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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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에세이 - 백정혜
1985년 10월 44호
누군가가 가끔 나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 올 때면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손 안에 따뜻하게 쥐어져 있던 무엇인가를 놓쳐버린 허전함을 느끼면서 이미 오래 전에 잃어버린 물건이라도 기억해 내듯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찾아야 한다.
태어나서 오랫동안 자란 곳을 이 고향이라고 한다면 나는 꼭 어디다하고 댈만한 지명(地名)이 선뜻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태어난 곳에서 자라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일생에서 고향에 대한 가장 깊고 아름다운 추억의 주름이 잡혀지는 유년의 어느 한 시절도 한 곳에 머물면서 살지 못했다. 짧은 겨울 낮, 담장 곁에서 벌렸던 소꼽놀이를 발길로 휘휘 헤쳐버리고 돌아가듯이 잠깐씩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며 살았다.
눈을 감으면 그릴듯이 선연히 떠오르는 풍경이 있을 수 없고 허물없이 나를 감싸줄 수 었는 다감한 사람의 이름 하나 생각나지 않는다.
나처럼 고향을 기억하기도 전에 고향을 떠났었고 고향을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크게 잃어버린 것, 그것은 질서와 휴식을 안겨주는 자연과 고요와 화평으로 이어가는 고향의 인정이 아닐까. 돌아가 쉴 자연이 없고 찾아가서 안길 사람들의 아늑한 가슴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삭막하고 슬픈 일인가.
그런 의미에서의 고향이 없는 나는 세사(世事)에 잘 길들여져 있고 피곤한 도시문명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건조한 매일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항상 포근하고 넉넉한 곳으로의 끝없는 회귀(回廳)를 간절히 소망하게 되는 때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젓을 충분히 먹어보지 못한 채 이른 이유(離乳)를 겪은 어린 아이가 오래도록 그리워 하는 어머니의 품속같은 곳, 막연하게 나마 그런 곳에 고향이 자리잡고 있으리란 생각을 해보지만 나의 고향은 사실적(寫實的)인 것으로 구체화 되지 못한다. 지금까지도 어머니의 「자랑스런」 목소리로 남아있는 「네 고향은 대구시 남산동이란다」가 내가 알고 있는 나의 고향의 전부일 뿐이다. 긴 시골생활을 하면서 위축되어 가는 나를 부추기기 위하여 대도시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긍지로 생각하라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번도 대도시 번화가에 위치한 남산동을 상상할 수 없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동네 근처의 얕으막한 야산 정도의 친근감으로 다가오는 지명이었다. 차라리 그런 곳이 나의 고향이었다면 지금 좀 훨씬 가까운 고향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고향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에게서는 한결같이 동산에서 묻혀온 풀냄새가 나고, 들녘을 쓸어가는 바람소리가 들린다. 새의 지저귐이, 풀벌레의 작은 울음소리가 들린다. 맑은 샘물을 마시고 시들었던 건강을 되찾아서 청정한 빛의 얼굴로 바뀌어가는 것을 바라볼 수 있다.
그럴 때 마다 나는 그 사람의 옆에 한 발짝 가까이에 다가서고 싶어진다. 시기나 질투가 없는 부러움을 느끼게 된다.
고향은 모든 것을 받이들여서 선하고 착한 원래의 것으로 되돌려 주는 것일까. 시정에서 묻은 생활의 때를 씻어 주고, 거짓과 위선으로 매몰되어 버린 진실의 얼굴을 찾아준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자기다운 빛깔을 찾아주기 위하여 마르지 않는 지하수를 간직하고 있는가 보다. 이런 것이 고향만이 지니고 있는, 고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덕인 모양이다. 그들이 누리는 덕은 주변의 그늘을 지워가며 다시 넓게 퍼지고, 바래진 빛들을 다시 찾아주는 관용을 발휘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무엇으로 기억속에서 사라져 버린 고향의 뒷 뜰을 소생시킬 수 있을까.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창공을 향해 가지를 뻗치고 이웃에게 짙은 그늘을 베푸는 나무를 심을 수 있을까.
옛날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며 돌아오라고, 돌아오라고 그리움의 손짓으로 부르고 있을「남산동」을 기웃거려 보아야 할까. 그러노라면 그 어디쯤에서 내「잃어버린 고향」과 벅찬 회후를 할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