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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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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함께하는 자리 - 민 만선행 1985년 11월 45호
해인사는 언제 어느 때나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운 정취를 가지고 있는 명승지이지만 가을날 홍제암 뒷 계곡의 단풍빛은 영 잊을 수가 없다.
푸른 송림의 수해(樹海)에 간간히 수를 놓은듯 잡목들이 그 잎새를 하늘거리는 홍류동을 지나면서 속세의 찌든 잡다한 시름일랑은 흘러내리는 홍류동 계류(溪流)에 씻어 버리고 가야산의 품에 들면 준엄한 산의 위용에 놀라기 보다는 포근한 어머니의 품속처럼 마냥 따사롭다.
대개의 석산(石山)이 남성적인 웅혼함을 가지고 있지만 오후의 햇살을 받고 있는 가야산은 온갖 풍상을 다 겪고 난 우리들의 어머니처럼 언제나 너그럽게 보인다.
특히 요즘처럼 온갖 현란한 색채의 단풍잎에 휩싸여 있는 가야산은 너무나 풍요롭다. 그러면서도 그 찬란함을 안으로 숨기는 가야산, 온갖 영광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겸손한 현자(賢者)처럼 묵묵한 가야산, 그런 가야산을 보기 위해 나는 가을 저녁의 가야산을 찾는다. 산에 오르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가야산의 발치 어디쯤에서 그윽히 보라빛으로 아름다워지고 있는 먼 가야산을 우르러본다.
그리고 잃어버리고 있던 아득한 마음의 고향을 그 산의 얼굴에서 찾아내곤 한다.
그리고 자연의 위대한 변용과 바로 이곳이 우리가 회귀하여 언젠가는 돌아와야 할 자리 임을 다시함번 생각해 본다. 또 남아있는 우리들의 삶을 반조(反照)해 본다.
모든 만물이 스승 아님이 없고 함상 범사(凡事)에 감사하라고 부처님께서는 이르셨지만 위대한 자연을 볼 때마다 더욱 그러한 마음이 일어난다. 그리고 유독 가을이면 더욱 그러한 생각들이 더한 것은 아마 가을이라는 계절이 주는 감각 때문일까?
나는 본디 만물이 소생하는 4월을 좋아했는데, 꽃보다 더 붉은 단풍잎으로 뒤덮힌 가야산의 가을빛을 보고는 가을에 더 많은 애정을 갖게 되었다. 봄에 피었던 잎새들이 바람에 날려 본래 자기를 피워내게 했던 뿌리로 돌아가는 가을, 그리하여 우리들의 삶이 있게한 근원을 생각하게 해 주는 가을, 바람은 저만치서 나그네처럼 창백한 얼굴로 나뭇잎새를 흔들고 있고 우리들은 떨어져 버린 잎새를 보며 남겨져 있는 우리들의 삶의 날들을 다시 생각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살아있는 날까지는 거부하여도 언제나 오뚜기처럼 집요하게 일어나는 영원한 물음.
나는 이런 물음에 봉착할 때마다 늘 에뜨랑제처럼 외로와지곤 한다.
왜냐하면 저 근엄한 산처럼 큰 덕을 가지지도 못했고 나무들처럼 자신이 서야 할 자리에 서 있는 것도 아니고 저 큰 바위들처럼 단단한 결심의 이마도 가지지 못한 나를 보면서 걷는 가을 산길은 늘 쓸쓸하다.
그리고 온 산의 것들은 스스로 돌아가야 할 자리와 예비된 길을 가고 있는데 무엇 하나 해 놓지 못한 나를 되돌아볼 수록 쓸쓸하다.
보통 우리같은 서민들의 생활이란 개미가 체바퀴를 돌듯한 평범한 일상 속에 갇혀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기 마련이지만, 자연의 얼굴을 통하여 나의 삶을 반도해 본다는 것은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 일인가.
그런 마음이 될 때 자연은 조용한 수도자처럼 은근하고도 푸근한 해답을 조용히 알려주곤 한다.
이제 깊을대로 깊어버린 가을, 후득이는 가을비에 다 져버릴 잎새들을 가여워하며 이미 떨어져 누운 낙엽을 밟으며 가을산의 으스름을 내려 온다.
무수한 낭만의 깊은 꿈을 짜고 있는 낙엽들이여. 그리고 영원한 모성 가야산의 노래여 축복있기를!
(울산해인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