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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관광화 만연에 따른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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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보현 1985년 10월 44호
사찰관광화에 의한 법적인 근거로는 ‘자연공원법’(1980), ‘관광기본법’ (1975), ‘문화재보호법’ (1982), ‘불교재산관리법’ (1962) 등의 상관적 정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각기 국가적 차원에서 마련된 ‘국민보건•정서생활의 함양’, ‘국제친선과 국민경제의 증진’, ‘국민 및 인류문화적인 발전’, ‘사회문화향상’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즉 이들 법들은 경제적 수익성, 정치외교적 목적, 국민건강 등을 고려한 국가 시책으로서, 사찰(승가)의 깊고 폭넓은 관심을 거의 일방적으로 배제한 채 가람을 주요관광화 대상 중의 하나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게 함으로써 불조혜명(佛組慧命)을 잇는 수도도량은 ‘굴뚝없는 산업’의 횡포에 안절부절 못하게 되었다.
심산의 고독한 수행의 심적 단순성과 유약성 등은 수많은 인파(人波)와 찬란한 관광매개체인 통신•교통•정보에 쉽게 매료되었고 상대적으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지루함과 허탈감은 더욱 고조되면서 “고유한 산의 신성(神聖)함’은 ‘오탁악세(五潤惡世)의 마술’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고 말았다. 대신에 그 출세간은 중생계의 일반적인 가치척도요 윤활유인 돈(관랍료 등) 세례와 억재된 관능과 감각의 빈 공간을 채워주는 문명이기(利器)들을 보상으로 받게 되었다. 이처럼 관광의 홍수가 전국토를 휩쓸게 되자, 가람은 ‘이렇게 자꾸 관광화되어서는 안되는데…’ 하는 대안(代案) 없는 무력(無力) 개탄파와 ‘될대로 되라’는 식의 범성(凡聖)을 초탈한 방관자, 무조건 막을려고만 하는 관견(官見) 포로자들의 난무에, 어리벙벙한 속수무책의 무정부가 되어 버렸다. 분명히 지난 50•60년대의 가난함에 비기면 70년대 후반부터 이룩된 사찰의 물질적 풍요로 말미암아, 그야말로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 듯 하면서 동시에 무언가 빼앗기기만 한다고 느껴지는 허전함과 공허감이 공존하고 있다는 데에서 우려의 현실적인 입장이 안타까운 것이다. 말하자면 그려한 물질의 안락함과 수도의 본면목 사이에서 방황해면서 열세에 놓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사회적인 면에서 볼 때에 사찰관광화에 따른 몇가지 이익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사찰은 고대로 전국의 유서깊은 명산명승지에 자리잡고 있어 사원의 그 조경적 배치와 자연과의 합일에서 오는 천연적 경관 및 조화는 그대로 동양문화의 정형적인 양식임과 동시에 자랑거리의 제일보(第一寶)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국민의 건강, 국민경제 및 국제 관광객 유치 등의 차원에서 아주 적정(適正)한 곳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다음은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재 유산 80% 이상이 불교적인 것이거나 관계한 산물이라는 것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한국의 유명 관광하면 대표적으로 사찰관광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사실(事實)이고 보면, 우리의 옛것을 찾고 조상의 슬기를 배우는 교육적인 장소가 됨은 물론이거니와 한국민족의 그 됨됨이와 현주소를 더듬는데에도 사찰관광(참배)은 대단한 민족사적 의의가 있는 것이다. 세째로 19세기 이후 서양의 지성인들은 기독교 문화를 벗어난 독자적인 동양세계를 접하게 되면서부터, 그들은 강한 호기심을 지니고 그들의 지적 •종교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특히 동양의 선불교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선(禪)에 관한 붐은 기대이상으로 진작되었으며, 그 결과적 묘용(妙用)도 대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문화적, 민족사적 국제외교적인 제반 여건과 함께 도도히 흐르는 국내외적 조류에 맞추어져, 마침내 국가적인 차원에서 관광의 한 대상인 사찰관광화는 실현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사찰 쪽에서 볼때 사찰관광화의 작업은 거의 타의(他意)적인 행정•정책에 의해 이룩되었다고 감히 말해지는 것이다. 물론 그 관광화의 작업 과정상 사원측의 담당자들과 아무런 상의나 협력없이 진행되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사찰은 극히 수동적인 입장에서 받아들였을 뿐, 사원이 갖는 고유한 사정과 특색들을 너무나도 무시한 채 행정이 시행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비판의 여지가 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견지에서 우리는 굉장히 무분별한 사찰관광화의 만연에 대해서 전술(前述)한 바가 갖는 그 긍•부정적인 현상과 더불어, 불교의 수도도량이 입는 피해와 결함을 지적하고, 또 그럼으로써 우리 불자나 행정자들의 반성있는 인식과 시행을 촉구하고 싶은 것이다.
따라서 이 논(論)은 사찰관광화의 만연에서 오는 사원측의 피해를 피부로 직접 느끼는 입장에서 쓰는 것이 된다.
이미 산업사회가 몰고 온 그 부대적인 병리현상을 우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며, 그러면 그럴수록 그러한 인간성 상실이라는 역기능에서부터 벗어나려는 줄기찬 노력들이 있는 것도 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사외적(寺外的) 자극과 도전이 강하게 되면 그에 못지않게 또한 반응하는 것이 우리 불자이러니와, 그러한 올바른 반응과 집결(集結)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불자가 일반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인식이나 자각이 우선 요구되며, 그 바탕위에서 <수기(隨機) 적으로 대화와 투쟁〉을 전개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 현재 사찰관광화의 만연에 따른 그 부정적 요소들은 무엇인가.
첫째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이 곧 불교라는 종교적인 차원과 사원의 조경적 여건이 지닌 특수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서 행정편의 위주로 처리한 결과, 본래 불교도량이 갖는 종교적 의미와 사원조경적인 숭고한 미와 조화가 많이 깨어져 오염되고 퇴화되는 감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항상 일방적인 통행은 불평등을 낳고 불균형의 무질서를 조장함으로써, 그 시공간(時空間)내에 있는 제사상(諸事象)은 건전하거나 순수할 수 없다. 그야말로 일방적 사찰관광화 정책으로 말미암아 사원은 여러가지 면에서 그 조화가 깨지고 불평등•불만을 표출하게 되었다.
둘째로 불교문화재를 다루는 당국의 담당자들이 불교신앙과 종교적인 높은 안목의 사상•철학 체계에 대해서 지나치게 몰이해함으로써 초래되는 피해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자기의 전공이나 관심에서 먼 직장에서 일한다고 한다. 아무리 적은 분야의 일이라 하더라도 그 종사하는 직종에 대해서는 상당한 전문적인 이해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자리 지키는 위치’에 머물고 있음을 볼 때, 그들이 결정한 시책에 의해 만에 하나라도 당사자가 입는 곤경과 피해는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관료조직사회에서는 그러한 것이 정당화되는 나머지 모든 특수한 여건들이 단순한 사무처리로 끝마치고 만다.
세째, 사찰이 지나친 상업성을 띤 관광화로 말미암아, 본래의 고요하고 자연적인 수행면목이 퇴색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제, 전국 유명 사찰은 모두 관광화가 되어 뭇관광객들의 유희장 내지 스트레스 해소장이 되었다. 현재의 산사는 예와는 달리 수행하는 수려한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끔 변화해 가고 있다. 이제 산속도 시끄러워졌다. 일부를 제외하고는 고요히 수도하는 전통적인 불교사원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이것은 모두 지나친 관광상업화 정책에서 빚어진 엄청난 피해인 것이다.
이상에서 지금 우리사원이 갖는 어려움 중의 하나로써 그 사찰관광화의 만연에 따른 긍정 •부정적인 의미를 알아 보았다. 그와 같은 시책을 그 발단 시초부터 적용과정 그리고 그로부터 결과된 현상을 종합하여 냉정히 반성해 볼 때에 우리사원은 너무나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말았구나 하는 무력감만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금 돌이켜 보면 모든 인간역사는 투쟁과 대화의 산물인바 엄연한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이치를 분명히 깨닫고 상황타개의 전열정비에 힘써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가장 먼저 사상적인 재무장을 위한 다음과 같은 철저한 인식부터 선행(先行)되어야 한다고 본다.
급속한 산업화 물결과 함께 동반한 사찰관광화의 만연에 따라 자의반타의반(自意半他意半)이든 간에.
1) 수도인의 무소유정신은 사라져가고 물질•배금주의에 중독되어가고 있다는 것.
2) 불교의 급속한 탈종교화나 세속화 경향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
3) 수도정신의 희박화와 불교의 세속화경향에서 초래되는 외고내허(外孤內虛)한 불자는 있으되 〈참 불제자〉는 환속하거나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 등을 지적할 수 있다. 이 문제는 분명히 심각하다. 적합한 문제의 파악과 인식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