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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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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경당 바람결 - 영덕 1995년 12월 166호
어두운 소나무 숲에 앉아 말을 쉬어 본다. 솔가지 끝에 걸린 반달이나 달을 불며 노는 바람이나 차기는 마찮가진데, 이 바람을 송뢰松籍라고 하던가. 쏴아하니 큰물이 우뢰를 치며 지나가는 듯하다.
십이월의 밤은 청록색이다. 찬기운 속에서 돌 위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별이 보이고 나무가 보이고 산의 윤곽이 들어오고 계곡의 물소리에 간간이 산짐승 울음이 섞여진다. 소리없는 소리, 깊이도 알 수 없는 푸른 어둠속으로 깜박이며 인공위성이 흐르고 있다.
영락으로 장식한 머리, 환한 이마 초승달처럼 고운 눈썹. 호수처럼 맑은 눈, 풍만한 가슴. 보랏빛 안개 서린 눈가. 우아의 극치를 보여주는 산전山田 선생님의 관음도가 떠오른다. 허물벗은 푸른 뱀의 빛나던 눈빛이 지나가고 사물의 이치를 일찍이 깨닫고는 요절해 버린 천재 시인의 얼굴도 지나간다. 적나라한 현실의 그늘 속에서 평범히 늙어가는 보통 사람의 모습과 삶의 현장에서 목놓아 울던 민주화 시절 이 땅 누이들의 얼굴, 그리고 노태우의 눈물도 지나간다. 걸은 토양에서 트실하게 자라는 김장 배추를 바라보며 결코 무너질 수 없는 훌로서기를 되뇌어 보던 아침, 깎은 듯 그려지는 수행의 길, 발보다 먼저 가는 그 놈의 마음이라는 것. 다시 태어나도 역경사업에 몸 바치겠다시던 운허 큰스님의 존영도 지나간다. 모순과 갈등, 번뇌의 끈. 하지말라 하지말라 하라하라! 무명진탈無明盡脫, 사양지심辭讓之心, 묵묵담담默默淡淡, 외유내강外柔內彈, 자리이타自利利他, 만법귀일萬法歸一, 윈심력, 구심점, 포용력, 펜의 힘, 정신적 귀인, 끊임없는 자기 노력, 겸손, 침착, 유정무정 축원. 모두가 행복하여지이다...... 무수한 말조각들이 우루루 일어났다 어느 사이 자취도 없이 숨어 버린다. 전념 수행하며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혼란이 지나가며 쉼표가 이어지고 단조의 낮은 음이 흐른다. 깜빡하는 사이 팔만사천 가지 번뇌를 짓는 것이 중생이라더니 잠깐 앉은 사이 분별망상이 이러하다.
일체 유정의 심신身心을 번요뇌란煩擾熾亂하게 하므로 이것을 줄여서 번뇌라고 한다. 삼계의 생사에 윤회해서 열반의 중과를 잃게 하는 혹惑으로 열 가지의 근본 번뇌와 스무 가지의 수隨 번뇌가 있다. 우리는 흔히 깨달음의 목적이 고苦 해탈과 열반의 성취에 있다고 한다. `해번뇌지계박, 탈생사지윤회解煩腦之繫縛 脫生死之輪廻’ 라고 하면 곧 번뇌의 계박에서 풀려나는 것이 해解요 생사의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탈脫이라. 이러한 번뇌에서 자신을 먼저 조율한 뒤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普提 下化聚生하는 것이 대승불교의 수행 목표인 것이다. 구사심법俱舍心法에서 사십육심소 가운데 열 가지 근본 번뇌를 보면, 탐貪이란 집착에 물들어 탐하고 구하는 작용이며, 진購이란 극악한 행위의 동기가 되는 성내는 심작용心作用이다. 치癡는 혼매해서 결단심이 없는 것이며 만慢이란 자기와 타인을 비교해서 자기가 우월하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능멸 천시하고, 같은 자에 대해서는 자기가 수승하다 여기며 수승한자 에게는 자기와 동등하다는 생각을 내는 심작용이다. 의疑는 불교 인과의 원리를 의심해서 믿지 않는 성性이며 신견身見은 유정有情의 신심身心은 색色, 수受, 상相, 행行, 식識의 집합체인데 임시로 화합한것에 대해서 영구 견고한 일체가 있는 줄 잘못 아는 망견妄見이다. 변견邊見이란 앞의 신견의 후에 생기해서 이 몸은 후에도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집착하거나 죽으면 끝이라고 집착하는 등 단견과 상견의 허망한 견해를 내는 것을 말한다. 사견邪見이란 인과의 도리를 허망하다고 부인하는 망견이며, 견취견見取見은 앞의 세 가지 견해를 진眞이다, 실實이다, 승勝이다 하고 그릇 집착하는 견見이다. 계금취견械禁取見은 도가 아닌 것을 도라고 계탁하고 인이 아닌 것을 생천生天에 나는 인이라고 잘못아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한다. 이상 앞의 다섯 가지는 더디고 둔해서 끊기 어려우므로 오둔사五純使 뒤의 다섯 가지 견見은 예리해서 끊기 쉬우므로 오리사五利使라고 한다. 이러한 번뇌의 별명別名으로는 어리석어 자각하는 일이 없으므로 수면隨眼이라고도 하며 무명無明 또는 사使 혹惑 누遍 폭류覆流 전纏 垢 결結이라고도 한다. 이밖 에도 팔십팔사의 견혹見惑, 팔십일품의 사혹思感이나 여섯 가지의 대번뇌지와 열 가지 소번뇌지를 알아야 의식의 심층 속에서 번뇌를 구조적으로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중생의 고락이 없다면 부처가 무슨 소용이며, 번뇌가 없다면 어찌 보리가 있을수 있겠는가 굳이 번뇌를 가리려는 또 다른 번뇌를 만들지 않기로 했다.

그는 말이 없었다. 십 년 세월을 탕진(?)하고 다시 돌아 갔을 때 한 마디 꾸지람도 없이 묵묵할 뿐,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다시 산을 등지고 저잣거리를 혜매었지만 그는 끝내 미동도 없었고 쌓인 눈 속에서 철쭉 꽃눈이 부풀고 있었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주문같이 떠도는 입속 말을 삼키며 종각에서 동대문까지 날마다 걸었다. 출렁이는 원색의 물결 속에서 갖가지 사는 모습들을 지켜보며 나의 재빛 승복도 저 물결과 더불어 어우러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삶의 전쟁터에서 제 몸의 살과 반짝이는 훈장을 위하여 사정없이 꺾어 버린 수많은 울음들이 땅끝에 닿는 원성이 됨을 알지 못한 채 사람들은 울타리 치기에 바쁘고 나와 남이 하나되어 마땅히 추구해야 할 성숙의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목젖까지 아파하며 그 해 겨울 아스팔트위에서 잠을 잤다. 오백 권의 시집을 읽고 오백 편의 시를 쓴다 하여도 불심으로 승화되지 못한 시는 한갓 번뇌의 꽃일뿐. 시에 대한 집착을 놓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걸어 신호등 앞에 섰다. 언체인드 멜로디 흐르는 종로에서 내가 쫓는 영상이 산그림자뿐임을 절감할 때 감고 있던 그의 두 눈이 늘 나를 향해 열려 있었음을 비로소 알았다. 한 잎 낙엽도 제 갈 곳으로 돌아가는 겨울 산! 벌거벗고도 당당할수 있는 무수한 가지 속에서, 추위만큼 절실한 기도가 영그는 한 그루 나무가 되기로 하였다. 따뜻한 마음 한 조각씩 떼어 배고픔을 덮어 주던 가난한 어머니들을 축원하며 내일은 겨울 산으로 돌아가는 차표를 사야 한다.

<겨울산> 이후 그렇게 돌아온 길이었다. 시인이 보고 느끼고 숨쉬는 공기의 오염도를 진단하고, 반짝이는 여지와 깊은 통찰력 그리고 깃발을 들고 외치며 나갈 수 있는 의지력을 함께 갖추어야 함을 깊이 생각한, 꺾인 꽃대같이 자기 안의 설움이나 아픔에서 승화의 차원과 변신의 단계를 거치지 않았을때 어떤 습작도 힘없는 독백일 수밖에 없음을 처절하게 깨달은 시절이기도 했다. 나는 나무의 밑둥같이 좀더 튼실하게 자리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탈색되어 정련한 올만 남아 버린 고담한 먹물 옷의 이 자리에서 설사 무엇을 쓴다 하여도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요즘은 채경당 바람결의 짧은 소식 전하는 일조차 회의한다. 만져지는 내 가난한 중살림. 더 내 보일 것이 없다는 부끄러움 때문이다.
내일쯤 더 깊은 신속으로 들어가 낙엽 속을 뒹굴어 보아야겠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