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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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편집실
1985년 10월 44호
들창 밖으로부터 비 내리는 소리가 계속하여 들려온다.
한번 내리기 시작하면 마음마저 흘러 보낼듯이 몇 날을 두고 내리는 올 가을의 비는 낭만도 정서도 아닌 두려움 같은 근심만을 만들어 주고 있다.
살아가는 날들이 어렵고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어수선할 때에 그나마 위안 받을 수 있는 것이 자연의 혜택일진대 하늘은 높고 햇살이 빛나는 황금의 물결로 풍요로와야 할 계절에, 내리는 비를 맞으며 쓰러진 벼들을 일으켜 세우는 농부들의 심정은 어떠할 것인가?
되돌아 보면 이땅에 흘러간 역사의 자욱들은 오늘도 재현되고 있고 상처는 아물기가 바쁘게 또 다시 할퀴어지고 있음을 떠올린다.
사바세계라는 곳이, 가진 자, 힘있는 자, 그 보다 훨씬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려니 그리하여 공존보다는 갈등이, 평화보다는 증오가 우선하는 것이 이 양자의 관계였다.
그리하여 이러한 갈등과 증오를 순화시키고 힘없고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을 위하여 성자의 목소리를 대변하여야 하는 것이 종교의 사명이리라.
그러나 오늘날 종교계의 흐름은 차치하고라도 불교의 모습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평하여 상구보리를 관념화 시킨 채 자기 중심적인 병약한 이기심만으로 남겨져 있는 것은 아닌지. 삶의 현장에서 일체 중생의 고통과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느끼고 동체 대비의 자각속에서 실천의 모습을 보이지는 못할진대 불교의 안팎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반적인 흐름은 자기본위의 이기적 욕망으로 세속의 모습을 닮아가고 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전하는 것이 절실히 요청되는 오늘, 수행인들이 자생적 반성의 한계를 넘은지 이미 오래이며 사회적 비판속에 기대마저 저버리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우리가 처하여 있는 역사적 현실과 사회적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한 동참하여 나갈 것인가를 진정 가슴으로 아파하며 밤잠을 설치고 있을 수행인들이 몇명이나 될 것인가? 행여 민중을 이야기하고 그들을 대변한다고 소리 높이는 이들의 모습이 또한 공허로와 보이는 것은 어쩔 것인가.
차라리 침묵하는 이들의 말없는 소리가 그리운 때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이 서로서로 긴밀하게 연류되어 있어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유기체적인 조건 속에서 운명지워져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운명권 속에서 빠져 나갈 수도 달아날 수도 없는 우리들의 현실일진대 어느 산 어느 골짜기에 깊숙히 숨어 있더라도 우리의 운명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고 공동의 것임을 알아야 한다. 곧 “우리”란 “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더불어 함께 고해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나”란 영원히 역사의 고해에서 부침을 계속할 수 밖에 없다. 내가 먼저이고 다음이 너희들이란 관념을 벗어나지 못하고 일체중생이 함께 성불하여지기를 염원하지 못한다면 “나” 역시 영원한 무명의 어둠 속에서 헤쳐 나오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치 각각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자신의 안일과 욕망만을 추구하는 형태로 변질되어 가고 있으니 오늘날 부처님이 살아계신다면 어떠한 말씀의 표정을 지으실지 실로 궁금하다.
종교도 그 사회의 한 일부분이라고 한다면 그 시대의 변화를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마지막까지 어둠을 밝히고 꺼져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 시대의 증언자로서 종교인은 끝까지 남아야 할 것이며 ‘일체중생이 성불을 이루지 못한다면 영원히 중생계에 함께 하리라’는 서원이 수행자에게는 너무도 아쉬운 시절인 것이다. “우리”를 떠나 “홀로”고통의 바다를 벗어나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렀다고 한들 “운명적”으로 연류되어 있는 관계는 끝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네 이웃의 아픔이 터럭만큼이라도 남아 있는 한 혼자만의 열반은 영원히 불가능한 것이니” 너와 나는 “우리” 속에서 너와 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를 기다려 보지도 못한 채 풍요를 노래하던 우리들의 조급함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이 가을 벌판은 비와 바람이 아직 잠들지 않고 있다. 하늘의 뜻을 기리며 땀흘리는 노고를 아끼지 않았던 농부들의 입에서는 그렇게 조급한 풍년가는 불리워지지 않았으리라.
하늘의 뜻을 생각해 보지 않은자, 땀흘리는 노고를 행하여 보지않은 이들이 입을 조심하고 하루의 양식을 감사해 할 때, 그리하여 힘없어 하는 이들에게 아낌없는 손을 내밀 줄 알 때, 그러한 자각을 깨달음이라 이해시킬수 있을 때에 출세간과 세간은 오늘을 살아간 죄를 면할 수 있는 것이며 그러한 날에 진정 우리들의 가을은 충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