늘날 관광사찰들이 수많은 관광객들에 의하여 시끄러워져서 수도장으로서는 그 기능을 상실당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러한 걷잡을 수 없는 무질서를 정리할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입장료를 내고 절에 들어온 사람들은 천태만상이니 심지어는 술취한 사람, 반나체의 사람, 그리고 타종교의 골수적인 이들은 사원을 돈내고 들어왔으니 내 마음대로라는 식의 작태로서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스님들이 사는 방안을 기웃거려 보기도 하는데 그 기분 나쁜 신경쓰임을 단체 안내를 잘함으로서 질서을 유지시킬 수 있고 포교의 효과도 가능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여러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일이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이제 우리 절집도 세상의 흐름에 막연히 함께 흘러가고 방치된 듯한 상태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에게는 일차로 지키고 살아가야 할 자리이고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는 마음의 고향처로서 영원히 살아남겨져야 할 신성한 이 도량을 지걱나가는 수호자로서 스님들은 헌신하여야 한다.
안내책자에 대한 마지막 한가지 안타까움을 덧붙인다면 현재 사찰을 소개하는 안내책자들은 대개가 다 관광회사에서 불교적인 지식과 신심은 상관없이 그저 단순한 이름과 역사적 기록만을 덧붙힌 책자들로서 그 문화재가 가지고 있는 정신적 종교적 설명이 생략된 오직 영리만을 목적으로 제작한 것들 뿐이다. 이러한 사항은 종단차원에서 다시한번 검토되어야 할 사항이고 종단에서 되지 않는다면 본사 내지 각 유명 사찰별로라도 시급히 해결하여야 할 문제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한국불교는 받는 자세, 소극적인 자세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세속의 흐름을 유도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 흐름을 이용하여 이 땅을 불국토화 하는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인 자세로서 우리 승가 모두가 한마음으로 참여할 때에 ‘중생을 모두 다 건지오리’ 라는 우리의 서원은 실현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