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었다. 아득한 곳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 고개를 들고 바라본다. 영산전 세 분의 나한님 ,그들이 경상을 들고 저 멀리서 내게 다가온다. 문득 가슴에 차오르는 환희심. 눈두덩이 뜨거워지고 뺨으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그들은 말이 없었다. 다만 경상을 내게 건네며 미소 지으실 뿐.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한없이 배례한다.
끝없이 깊어지는 나한님들의 미소. 누군가 몸을 뒤척이는 소리에 나 꿈길을 벗어난다. 아직 어둠뿐.
예순 명쯤의 도반들이 모두 새근거리며 잠들고 있다. 도반들 속에서 나흘로 눈떠 눈발이 분분했던 오대산
적멸보궁의 가는 산길을 떠올린다. 십만 배 백일기도를 위하여 콧등의 땀을 홈치며 오르던 그길.
새벽이면 말간 별빛을 바라보며 산중의 아름다움에 끌려 눈물 짓고, 사시기도 길에는 발목을 덮는 순결한
은빛 세계 속에서 문득 내 유년을 만나곤 했던 그 길의 아름다움. 그 길을 오르던 날이 마음속 깊은 곳
무슨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새벽 세시. 큰방의 괘종시계가 둔탁하게 세 번 울고, 큰 법당에서
도량석을 도는 목탁소리가 들린다. 작은 소리에서 점점 커지는 목탁소리. 도반 스님들이 일어나 이불을 개고
세면장으로 향한다. 잠결을 털며 지나가는 찬바람. 수각장의 싸늘한 물을 떠 손을 담군다.
짜릿하게 저려오는 손끝의 시림.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무수히 많은 하늘의 별. 별은 어디서나
반갑다. 내가 멀리 떠나 어디에 있어도 별은 낯익은 친구처럼 언제나 내 머리 위에서 반짝이고 있다.
외롭고 힘들 때마다 바라보는 별. 그러면 그때마다 친구가 되어 가슴에 따뜻한 이야기를 전해 주는 별.
하늘에 별이 있음에 이 세상어디나 고향이라는 생각에 가만히 웃으며 찬물 깊숙히 얼굴을 담근다.
세면을 마친 스님들이 큰방에 들어서 묵묵히 장삼과 가사를 입는다. 법의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뿐, 부처님께
예불을 드리기 전에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는 절집의 불문율이 들뜬 마음의 상념들을 자르고 지나간다.
단아한 몸짓, 차분한 발길로 큰법당으로 향한다. 마치 기러기가 줄지어 날아가듯 좌차를 따라 이어지는 스님들의 긴 행렬. 기러기가 고향 하늘을 찾아 날아가듯 스님들의 발길 속에는 마음의 본향을 찾는 비원이 담겨 있으리라.
법당의 부처님은 말씀이 없으셨다. 다만 꿈속의 나한님과도 같이 가이 없는 미소를 지으질 뿐.
그 미소 아래서 올리는 예불 공양이 새벽 하늘의 고요를 잔잔히 깨우며 아침의 길목을 열고 있었다.
신심과 원력의 합창이 열어가는 산사의 아침 . 함께 어우러져도 도량을 쓸고 이마의 땀방울을 훔치며 강의 준비를
하는 스님들. 그들의 곁에 있으면 우리가 이르러야 할 열반의 땅에는 저토록 고운 미소만이 물결쳐 넘실대거라는 것을 알수 있을 것만 같다.
상강례를 알리는 목탁이 울린다. 꿇어 앉아 있는 스님들이 가사의 매무새는 단정히 하고 정면의 부처님을 우러른다. 길게 이어지는 성스러운 침묵. 우리들이 지닌 언어의 무게를 생각한다. 문득 언어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진다. 부자유와 구속. 언어란 결국 우리들의 욕망의 무게와 그 행로를 같이 했던 것은 이닌지. 욕망의 크기가 커지고 길어질수록
복잡하고 난해하게 발전해 왔던 언어의 행적들. 언어는 결국 우리들 자유의 길에 드리운 하나의 커다란 장애였을 뿐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설한 진리가 언어를 떠나 있는 것은 아닌지 . 진리는 언제나 말을 떠나 있고
당체는 늘 움직임을 벗어나 있는 선가의 말씀이 새롭다. 선가에서는 안으로 헐떡거림이 없고 밖으로 모든 결정체를 끊을 것을 강조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찾는 진리와 만날 수 있고 선정에 깊이 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나는 상강례 이전의 이 시간에 침묵이 가지는 성스러운 무늬 속에서 맞이하게 될 강의 시간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한다. 부처님의 말씀을 문자로 배우지만 우리 배움의 목적이 그 문자를 떠나 해탈의 길을 발견함에
있음을. 침묵의 언어 , 그것은 말을 떠나 있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 아닐까? 자비와 사랑과 자유의 모든
언어를 그속에 꼭 품고서 언어의 바다에서 난폭해지고 지친 우리들 존재의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
상강례를 마치고 강의실로 향하는 길에서 분분히 날리는 눈발과 만난다. 아! 저 눈발. 나도 모르게 입가에
흘러나오는 탄성 . 때 아닌 때 마주친 첫 눈. 소담하지 않아도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그리는 화가의 손길처럼
눈발이 휘날리고 있다. 어느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어느 먼 곳의 소식이기에 이렇게 소리없이 흩날리느뇨...`
그렇다. 눈발은 언제나 그렇게 내게 다가온다. 먼 곳의 그리운 소식처럼 그렇게 설램과 감동을 안고서 .
도반스님 모두가 눈이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넓은 웃음을 짓는다.
오늘은 강의 뒤에 메주 운력이 있다. 콩을 삶아 설렁설렁 적당히 으깨어 틀에 넣고, 살포시 밟아 뽑아내면그 때부터 완전 식품이 되는 숙성 과정에 들게 된다. 으레 일 년에 한 번 있는 행사라 아침부터 학인 스님들의 활기찬 움직임과 능숙한 손놀림. 운력은 우리들에게 동심의 한 때를 선사한다.
갓 출가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동안-중물 들이가-에 생각으로 배우는 불교는 한갓 지식으로서 불법을
아는 것에 불과하다는 말씀을 들었다. 불법은 자신의 겉모습을 보충시켜 주는 것일 수는 없다. 불법은 온몸으로
체득하는 삶의 진리이자 인생의 철학이 담긴 인간 마음의 마지막 고향인 것이다.
어느새 메주 운력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보경당 난간에 걸어둔 메주는 바람에 넘실넘실 잘도 익어간다. 우리네 먹물 옷처럼 ------
서서히 우리들 발밑으로 땅거미가 스며 들고, 도량 곳곳은 야경 스님이 밝힌 등불과 금고金鼓 다섯 망치의 음률에 맞추어 서산 마루에는 황혼의 저녁 노을이 이 곳 해인사 도량을 물들인다.
오늘 저녁에는 자율 정진이 있을 것이다. 장시간 운력이 있은 뒤에 주어지는 대중 공양(?).
능엄실에서는 여전히 경을 보는 논강이 있을 것이고, 큰 방에서는 피로한 육체를 수행삼아 신심으로 경을 익히고, 따스하게 데워 놓은 지대방에선 팔베개하고 자기를 반조하며 누워 있는 도반들.
나는 극락전으로 돌아와 하늘 높이 달려 있는 달을 벗삼아 삶의 여백을 즐긴다. 이대로가 좋다.----지금 내 마음속에서 현재 이 자리 이외에 더 무엇을 구하겠는가!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