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부터 이땅에 불교가 전래한 후 한국의 전통문화 속에 불교문화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실로 지대하다. 우리 한국의 민족문화를 논함에 있어 불교문화를 빼고는 우리의 민족문화를 논할수 없을 것이다. 한국 민족문화의 사상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원효대사와 같은 고승이 당시 불교를 관념의 유회와 사변의 논쟁에서 삶 속에서 실천하는 쪽으로 전향시키고, 교권(敎樓)과 사원중심의 불교을 박차고 만중의 생활속에 뛰어들어 실천했던 것이다. 원효는 인도의 서론적(績說的) 불교와 중국의 각론적(各論的) 불교에서 최후의 서론적 불교로 발전시켜 한국 통불교와는 거대한 융합을 이룩했던 것이다. 이러한 한국의 불교는 문화적으로 보면 정신세계와 물질세계가 융화된 불교문화를 창조하여 황금시대인 통일신라문화를 열었다. 경주 석굴암이 그러하고, 불국사의 석탑과 많은 불상이 그러한 것들이다. 우리나라의 문화재 중에 3분의 2 정도가 불교문화재이다. 문화재 관리를 단계적으로 보면 조사, 분석, 연구, 보존, 정리, 공개사업으로 분류될 수 있다. 조사사업이란, 발굴조사나 문헌조사, 유적현황조사 등이며, 분석사업이란 이들 조사된 자료를 체계적으로 분류 분석하는 것이다. 연구사업은 조사분적된 자료를 가지고 그 속에서 역사적 줄기와 문화적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다. 보존사업은 건물인 경우에는 퇴락되면 보수하고, 동산 문화재(動塵文化財)인 경우엔 과학적으로 보존하는 것 등이며 정리는 앞 단계에서 이룩된 것을 하나의 체계로 정리하는 것이다. 공개는 문화재 보존의 궁극적 목적인 인류 문화의 새로운 창조를 위하여 기여하는데 있으므로 책자를 발간하여 널리 알리고 전시를 통하여 모든 국민이 관람도 하고 새롭게 연구도 하며 문화적 감흥도 얻도록 하는 최후의 단계인 것이다.
그런데 문화재의 공개가 관광적 차원에서 보면 관광자원이 된다.
그러나 문화재의 공개사업과 관광사업의 목적은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는 때때로 문화재의 책자 발간이나 전시관람이 관광사업이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를 많이 발견한다. 이는 정책적입장에서도 그렇게 다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관광사업은 문화재 공개사업에서 보면 일부의 목적에 지나지 않으며 격이 낮은 부수적 효과이다. 문화재의 공개사업은 새로운 문화창조에 기여하는 높은 경지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보고 즐기는 순간의 사항으로 지나쳐 버리는 구경거리가 아니라 문화의 계승과 창달이라는 명제를 걸고 자아의 노력을 경주하며 새로운 창조의 문제를 제기해 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문화재의 공개 속에서 창조한 주체의 자랑이었고, 얘술적 감흥과 학술적 연구의 자료가 있으며 이에 따른 심성의 순화가 있는 것이다. 관광은 문화재의 공개 같은 높은 경지의 과제가 없어도 된다. 그냥 볼거리나 들을 거리가 있어 즐겁고 유쾌한 것만으로 구성되어도 관광자원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1970년대부터 특정지역의 개발사업이 대대적으로 추진되면서 문화재의 집중지역이나 이릅있는 사원의 관광개발적 측면에서 크게 부각되어 보존 정비사업이 대대적으로 이룩되었다. 그리하여 절 앞에는 숙박단지나 음식점, 기념품 상점들이 집중적으로 들어서고 또 경제력이 증가되면서 자동차의 증가로 인한 주차장이나 도로조성사업이 활발히 전개되어 거리가 단축되고 관람자의 인원이 대폭 증가하게 되었다.
이런 사항을 보면 이익된 것과 손실된 것이 양면으로 나타난다. 물론 세상의 모든 일이 항시 이익과 손실이 상충되어 있는 것과 같이 국토개발의 과정에서도 같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문화재 보존적 입장에서 보면, 깊고 생스러운 사원의 품격이 상실되어 속화된 점도 있다. 그 반면 많은 사람이 쾌적하고 편안하게 사원을 찾게 되었고, 사찰 자체에서는 입장료 등의 수입으로 경제적 능력이 배양되기도 했다. 이들 사찰지역의 정화사업 과정에서 당시 혼잡하게 난립되어 었던 여관이나 매점을 절에서 약간 멀리 떨어지게 옮겨서 개선 정비하였던 것인데 지금 보면 너무 가까웠던 것이 아니었던가 생각되고 주차장 같은 시설도 좀더 멀리 떨어졌으면 좋았을 성 싶은 곳들이 있다. 문화재를 보존하는 입장에서는 항시 이러한 지역개발에 있어 사원의 환경보존과 조화를 가장 중요시하여 다른 관람객에게 마음을 접목시켜서 결국에는 물질을 넘어서서 정신의 영역인 불심의 경지로 안내할 수 있는 구제의 수단을 갖추어야 한다.
개발 측면에서 보면 아주 고루하다는 느낌을 받을 만큼 보존적 측면에서 통제하고 조정했번 것은 사실이다.
그간의 문화재관리 정책은 문화재의 보존과 공개의 개념을 져버리고 관광의 차원만을 착안하여 추진한 경우는 없다. 지금 우리는 개발사업을 계속적으로 해 나가야 한다. 그러면서 보존과 개발이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면밀한 검토와 조정이 필요한 것이다. 효율적인 기능만을 강조하다 보면 조화적 환경이 파괴되는 경우가 있고, 지나치게 보존에 얽매이다 보면 국토의 효율적 개발을 막아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어느 시대 어느 역사에도 발전과정에서 이와같은 상충점이 일어났던 것인데 이에 효율과 조화의 양면성을 신중하게 검토 조정하여야 한다. 문화재 관리의 측면에서는 사원이 놀이터처럼 속화되기를 절대로 원치 않으며 이를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 사원을 구제의 도량인 동시에 성보(聖寶)의 보존처로 보존하기 위해서 사찰지역의 보호구역을 사찰에서 2km까지 확대 지정할 수 있도록 1984년에 법규가 개정되었다. 이 보호구역 내에는 상가나 여관같은 시설물을 건립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사원의 환경이 아무리 잘 보존된다 하더라도 그 사찰을 관리해 나가는 스님들의 뜻에 따라 사원의 분위기는 달라지게 되어 있다. 앞으로 사원에 오는 관람객은 점점 증가할 것으로 본다. 그것은 도로 등 교통편의의 개선과 도시화에 따른 국민의 여가선용 증가추세 및 국제행사 등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렇게 증가하는 사원의 관람객을 스님들은 어떻게 맞이하여야 할 것인가의 문제점이 남는다.
사원은 첫째, 중생을 불심(佛心)으로 구제하는 구도장이다. 둘째, 우리 민족문화를 선양 보급하는 격높은 구심체이다. 세째, 마음의 안식을 얻고 유쾌하고 즐거운 관광자원의 역할도 하고 있다. 그러나 사원의 기본적인 목적은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유쾌한 휴식도 즐기면서 우리민족 문화에 대한 감흥과 슬기를 체득케하고 창조의 자료를 얻으면서 궁극의 목적인 깊은 불심의 경지에 이르러 구제와 자각의 체험을 얻을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한 것이 아니겠는가? 사원을 찾는 모든 관람객들에게 이런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러한 경지에 이르기는 어려운 문제이다. 대부분 문화적 물질의 형체로만 보거나 아름다운 자연의 경관에만 끌리거나 하여 구경장소로 생각하기도 한다. 여기에 스님들의 역할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많은 관람객이 모이는 사원의 스님은 일찍기 신라의 원효대사가 실천한 것 같이 사변의 논쟁이나 관념의 유회에서 벗어나 관람객의 심중에 뛰어들어 구제의 수단을 강구할 때다. 이를 위해서는 스님 자신이 갖추어야 할 자세가 있어야 할 것이다.
먼저 관랍객의 일반객인 관심에 접근할 수 있는 방편이 필요하다. 그것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게 하는 격높은 안내에서부터 문화유산을 쉽게 이해하고 전문적인 경지에 이르도록 이끌수 있으며 관람객에게 마음을 접목시켜서 결국에는 물질을 넘어서서 정신의 영역인 불심의 경지로 안내할 수 있는 구제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속세의 문화촌이나 자연관이나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학습도 할 필요가 있을 것이며 이와같은 설명을 통하여 부처님의 경전을 쉽게 체득하도록 하여야 할것이다. 외국인일 경우에는 외국어란 언어적 수단이 필요한 것이다. 한문으로 된 저 많은 경전도 따지고 보면 산스크리트어의 경전을 번역한 것이 아닌가?
스님들이 절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불교를 포교할 수 없다면 어디서 할것인가? 우리나라 사원에는 민족이 창조한 유구한 역사의 문화유산이 가득히 남아있어 신라이던 신라가 아니던간에 마음에 핏줄처럼 연결되는 필연의 통로가 있다. 이 통로를 활용하여 마음 한구석에 불심을 심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