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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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교리강좌 - 편집실
1985년 10월 44호
스물아홉 되던 해에 태자의 자리를 버리고 카필라성을 떠나 출가수행의 길에 오른 보살은 마이에네야에서 쿠시나가라로 간 다음 지금의 잔다크강과 간지스강 주류와의 사잇길을 따라 바이살리로 간다. 이는 바로 부처님 마지막 행각의 노정(路種)과 같은 것으로 추측된다. 바이살리에서 다시 마가다의 서울인 라아자그리하에 이르고, 이런 출가수행 중의 보살의 행각은 그후 50년이 지난 다음 반대방향이 되는 쿠시나가라까지 부처님의 법을 펴며 걸어가 그 곳에서 입멸하게 된다.
바아살리에 당도한 보살은 그 곳에서 고행하기로 유명한 바알가바라는 선인(仙人)을 찾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선인을 중심으로 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끔찍하리 만큼 힘든 고행이었다. 발가벗은 채 가시 위에 누워있는 자, 타오르는 불꽃에 몸을 대는 자, 개미집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자 등 고행의 형상은 가지각색이었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보살은 웬지 그들의 수행방법이 석연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행을 하고 있습니까?」
「천상에 태어나기 위해서이지요」
그들의 대답은 곧 육신을 학대하여 괴롭힘으로써 후생에 안락과 복덕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후생의 즐거움을 위하여 억지로 괴로움을 참는다고? 괴로움의 근원을 알지 못하는데 어찌 복락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인가! ’
그들이 하고 있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인생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음을 보살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오히려 죄악을 영원히 되풀이하는 결과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보살은 그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전하였다.
그 곳을 나온 보살은 다시 아라다 카라마라는 선인을 찾아간다.
당시 바이살리 교외에 본거지를 둔 아라다 카라마의 수도장에는 3백명이 넘는 제자들이 수행을 하고 있었고 세간에서 그 평판도 대단하여 보살은 아라다에 적잖은 관심과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
「여러분, 저기를 보십시오. 멀리세 훌륭한 나그네가 찾아오셨습니다. 저 분은 틀림없이 그 이름이 높은 석가족의 왕자일 것입니다. 저 당당하고 평온한 모습을 보십시오」
멀리서 보살이 오는 모습을 본 아라다의 제자가 소리쳤다.
「아라다 카라마여, 나는 이 법(法)과 율(律)에서 범행(梵行)을 닦고자 합니다」
「당신을 기꺼이 환영합니다. 현명한 사람은 이 법에 따라 머지않아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것입니다」
아라다의 무리 속에서 수행을 하던 보살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법-무소유처의 삼매-을 깨닫게 된다.
「그대와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제 나의 깨달음을 그대도 똑 같이 깨달았으니 우리는 이제 아무런 차이도 없소. 부탁하노니 둘이서 이 교단을 이끌어 가도록 합시다.」
당시 백살이 넘는 고령에도 최고의 이상-해탈의 경지-에는 도달치 못하고 또 마땅한 후계자를 만나지 못했던 아라다는 보살의 현명함과 그 빠른 깨달음에 고개를 숙여 당부하였다.
「아라다 카라마여! 내가 구하고 있는 것은 이것이 아닙니다. 인생문제의 궁극적인 해결, 나는 이것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습니다」
아라다의 간곡한 만류도 뿌리치고 보살은 다시 길을 떠났다.
바아살리는 이후에도 불교에 있어서는 중요한 포교지역으로 알려져 었으며, 인도 지나교의 개조(開租)인 마하비라의 출신지이기도 하며 지나교는 불교와 그 배경을 이루는 사상에 공통점과 유사점이 많고 그 성립시기도 비슷하다.
아라다의 곁을 떠나온 보살은 마가다의 서울인 라아자그리하(王舍城)에 이르게 된다. 보살은 그곳에서 사람들에게 크게 환영을 받고, 당시 마가다의 왕이었던 빔비사라를 만난다.
「당신처럼 거룩하고 고귀하신 분은 일찌기 본 일이 없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드릴테니 이곳에 머물러 인생을 마음껏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욕망을 버렸기 때문에 출가한 것이며, 인간 최고의 이상을 바라보고 수행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부처의 깨달음을 이루고야 말 것입니다.」
빔비사라왕은 더 이상 보살을 만류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부처님이 되시어 꼭 이 거리에 돌아와 귀한 가르침을 베풀어 주십시오」
훗날 보살이 부처님이 되어 법을 펼때 이 라아자그리하에 돌아와 빔비사라왕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은 교화한다. 빔비사라는 부처님보다 다섯살 아래이며 이후 부처님과의 교제는 37년간이나 계속되었다고 한다.
라아자그리하는 불교 교단 활동의 일대중심지로서 부처님이 즐겨 머무르시던 영취산(靈鷲山)과 부처님 입멸후 결집(結集)장소로서 유명한 칠엽굴(七葉窟) 등이 교외에 있다.
라아자그리하에 머무르는 동안 보살은 또 한사람의 선인, 우드라카 라마푸드라를 찾아가게 된다. 보살이 수행 중에 만난 선인들 중, 묘게 의미있는 사람 둘을 생각한다면 바아살리의 아라다카라마와 이 우드라카 라마푸트라이다.
이들 두 사람은 불교에 가까운 경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부처님께서도 훗날 이들을 회상하며 이 두 사람이라면 당신이 발견한 진리를 듣고 알아차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살은 우드라카 라마푸드라에게서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일상적인 사고를 모두 초월하여 순수한 사상만이 남은 상태-라는 선정삼매의 최고 단계를 배우고 이것에도 성공하였다.
이같이 보살이 당시 최고 수행자들밑에서 수행한 것은 결코 무익한 것만은 아니었고 훗날 교단을 형성, 종교 활동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이 이상의 것은 자기 안에세 구할 도리밖에 없다고 보살은 생각했다.
‘어디를 찾아 가 봐도 내가 의지해 배울 스승은 없으며, 이제는 내 스스로 나의 스승이 될 수 밖에 없구나’
이때 우드라카의 제자중 다섯 사람이 보살의 경지에 감복하여 그 문하를 하직하고 보살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멀찍이서 수행하였다.
보살은 나이란자라 강변의 가야산에 흘로 앉아 이제까지와는 달리 모진 수행에 들어갔다.
‘수행자들 가운데는 마음과 몸이 방일에 뼈져 탐욕과 집착에 얽매인 채 겉으로만 모진 고행을 하는 이가 있다. 그것은 마치 젖은 나무에 불을 불이려는 것 처럼 어리석은 짓이다. 몸과 마음이 탐욕과 집착을 떠나 고요히 자리잡고 탐욕과 집착을 떠나 고요히 자리잡고 있어야 그 고행은 최고의 경지에 도달될 수 있으리라’
보살은 이러한 생각으로 똑바로 결과부좌한 채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고 먹는 것도 자는 것도 거의 잊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눈은 해골처럼 움푹 패이고 몸은 여윌대로 여위어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그렇게하여 보살은 추위와 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마치 죽은 듯이 앉아 있었다. 아름답게 빛나던 보살의 육체는 볼품없이 사그라 들고 이제까지 아무도 해 본 일이 없는 모진 고행으로 보살은 거의 죽음의 문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카필라성을 나와 수행자들의 무리 속에 들어간지 어느덧 6년, 이 최후 수단의 모진 고행도 그에게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아닌 참된 이상을 실현하기까지의 그만 두려야 그만 둘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이상이란 오직 하나, 부처가 되어 영원한 깨달음을 얻는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