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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물 계곡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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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에세이 - 이남덕 1985년 11월 45호
초가을 산길 걷는 맛을 어느 산모롱이나 계곡 사이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다면-하는 기대에서 2박3일의 학생들 수학여행에 따라나섰다.
이번 여행길에는 오대산 • 월정사 • 상원사 • 적멸보궁을 거쳐 동해안의 낙산사 등 사찰들이 들어있고, 홍천군 내면의 운둔산 구룡계곡 깊은 산골길을 거쳐서 돌아오는 길은 한계령 길로, 오래만에 수려한 남설악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상원사에서 적멸보궁까지, 그리고 홍천 내면의 운둔산길에서 삼봉약수터까지, 오색 약수터에서 주전골까지의 왕복길은 가을이 익어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제자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인간적인 참으로 인간적인 얘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사제지간에 이러한 인간적인 사귐조차도 바랄 수 없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사제지간 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가 무엇인가 귀중한 것을 해마다 잃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장 가까운 가족관계 조차도 항상“바쁘다는”소리를 연발하면서 사는 여유없는 일상성속에서 정이 식어가고 윤리가 퇴색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산길을 걸으면서 이러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무엇이 그리 바쁜가? 현대사회의 짜임새가 우리를 대자연한테서 멀리 떨어지도록 만들어 놓고 있다. 그 결과는 바로 인간다운 마음의 상실이요 생명감의 결핍이다. 잃어버린 귀중한 것들을 다시 회복하려면 친자연(親自然)의 길 밖에 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오색약수터에서 하루를 묵으면서 주전골 계곡의 맑은 가을 물소리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물소리를 들으면 대자연의 환회심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계곡물을 따라 올라가는 산길이 그리도 즐겁고 정다운 것이다. 대개 사찰 있는 곳은 맑은 계곡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다. 하룻밤이라도 절에 묵어본 사람이라면 도시의 먼지에 시달리던 마음이 산사의 계곡 맑은 물소리에 깨끗이 씻기는 경험을 안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병든 심신이 말끔히 치유되는 기쁨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이다.
한계령 계곡도 지금처럼 자동차 길이 나기 전에는 내설악의 백담계곡 못지 않는 아름다운 계곡이었다. 계곡이야 지금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동차 길이 생기게 된 후로는 계곡길은 폐로가 되었으니 결국 아름다운 계곡은 있어도 없는 것과 같게 된 것이다. 한계령길에 만일 찻길이 아직도 없었다면 내외(內外)의 관광객들이 남설악의 경관을 오늘처럼 볼 수 없었을 것이니 그것이 득이 아니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잃은 것도 많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8년전 일이다. 그해 사월 초파일에 백담사에 들어가서 부처님 오신날 봉축행사에 참가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전에 없이 큰 트럭들이 건축자재를 백담사 앞 계곡 옆 넓은 밭에 부려서 잔뜩 쌓아올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모 재벌이 그 자리에 큰 호텔을 짓고,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의 8km의 계곡길을 넓히고 포장하여 크게 “개발”한다는 것이었다. 그 길로 서울로 올라와서 “내설악을 사랑하는 시민들”의 이름으로 자연보호 캠페인을 벌린 결과 그 개발계획은 백지화되었다.
“개발” 그 자체를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나 하나를 얻고 열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아름다운 것, 신성한 것은 그대로 자연스럽게 지키는 것이 최상의 길이다.
깊고 그윽한 계곡안에는 대개 큰 절이 자리잡고 있어서 우리의 전통문화의 보고(寶庫)로 국민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사람이 붐비는 곳에 자연파괴는 불가피하다.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오염과 훼손을 입고 있는데 더 이상 적극적인 개발에 의하여 결정적인 타격을 안긴다면 계곡안의 물고기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고 산천초목도 매연공해에 시달리게 될것이며 인간들도 결국 자기가 저지른 과오때문에 아름다움도 신성함도 잃을 뿐 아니라 숨쉴 공기가 없고、 마실 물조차 없게 될 것이다.
한계령 꼭대기에서 차장 밖으로 보이지도 않는 계곡을 굽어보며 백담계곡의 맑은 물소리를 마음으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