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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어온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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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권태정 1985년 11월 45호
1. 불교에의 입문

잘길들여진 인간에게 주어진 충격, 그것은 분명 끊임없는 아픔이었다. 나는 지금 왜 쫓기는 심정이 되었는가.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덮여씌워진 굴래를 벗어던지기 위해 몸부림치는 여린 인생에게 거대한 구조로 압축해 오는 현실, 그것은 오직 두려움과 고독으로 맞설 수 밖에 없었다. 그른 것을 그르다고,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한 것이 아픔으로 되돌아 온 지금 그러나 그것은 별것이 아닌 작은 것임에 틀림없다. 나에게 그러도록 가르쳐주고 키워준 사람들이 있고 진리와 몸으로 함께 하는 대중들이 있음이다.
내가 처음 불교를 접하게 된 것은 김제 금산중학 입학시절이었다. 그때 내게 다가온 불교는 먼 것, 무섭고 어려운 것, 무관한 것, 교학시간은 항상 졸면서 지냈으니 불교를 알기전 선입견에 못박기 충분하였다. 그러다가 잘아는 선배의 권유로 불교학생회에 가입한 것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내가 학생회에서 배운 것은 법회때 몸가짐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합장, 노래, 염불, 엄숙, 법문 때 졸기, 끝날 때 웅성거리기였고, 좋았던 것은 성적을 넘어선 선후배 간의 만남이었다. 그때까지 인간관계를 규정한 것은 성적과 간부유무가 거의 전부였기 때문에 새로운 인간관계의 열점을 볼 수 있었다. 부담없이 사람과 사귀고 절로 놀러다니게 된 것은 내게는 큰 행운이었다. 중학교를 마치고 전주로 진학하게 되었다. 낯선 도시에 던져진 촌뜨기는 맨먼저 불교학생회에 가입해야만 되었고 그것은 중학교 때 얻은 호감 때문이었다.

2. 사춘기를 맞아 느낀 갈등

어쩌면 나의 삶은 불교와 인연지어지도록 짜여진 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내가 여섯살이 되던 해 아버지는 작고하셨다-늘 고된 농삿일과 병약한 몸때문에 죽을 고비를 자주 당하셨다. 해마다 겨울이면 침침한 방아랫목에 누워서 약을 드려야 했고, 그러다가 봄이 되면 또 농삿일을 시작하시곤 했다. 그러는 가운데 나는 어머니의 죽음을 항상 목전에 두게 되었고, 그것은 어째서인지 내성적인 나에게 깊이 모를 사색에 잠기게 했다. 나의 운명은 기본적으로 어머니의 운명과 연관이 있었고, 어머니의 죽음은 내인생의 좌절을 의미했다. 그리고 중학교 때 남달리 군자연(君子然) 했던 자세를 벗어던지고 싶어서 학교생활을 의식적으로 소극적 입장을 취했다. 거의 혼자라는 생각속에 갇혀 있다가 토요일이면 불교회관에 나가 홀가분한 마음으로 법우들과 어울렸다. 죽음과 속박과 소외, 이것은 나의 사색의 명제가 되고 다시 나의 분위기를 어둡게 인도했다. 법우들과 어울리면서도 혼자임을 절감해야 했고 어머니의 고된 일손을 생각해야 했다. 현실속에서 실천하라는 스님의 법문은 항상 나에게 이율배반으로 와 닿았다. 자기가 못하는 일을 왜 강요하는가, 현실과 동떨어진 듯한 얘기, 좌선, 수련을 왜 일삼는가. 제 앞가림도 못하는 사람에게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라니 말이 되는가. 땀을 뻘뻘 흘리며 거친 볏잎에 살갗을 쓸리며 뜨겁게 내리찍는 햇볕에 그을리고 계시는 어머니, 몇개 안되는 달걀을 자식 차비 마련한다고 먹지도 못하고 모아서 장에 내다 파는 어머니는 외면하고 시원한 산사에서 적지않은 돈을 들여가며 수련대회랍시고 사서 고생하는 자식놈 희망과 좌절의 틈바구니에서 방황하며 학교공부도 충실하지 못한 자식놈을 그래도 가르쳐야 한다며 고생을 마다않는 어머니, 이것은 나를 둘러싼 아픈 환경들이었고, 그 속에서 나는 어두운 번민을 하며 머리를 썩혀가고 있었다.

3. 대학에 들어와서 받은 충격

아직도 촌티를 벗지 못한 풋내기가 서울의 거리에 빨려든 것은 대학이라는 발달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서부터이다. 역시 낯선 곳이었기에 기존의 속 좁은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없는 용기를 배가해야 되었다.
불교학생회에 들어선 것은 3월초 입학식이 끝나고서였다. 부담감없이 입회원서를 쓰고 나니 선배들이 말을 걸어왔다. 불교를 알게 된 것이 언제고 동기는 무엇이고, 고향은 어디고 등등의 몇 가지 의례적인 질문이 있은 후에 불교의 부정적인 측면을 짚어가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학교의 긍지, 대학생의 사명, 불교의 역할 등을 토론하며 그들의 말을 인정하게 되었다. 정들었고 겉만 알던 불교와 사회현실의 깨어지는 아픔을 맛보면서 이렇게 해서 l2년 아니 20년간 길들여져 온 의식과 타성은 충격적으로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80년의 거대한 변혁기를 몸으로 겪은 선배들의 육성은 너무도 크게 절절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모든 것이 거짓으로 허위로 가식으로 판명이 되고 기만과 모순으로 가득찬 현실에 분노와 공포를 느껴야만 했다. 자 이제 무엇을 믿고 무엇을 향해 살아야 할 것인가. 그러던 5월말 나의 삶의 빛이요 끈인 어머니가 영 면에 드셨다. 고해의 세상 고통과 설움과 외로움 그리고 한이 맺힌 이 세상을 외롭게 마쳤던 것이다. 이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4. 대학생활을 정리하며

한국의 대학은 사회의 거대한 지배 재생산 구조임에 틀림없다. 아직도 폐쇄적인 성격이 강한 사회형태에서 계층상승의 첩경으로서 대학은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하늘만 쳐다보며 살아온 젊은이들에게 지배기술을 가르쳐 주고, 꼭둑각시의 각본을 제공해 주는 체제공장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거부하는 몸짓들이 적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역사사회에 주체로 참여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나는 이제 입신출세하려고 들어온 대학에서 고민하다가 거의 모든 것을 버리기로 했다. 모두가 헛된 것이고 불편한 것들이다. 부처님이 삼천년 전에 고뇌하다가 그랬듯이, 스님들이 말로나마 가르쳐준 무소유의 뜻을 되새기며, 괴로움을 외면하지 않고 진리와 자유를 향해 몸바칠 것이다. 작은 것을 품에 안고 더 큰 것을 얻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 내디딜 것이다.

5. 젊은이의 불교

올해들어 학생회 활동만 10년 가까이 해온 경력이 붙었다. 그러면서 불교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고귀한 가르침임을 점점 더 처리게 느끼게 되었다. 불교란 부처님=진리의 가르침으로서 사람이 사람답게, 진리를 진리롭게 이끌며 변화와 연관을 주체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역동적인 지침이다. 또한 나는 부처님이 불교를 만들기 위해 사신게 아니라 오히려 부처님이 사신 결과로 불교가 형성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볼때 부처님이 지금 이땅에 오시면 본질이야 변함없겠지만 전혀 다른 불교가 나타날 것이다. 우리가 불자로서 산다는 것은 형식을 쫓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현실 속에서 진리의 실천을 통한 새로운 불교를 만들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도 불교를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현실을 올바르게 운위한다는 뜻이어야 한다. 분명 우리가 불교를 접하게 된 것(≒ 출가)은 개인적인 이유에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동기를 근본적으로 찾아보면 사회속에 던져진 소외된 인간이 그것을 극복하고자 몸부림치는 것이고, 원인적인 치료가 가능하려면 사회로부터 벗어나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볼 때 현재의 한국불교는 문제가 크다. 산중불교, 귀족불교, 여가불교, 도피, 외면, 소극성, 기다림 등의 말들로 볼 수 있듯이 떨쳐버려야 할 굴레, 인습들이 너무도 많다.
젊은이의 불교는 삶의 간절한 현장에서 부단히 새롭게 창조되는 바른 삶의 길이다. 기존의 옳지 않은 어떤 것에도 타협함이 없이 진리와 자유와 평등평화를 향해 부단히 파괴하고 건설하는 변화 그 자체인 것이다. 선배들이 빚어놓은 껍데기들을 벗기고 겉만 화려한 형식에 놀아나지 않고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임을 알고 그것의 실천적 구현에 매진하는 불교이다. 불교를 가르쳐 준 기성세대들이 가진 것에 얽매여서 보이는 자기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로의 힘찬 전진 이것이 젊은이의 불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