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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구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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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윤용섭 1985년 10월 44호
1. 불교의 대의(大義)는 구세(救世) 제중(齊聚)에 있다. 그러면 무엇이 구세인가? 우리가 사는 세간을 낙원정토(樂園演土)로 만드는 것이다. 또 무엇이 제중인가? 생사고해에 빠진 중생들을 건져 생사가 없는 곳으로 건네어 주든가 건널 수 있는 배에 태우는 것이다. 생사가 없는 곳이란 곧 열반의 땅을 말하는 것이고 열반의 땅으로 건널 수 있는 배란 곧 불법(佛法)이다.
현금, 천하는 분분(級級)하여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혼란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이상기후와 재해빈발, 대소국가의 난립과 국수주의, 민주•공산 양대세력의 대립과 핵전쟁의 위험 에너지 및 자원고갈, 공해문제와 자연훼손, 인구팽창, 식량부족, 종교간의 불화와 투쟁, 물질주의와 황금만능풍조의 팽배, 인간성 상실과 자기소외 등 21세기를 10여 년 앞둔 현대는 분명 방황하는 시대이며 위기의 시대라 아니할 수 없으며 급류에 떠내려가는 배와 같에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도 모르는 채 멈추지도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은 현상을 보이고 있는 현세계를 어떻게 하면 사랑과 행복으로 가득찬 안락정토(賽樂種土)로 만들 수 있을까? 또한 기계와 물질에 자기(自己)를 빼앗기고 개성을 망각한 현대인을 어떻게 하면 자유와 지혜에 넘치는 참된 인간이 되게 할 수 있을까?

2. 현재의 세계의 모습이나 인간의 모습은 중병에 걸린 환자와 같다 할 것이니 이를 치유하려면 그야말로 묘방과 묘약이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 중생계는 너무나 오래되고 중한 고질병에 걸려 없으므로, 이를 낫게 하기 위하여는 근본적인 치료부터 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근본을 다스리지 않으면 병은 영원히 치유되지 않기 때문이다.
(옛 글에도 物有本末하고 事有終始하니 知所先後면 則近道矣라 하였음)
그러면 현세계와 현대인이 당면한 고뇌, 불안 그리고 갖가지 모순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이를 잘 알아서 이 시대와 이 세계를 구할 수 있는 처방을 내놓고 현대인이 앓고 있는 병을 근원적으로 치유시켜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지금 수 많은 정치가•종교가•철학자•사상가•과학자•사회운동가•예술가들이 각자의 역량을 총발휘하여 연구•사색하며 활동하고 있는 것이니, 만일 우리가 처한 현시대를 낙원정토로 바꿀 수 있는 사람과 법방이 었다면 그 이름이야 무엇이건 간에 이가 바로 미륵불(彌勒佛)이요, 곧 불법이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중생의 병을 고치는 묘약이 곧 불법이며, 그 구세주(救世主)가 바로 부처님인 까닭이다.
현세의 모든 고액(苦厄)과 모순은 사람들이 제 본심(本心)을 잃고 사대색신(四大色身)으로 몸을 삼고 육진연영(六塵緣影)으로 마음을 삼아 자기를 위하여 한다는 행동이 도리어 자기를 해치게 되는줄 모르고 이익과 쾌락에만 몰두해 있기 때문이므로, 이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소아(小我)를 버리고 대아(大我)를 깨닫게 하여야 한다. 이와같이 대아를 알리기 위해서는 인간의 근본이 무엇인가를 알려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가지가지의 선교방편(善巧方便)과 대비원행(大悲願行)이 필요한 것이다.

3. 이 세상에 종교라고 일컬을 수 있는 것이 여러가지 있지만, 인간과 우주의 근본문제를 불교만큼 밝고 상세하게 설파(說破)한 종교는 없으며, 불교만큼 인간이 본성(本性)을 회복하고 생사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자상하고 요긴하게 가르쳐 준 종교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를 종교 중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불교가 과연 국민의 절대적인 신망을 받고 있으며, 중생제도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불자라면 승속(僧洛)을 막론하고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불법은 법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구세체중(救世濟聚)에 그 의미가 있다.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시대는 부처님 당시와는 다름은 물론, 오가칠종(五家七宗)이 꽃피던 때도 아니며, 유교에 의하여 산중으로 밀려나 있던 때와도 다르다. 병세에 따라서 처방도 달라야 한다.

4. 당금(當今) 불교의 가장 큰 폐단 중의 하나는 시대삼분설(時代三分說)이라 생각된다.
즉, 정법천년 상법천년 말법만년의 이야기로서 불멸 후 이천 수백년이 된 지금의 시대는 말법만년의 때이므로, 정법은 쇠하고 인심은 흐려져, 세상이 온갖 혼란과 어려움에 처하고 인간의 도심(道心)이 미약해지는 것은 시절인연이요 말법세태(末法世態)로서 구세激世)는 50여 억년 이후의 미륵불 출세 때나 실현된다는 것이다.
생각컨대, 오늘날과 같이 인간이 위기에 처한 적이 없고 오늘날과 같이 부처님의 출세가 갈망되는 때가 없다. 만일 32상 80종호의 불세존(佛世尊)께서 위의단엄(威嚴端嚴)하시게 출현하시사 자비와 지혜와 신통과 복덕과 변재(辯才)의 혜아릴 수 없는 위덕(威德)으로써 교화하신다면 제중과 구세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면에서 포화상태이며 극에 다달아 백 년 뒤를 기약할 수 없는 현세 인류를 외면한 채, 50억년이라는 까마득한 세월뒤에나 부처님이 나오신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세간(世間)을 구하시려는 제불(諸佛)의 원력(願力)과 지혜와 방편(方便)이야말로 심묘난측(深妙難測)한 것이니 현세인류를 저버리시는 일은 없을 줄 안다.
그러므로 여건만 성숙되면, 구세불(救世佛)께서는 언제든지 출현하시는 것이니, 말법시대라고 깊은 산 속에서 수도(修道)에만 전념하거나 「중생은 중생이요 나는 나」라는 식으로 유유자적(應修自適) 세상을 초탈한 듯이 살아서도 안될 것이요, 부처님께서 하루 속히 출세(出世)하실 수 있도록 힘써 노력하여야 할것이다(미륵불께서는 중생의 탑진치(貪眞痴)가 무르녹고 열가지 착한 일이 행해지는 밝은 세계가 될 때 출현하겠다는 원을 세우셨음)

5.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이 세상을 십선세계(十善世界)로 만드는 지름길일까? 여기 불자의 한 사람으로서 몇 가지 관견(管見)을 피력코자 한다.
첫째, 모든 불자는 부처님의 법을 바르게 배우고 닦아야 한다. 불연(佛緣)을 맺고도 불법을 배우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불법은 심원광대(深遠廣大)한 것이지만, 쉬운것 기초적인 것부터 믿는 마음으로 차례에 따라 닦아 나가면, 그 효과가 일취월장(日就月將) 나타날 것이니, 십선과 팔정도, 육바라밀이 그 요목이 될 것이다.
둘째, 모든 불자는 자비심을 넉넉히 갖추어야 한다. 불교의 가장 큰 특징이 대자대비(大慧大悲)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므로, 불법을 배우고 행하는 자, 특히 불교지도자는 무엇보다 자비에 충만하여야 한다. 일체중생을 내 몸인줄 알아야 한다. 스님과 신자 모두 자비에 가득차 있어야 불교를 모르는 사람들을 교화할 수도 있고 이 사회를 밝게 변화시켜 나갈 수도 있다.
그리고 수행에 있어서도 자비의 바탕위에 선정(禪定)도 지혜(智慧)도 닦아야 하는 것이니, 우리가 무상불도(無上佛道)를 닦는 이유도 모든 중생을 다 편안히 하고 제도하기 위한 것인 줄 명심하여 구세의 뜻을 간절히 가져야 한다.
세째, 모든 불자는 불법을 펴나가는데 힘을 다하여야 한다. 불법은 원융무애하므로 현대의 모든 종교•철학•사상을 포섭•절충•회통(會通)시킬 수 있다. 불교지도자는 현실에 맞고 종파•사상을 초월하는 새로운 생활법과 수행법을 내놓아야 하고 불교인은 누구나 가족•이웃부터 하나하나 불법에 귀의시켜 나가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이상의 세 가지(수행•자비•포교)를 모든 불자가 실천하면, 10년 이내에 불법이 성대해질 것이요, 20년 이내에 사회가 윤택해질 것이요, 30년 이내에 인심이 순후해지리니, 그러는 가운데 불법문중(佛法門中)에 육신보살(肉身菩薩)이 수 없이 나타나 세상의 빛이 되어 전선사회(全善社會)를 가기(可期)하게 될 것이요, 불출세(佛出世)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중생은 불성(佛性)을 갖추었고, 본디 마음은 다 선(善)하며, 사람이면 누구나 안락정토의 실현을 염원하고 있으므로 이 일은 반드시 성취될 것으로 믿어마지 않으나, 다만 삼보(三寶)를 갖추었고, 이천 오백년 적덕지가(積德之家)인 불문(佛門) 중에서 먼저 구세(救世)의 빛이 비추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