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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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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교리강좌 - 편집실 1985년 11월 45호
시간이 흐를수록 최극단에까지 몰고간 보살의 고행도 최고의 이상에는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살은 소년시절 농경제에 참가했다가 홀로 나무아래서 명상에 잠겼던 자신을 기억해 내었다. 그때 보살은 이미 자신도 모르게 내면적으로 높은 단계를 체험하였던 것이다.
‘그래, 이렇게 육신을 괴롭히는 것만이 최상은 아니다. 오히려 육신을 선용함으로써 내면을 밝힐 수 있지 않을까?’
보살은 새삼 자기자신에게 갖추어진 위대함을 의식하고 스승의 지도로도, 육체를 괴롭힘으로도 얻지 못했던 최고 이상을 혼자 힘으로 정진해 나갈 것을 결심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보살은 단식을 그만 두고 쇠약해진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음식을 먹기로 하였다.
「그토록 모진 고행을 통해서도 최고의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 세상사람들과 똑 같은 음식을 먹고 고행을 풀어버린다면 어찌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보살을 지켜보던 다섯 사람의 수행자들은 보살의 이런 판단에 크게 실망을 하고 보살의 곁을 떠나 바라나시 교외로 옮겨 자기들끼리 수행에 들어갔다.
보살이 수행을 하던 우루빌바마을은 마가다국 한 장군의 영지였다. 그는 열명의 딸을 가지고 있었는데 모두 신앙이 두터워 그 주위의 수행자들에게 남다른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 중 막내딸이 바로 수자타이다.
수자타는 꿈에서 보살이 여느때와 같이 음식을 먹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온갖 정성을 다해 우유죽을 끓여 기진한 걸음으로 탁발을 나온 보살을 대접한다.
수자타의 우유죽 공양은 단순한 식사라기보다는 종교적 비의(秘儀)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부처님 입멸 전 대장장이 춘다가 바친 공양과 함께 부처님 생애 중 2대(二大) 공양에 속한다.
“이 우유죽을 먹으면 반드시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게 될 것이다”
우유죽을 먹은 보살은 나이란자라강으로 나가 몸을 깨끗이 하고 머리와 수염을 깎았다.
서서히 체력이 회복되고 자신을 갖게 된 보살은 드디어 깨달음의 자리, 그 마지막 도량(道場)인 붓다가야의 보리수 아래로 걸어나갔다.
보리수는 본래 아시밧타 또는 핍발라라 불리던 나무인데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인연으로 후에 보리수라고 일컬어지게 되었다.
보살은 길상초(吉祥草)를 깔고 조용히 동쪽을 향해 앉았다.
「여기 이 자리에서 내 몸은 메말라도 좋다. 가죽과 뼈와 살이 없어져도 좋다. 어느 세상에서도 얻기 어려운 저 깨달음에 이르기까지는 이 자리에서 죽어도 일어서지 않으리」
보리좌에 앉은 보살이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 부처에 나아가는 것이 확실해지자 욕계(欲界)를 지배하는 마아라 파피야스(魔王波句)가 갖은 술수로 방해를 한다.
「당신은 젊고 아름답습니다. 주위를 한번 둘러 보셔요. 나무도 풀도 새도 한참 이 좋은 시절을 누리고 있어요. 저희들과 함께 이 즐거움을 누리시지 않으시겠어요? 그렇게 하고 앉아 깨달음을 구한다니, 소용없는 일이지요」
「육체의 쾌락에는 고뇌가 따른다. 나는 오래 전에 그러한 고뇌를 초월해 버렸다. 이 도리를 알지 못해 세상 사람들은 욕정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나는 이제 절대적인 정신의 자유에 도달하려고 한다. 내가 자유롭게 되면 그때는 세상 사람들도 자유롭게 해 줄수 있으리라. 하늘을 지나는 바람과 같이 자유로운…」
보살이 어떤 술책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또한 그에 대해 조그만 적의(敵意)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결국 미녀와 군세, 괴물, 폭력 등 마왕의 노력은 헛것이 되고 사실상 보살은 깨달음에 이르게 된 셈이다.
마라를 굴복시킨 보살은 4선정(四輝定)을 체험한다. 성도한 날밤 보살의 체험은 초저녁, 한밤중 새벽으로 나누어지며 그 중 먼동이 틀 무렵 부처로서의 자각에 도달한다. 천안통으로 중생의 세계를 살핀 다음 선정에 든 맑은 마음으로 새벽을 맞은 보살은
“아! 참으로 가엾은 일이로다. 이 세상의 존재들은 태어나서 늙고 죽어 세상을 떠났다가 다시 태어난다. 늘 그러하면서도 이같이 커다란 고뇌의 덩어리로부터 벗어날 줄을 모른다. 벗어날 방법을 찾지 않고 있다. 무엇으로 인해 늙음과 죽음이라는 것이 있을까. 도대체 무엇을 원인으로 늙음과 죽음이 있단 말인가.
태어남을 원인으로 늙음과 죽음이 있다.
그러면 무엇으로 인해 태어날까. 생존(有)으로 말미암아 태어난다.
그러면 무엇으로 생존하게 되는 것일까. 집착(取)으로 말미암아 생존이 있다.
무엇으로 인해 집착하게 되는 것일까. 갈망(渴望)으로 말미암아 집착이 있다.
무엇으로 인해 갈망이 생길까. 감수(感受)로 말미암아 갈망이 있다.
무엇으로 인해 감수가 생기는가. 접촉(觸)으로 말미암아 감수가 있다.
무엇으로 인해 접촉이 생기는가. 여섯가지 감각(六處)으로 말미암아 접촉이 있다.
무엇으로 인해 여섯가지 감각이 생기는가. 모양과 물체(名色)로 말미암아 여섯가지 감각이 있다.
무엇으로 인해 모양과 물체가 생기는가. 현상(行)으로 말미암아 인식이 있다.
그러면 무엇으로 인해 현상이 생기는가. 무명(無明)으로 말미암아 현상이 있다.”
이 12연기를 연쇄적으로 고찰한 결과 보살은 모든 인간 실존의 비극적 근원으로 무명(無明)이 있음을 밝혀내고 그 속에 모든 인생문제의 해결이 있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내게 지견이 생겼다. 나의 해탈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내 마지막 생애이고 이 이상 다시 태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과거로부터 무수한 생애에 걸쳐 정진 노력한 결과가 성숙해서 이제 최고이상, 깨달음이 실현된 것이다.
보리수 아래에서 좌선을 하며 최고의 진리를 탐구하던 보살은 이제 생사윤회의 지배를 완전히 벗어난 부처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