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워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마당 한구석에 심어 둔 상추가 얼어서 마치 뜨거운 물에 삶아 놓은 것 같다. 비닐 종이를 씌워서 보온을 해 준다고 하면서도 게으른 성격 탓으로 차일피일 미루어 오다가 애써 키운 것을 버리게 된 것이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차츰 밥해 먹기가 싫어질 때가 있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짓는 일은 자칫 게으름을 피우기가 십상이다. 벌써 우리 실천승가회가 창립되고 이 곳 가회동 사무실로 이사 온 지도 일 년이 된다. 사무실이라고 해도 스님이 있으면 어디든지 절이고 수행도량이라고 해서 행원정사行願精舍라는 현판도 걸었다. 사무처장인 법안스님, 조직국장인 자성스님, 불교정론 편집국장인 일문스님 그리고 나까지 해서 행원정사의 전체 대중이다. 갈수록 스님이 귀해진다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 정도 대중이면 절로서의 조건은 잘 구비된 셈이다. 신도가 없어서 탈이기는 하지만.
스님들이 손수 밥을 해 먹고 살면 대개 토굴생활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요즘 우리 행원정사의 대중들 생활이 바로 도심 속의 토굴 생활이다. 아니, 나는 요즘 다시 행자 생활로 돌아간 기분으로 생활한다. 그 동안도 별로 복수용을 해본 경험이 없지만 그래도 좋지 않은가. 다시 행자 때의 기분으로 돌아가 새롭게 출가사문으로서의 자기 삶을 점검해 보는 것도. 그렇다. 다시 초발심의 행자로 돌아가자. 그래서 더욱 철저한 수행자가 되어 보기로 하자. 그러니 아침에 일어나 가스 불에 불을 켜고 밥을 짓고 찌개를 끊이는 일이 아직은 즐거울 뿐이다.
삼각산 도선사에서 행자 생활을 보낸 일이 있다. 보낸 일이 있다고 하는 것은 내가 행자 생활을 도선사에서만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주구천동 백련사, 양주 수종사, 서울 조계사, 그리고 도선사를 거쳐서 인천 보각사에서 소천 스님을 은사로 스님이 되었다. 이렇게 여러 곳을 거치는 가운데에 가장 행자다운 생활을 한 곳은 도선사였다. 그러니까 사문으로서 가져야 할 정신이나 품위나 법규 같은 것은 도선사에서 청담스님에게 배웠다.
도선사를 찾아갔을 때 청담스님은 내게 하루에 삼천 배씩 일주일 동안 절을 하라고 하였다. 그래야 스님이 될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때는 여름이었다. 찌는 듯이 더운 여름날 석불 전에서 하루 삼천 배 절을 한다는 것은 여간 고행이 아니었다. 절을 해본 사람은 다 아는 일이지만 절을 하고 계단을 내려올 때는 다리가 떨려서 엉금엉금 기어서 내려오곤 했다. 삼 일쯤 절을 하고 나니까 무릎살이 벗겨지고 피가 나 은근히 화가 났다. 주변을 돌아보니까 모두 나이 든 신도들이다. 이 때 나는 ‘저 사람들은 어른이 아닌가. 나는 아직 어린 소년인데 어떻게 큰스님이 이렇게 가혹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큰스님도 내가 끝까지 절을 다 하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적당히 해야 하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머지 삼사 일은 적당히 꾀를 부리고 말았다. 그렇게 일 주일을 채우고 큰스님 앞에 갔다. 절을 무사히 다 했다고 인사를 드리러 간 것이다. 그랬더니 큰스님은 웃으면서 나를 한 시간이나 붙들고 달래면서 법문을 하였다.
“이놈, 네가 그 동안 하루 삼천 배를 다 안 채우고 꾀를 부린 것을 내가 다 안다. 내가 너에게 절을 하라고 한 것은 앞으로 네가 중노릇을 잘 하려면 신심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야. 그래야 어려운 역경에 부딪쳤을 때 견디어 낼 것이 아니냐? 나는 누구나 출가하려고 오면 긴 말 하지 않고 절을 하라고 한다. 이 관문을 잘 통과한 놈은 뒤에도 신심 있게 공부를 잘하고 그렇지 않고 꾀를 부리는 놈은 신심이 없기 때문에 중간에 집으로 돌아간다. 네가 앞으로 스님 노릇 잘하려면 새로 일 주일 동안 절을 하거라 이번에는 하지 않으면 쫓아 낼 것이다. 신심 없는 놈은 밥만 축내어 무엇에 쓰겠노.”
이렇게 해서 나는 어렵게 도선사에서 행자 생활을 하였다. 그 때 이미 도선사는 신도가 서울 장안에서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가장 많았다. 관음재일날 법회를 하면 신도가 몇 천 명씩 왔다. 그래서 행자 생활도 힘들고 어려웠다. 나에게 처음 주어진 소임은 채공 이었다. 채공 이란 후원에서 반찬을 만드는 일이다. 실제로 반찬을 만드는 일은 나이 많은 선 참 행자들이 했고, 나에게 주어진 일은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는 일이었다. 신도들은 시도 때도 없이 오는데.....그 때는 차가 없던 시절이라 먼길을 걸어서 올라온 신도들이 배가 고파 꼭 밥을 차리고 그릇을 씻어야 했다. 그러다가 몇 달 뒤에 공양주를 하다가 나중에는 큰스님 시봉을 했다.
큰스님의 근검 절약은 철저했다. 큰스님은 생식을 하였는데, 큰방 대중 스님들의 바루 공양 때 들어와서 어간에 앉아 공양을 하였다. 그 때 대중들의 밥에 보리가 적게 섞여 있는 것을 보면 소임자 스님들을 불러서 야단을 치곤 했다. 아무리 쌀이 남아돌아도 사문은 하얀 쌀밥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부처님께 올리는 마지도 보리밥을 올려야 한다고 하였다. 부처님도 보리밥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 무렵에는 쌀이 모자라 절미 운동을 하던 때다. 그러니 신도가 많고 절 살림이 조금 나아졌다고 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잊어버리고 쌀밥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큰스님의 가르침이다.
한번은 내가 수각에서 콩나물을 씻고 있는데 큰스님이 와서 콩나물 씻는 법을 시법까지 보여 주며 가르쳐 주었다. 콩나물 대가리를 하나라도 버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큰 물 그릇에 콩나물을 씻고 나면 바닥에 콩나물 대가리가 남아 있다. 이 때 물을 따라 내고 껍질과 같이 있는 콩나물 대가리를 체질을 하면 껍질은 바닥에 붙어 있고, 콩나물 대가리만 분리되어 나온다. 이렇게 해서 콩나물 대가리를 하나도 안 버리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렇게 진지하게 가르쳐 주었지만 많은 콩나물을 씻어야 하기 때문에 노스님 눈을 피해 콩나물 대가리쯤은 대충 버리는 수가 있다. 그러다가 잘못 노스님 눈에 띄면 가만히 주머니에서 바늘을 꺼내서 그 바늘 끝으로 하나하나 콩나물 대가리를 주워 모아 깨끗이 씻어 다시 반찬 하는 데 쓰라고 주는 것이다. 이러니 행자들은 감히 쌀 한 톨 나물 한나라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함부로 버리지를 못했다. 지금도 나는 그 때 배운 솜씨로 밥도 잘하고 콩나물 반찬을 잘한다. 한번 배워 일생을 쓰는 것이다.
옛날 큰스님들은 절에서 모시고 있기만 해도 큰 즐거움이 된다. 매사에 한 점 흐트러짐이 없이 수행자로서 법도에 맞게 행동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배울 만한 것이다. 그래서 옛 선사는 밥 짓고 빨래하는 일상사에 도가 있다고 하였다. 또 어떤 스님은 도를 배우려고 찾아온 제자에게 삼 년 동안 밥하고 빨래하며 산에 가서 나무하는 일만을 시켰다. 하루는 그 제자가 스승에게 불만을 품고 물었다. “큰스님, 왜 도를 배우려고 온 나에게 일만 시키고 도는 가르쳐 주지 않습니까.” 그러자 큰스님이 얘기하길 “나는 그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너에게 도를 가르쳐 주었다.” “아니, 어떤 도를 가르쳐 주셨는지요.” “그래 나는 네가 밥을 지어 주면 밥을 먹었고, 빨래를 해 주면 옷을 입었고, 나무를 해 다가 방을 따뜻하게 해 주면 그 방에서 잠을 달게 잤다. 이 밖에 달리 무슨 도를 가르쳐 달라고 하느냐.” 이 말에 물론 그 제자는 단박 스승의 가르침을 깨달아 알았다고 한다. 모름지기 수행이란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란 말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