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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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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에세이 - 김현우 1985년 11월 45호
지금쯤 산사로 가는 길섶에는 가랑잎이 구르고 있으리라. 이끼로 덮힌 돌담길을 돌아 들국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내 고향의 절길.
길이란 단어 속에 선명히 떠오르는 내 생각 속의 길은 언제나 이렇게 정답다.
그리고 길이란 말과 잘 어울리는 것이 있다면 우선 나그네라는 말이고 끝없는 구름길을 지향없이 가고 있는 나그네라고 하면 목월의 시가 생각난다.
그리고 그 밖에도 영화 제목으로도 유명한 젤소미나의 「길」이 생각나고 노랗게 물든 숲으로 뒤덮힌 프로스트의 시속의 길도 연상되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낭만적인 의미 이전에 나는 길이란 말에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붇다가 걸으신 생명의 길이다.
붇다는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시고 평생을 바른 인도의 길을 찾아 혜매었으며 붇다는 스스로 그 바른 인생의 길을 찾았으며 중생들에게 그 바른길 가르치는 인생의 도사(導師)로 사셨다. 또 마지막 생애를 사라나무가 선 언덕길에서 최후의 열반에 드셨던 그야말로 부처님께서는 문자 그대로 도인(道人)이셨다.
나는 가끔 2천5백년전 부처님께서 인도의 그 뜨겁고 황량한 길을 오로지 진리의 말씀을 전하시기 위해 걸으시던 고고한 성자의 모습을 그려 본다. 오늘날도 인도를 여행한 여러 사람들의 기행문에서 갖은 교통 수단을 동원하더라도 인도를 여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험난한가 하는 체험담을 듣곤 하는데 하물며 여행의 즐거움이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을 가르치기 위한 전도 여행에 전 생애를 바친 그분의 모습을 생각하면 할수록 숙연해진다.
나는 그 많은 붇다의 가르침 가운데에서도 마지막 그의 전도 여행에서 행한 말씀에 큰 감동을 느끼게 된다.
모든 고뇌와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초월한 부처님에게 무슨 휴머니티를 운운하는가 하고 의문이 생길테지만 그분이 가진 인간으로서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성자로서의 존경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분은 마지막 전도여행에서 대장장이 츈다의 집에 들러서 제자들과 더불어 한끼의 공양을 대접받는다.
그러나 그 공양으로 인하여 부처님은 계속 설사명으로 고생하셨고 그 병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자 제자들 사이에서는 츈다를 원망하기에 이르렀다.
그럴 때 부처님께서는 자신의 공양 때문에 부처님께서 고통받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대장장이 츈다를 조용히 부르시고 이렇게 위로하여 주셨다.
“츈다여 너의 공양은 참으로 정성스럽고 고마왔다. 내 일찍이 수자타의 유미죽 공양을 잊지 못하듯이 너의 공양도 또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너는 네가 낸 공양으로 인하여 고민하고 있구나. 그러나 알아라 네가 낸 공양 때문에 내가 병이 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나는 너의 공양 때문에 병이 든 것이 아니니라. 모든 생겨난 것들은 무상하고 다만 오래된 육신은 오래된 수레의 바퀴처럼 못쓰게 된 것 뿐이니라. 어찌 물질로 된 육신이 병들지 않을 수 있겠느냐. 자 보아라 츈다야 그렇게 네가 존경하는 부처라는 나도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국, 육신이 병들게 되었다. 그런데 범부인 너는 어떻게 되겠느냐. 이것을 미루어 아직 나는 젊었다고는 하지만 시시때때로 변하는 너의 육신도 이와같이 되거니 부지런히 애써 공부하도록 노력하라. 다만 너 자신을 의지의 등불로 삼고 진리를 의지처로 삼아 부디 정진하기를 힘써라”라고 말씀하셨다.
유행가의 가사처럼 사실 인생이란 어쩌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까맣게 모르고 허둥지둥 살아가는 나그네 길이 아니겠는가?
아직도 모르겠거든 오직 그 분의 말씀을 따라 양극단을 피하고 여덟가지 바른길(人正道)를 따라 그분이 이미 가르쳐 놓은 탄탄하고도 바른 인생의 길을 걸어 보지 않으련가.

(부산해인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