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머리를 잡으면서
수계식을 마치면 곧 산중 어른스님들게 인사를 다닌다. 먼저 방장스님이 계신 백련암을 간다. 이십여 명의 새 사미들이 절을 할 때마다 발꿈치에 가사자락이 밟히는 어설픈 삼배를 받으시고는 몇 마디 이르신다.
마지막은 당부 말씀으로 이어진다. 지금도 고인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계는 받는기 아이라 지키는 거데이.”
계를 받을 때 벌써 지키는 걸 전제한다. 그리고 그것과 함께 위의威儀라고 하는 몸가짐에 대한 규범을 아우르게 된다. 이를 정리하여 묶어 놓은 것이 “율장”이다. 그래서 그것이 주는 이미지는 딱딱한 것. 서슬 시퍼런 것이라는 외에도 앞뒤가 꽉 막힌 것.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케케묵은 것 등을 연상하는 것이 보편적인 정서인 것 같다.
나 또한 율원에 방부를 들일 때 심정은 ‘지키고 안 지키고는 그 다음의 문제이고 도대체 율장이 무엇인지한번 보기나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모르고 범하는 것보다는 알고 짓는 것이 더 업業이 적다’는 구절을 떠올렸다. 율주 스님이 “율장은 경전이나 논서論書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서술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수행생활의 일상사를 모아 둔 것이므로 문장도 쉬우며 이야기 거리가 많아 재미있다”고 하고는 “기간이 짧으므로 「사미율의」「사분율」「법망경」을 열람하고 여유가 있거든 「선원청규」를 봐 두라”고 자상하게 일러준다.
어쨌거나 율장은 위치나 비중으로 보아서 삼학三學(戒, 定, 慧) 가운데에 으뜸임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오히려 말법 시대일수록 그 가치는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다. 총림에서도 결제 때나 해오던 포살布薩 - 재중이 계경戒經을 함께 독송하는 것 - 의식이 요즘은 승가의 모임이나 행사 때 - 선우 도량, 중앙승가대학 등 - 에도 실실하고 있으며, 누구나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심정적 사실이 그것을 반증하고 있다.
부처님 제자라면 반드시 계를 받아야 한다.
부처님의 제자와 비제자를 구별할 수 있는 기준과 근거를 찾는다면 과연 어떤 것일까. 경전을 읽고 참선을 하고 보살행을 한다면 부처님 제자로서 충분한 자격을 갖춘 것일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렇지 않다.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이 비교해 보려고 불경을 읽는 경우도 있으며, 무종교 인이 참선수행을 하는 경우도 흔하며, 착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이 이웃과 주변을 위하여 봉사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비불자는 경전을 읽고 참선을 하고 보살 행은 할 수 있을지언정 수계식을 치를 수는 없다. 그것은 이미 개종하거나 종교를 갖겠다는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부처님의 제자인지는 수계여부로 귀결된다. 물론 계만 받은 걸로 만족하고 모든 공부를 도외시하는 경우는 논외로 해두고.
계행은 주변을 감화시킨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뒤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에게 최초로 법륜을 굴리신다. 그 가운데에 마승馬勝비구는 거동이 단정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하루는 왕사성 북문 근처에서 탁발을 하고 있었다. 그는 코끼리 왕이 걸어가듯 앞만 보고 걸어갈 뿐 이리저리 돌아보지 않았으며, 돌아보더라도 사자처럼 온몸을 움직여 돌아보곤 했다. 달리는 말도 마승비구를 만나면 두 발을 모았고 나르던 새도 빙글빙글 돌아서 예를 표할 정도였다. 이런 모습을 사리불이 길을 지나가다 보고는 크게 느끼는 바가 있어 그에게 물었다.
“그대의 스승은 누구며 무슨 가르침을 펴십니까?”
“나의 스승은 석가모니 부처님입니다. 나는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잘 알지는 못합니다만 스승께선 인연의 법을 설하십니다.”
이에 사리 불은 그의 도반인 목건련에게 모든 이야기를 한 뒤 함께 그들의 스승인 산자야Sanjaya - 회의론의 입장에서 모든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대하여 판단 중지적 입장을 견지하며, 고행적 수행 방법을 선택한 듯하다 - 의 만류를 뿌리치고 이 백 오십 명의 제자와 함께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이에 산자야는 그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피를 토하고 죽었다. 이 소식을 듣고 3 가섭 - 우루빈나 가섭, 나제 가섭, 가야 가섭으로 그들은 불을 숭배하였다 - 이 일 천명의 대중을 거느리고 출가하여 교단은 천이백 대중이 되었다.
사실 마승비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다. 그가 소화를 시키지 못하고 그냥 옮겨 내기만 한 “모든 법은 이 연을 좇아서 생겼다가 인연이 다하면 없어진다.”는 게송을 사리 불은 바로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의 품위 있는 거동 하나로 불교가 커다란 교단을 이루게 되어 당시 종교사상계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이는 특히 오늘날과 같은 다종교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결국 중생계는 소리와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율원 큰방 입구에는 “마승비구의 품위 있는 거동을 익히라(習馬勝之威儀)”하는 주련이 총림의 대중을 오늘도 경책하고 있다.
계율은 부처님 법을 오래 머물게 한다
사리불이 부처님에게 “어떻게 해야 부처님의 법이 이 세상에 오래오래 전해질 수 있겠습니까?” 하고 여쭈었다.
“그것은 계의 실천 여부에 달려 있다. 마치 여러 가지 아름다운 꽃을 책상 위에 그냥 두면 바람에 날려 흩어져 없어져 버리지만 끈으로 매어 둔다면 오래 보존할 수 있는 것과 같느니라”고 사분율장四分律藏 - 상좌부의 한 부파인 법장부法藏部의 율장으로 전 육십권의 분량이다. 불타야사佛陀耶舍와 축불염竺佛念이 410~412에 장안에서 한역하였다. 동국 역경원에서 한글 번역본을 간행하였다. -에서 말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 아름다운 꽃은 당신의 가르침이요, 끈이란 계율을 말하고 있다. “선종의 정법 또한 계가 없다면 지킬 수가 없다(禪宗正法 非戒無防)”고 비구계본에서도 거들고 있다. 그래서 자각慈覺 종색스님 - 북송 때 운문종 선사이며 「선원청규」를 편집하였다 - 은 이에 덧붙여서 “수행자가 수행자다울 때 법이 법다워지고, 수행자가 수행자답지 못할 때 법 역시 법답지 못하게 된다(僧重則法重 僧輕則法輕)”고 하였던 것이다.
경허스님을 평가할 때 자주 인용되는 “선하기로는 부처님에 버금가며, 악하기로는 호랑이보다도 지나친다(善過於佛 惡過於虎)”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끊어진 선법禪法을 이 땅에 다시 잇게 한 공은 부처님 못지 않지만 계율을 소홀히 한 부정적인 측면은 여전히 평가가 보류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공부를 하고 하지 않고는 수행자의 개인 문제로 돌려버릴 수도 있지만, 계를 지키고 지키지 않는 것은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계율을 위한 계율은 외도법이다
계를 지키지 않는 사람도 문제이지만 계를 지키는 사람이 또한 문제일 수도 있다. “나는 율사이다” “계 좀 지킵네” 하고 잔뜩 우월감을 가지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상相을 내어 주변을 피곤하게 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그 행위 자체가 계를 파하고 있는 자기 모순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계란 궁극적으로 정定과 혜慧를 향한 수행의 한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도 계행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여 계를 위한 계가 되어 버릴 때, 그것은 바로 외도법外道法이다. 마승비구처럼 자연스럽게 몸에서 우러나온 점잖음으로 주변을 감화시키고 정화시킬 수 있는 그런 수행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