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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신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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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심을 일구는 이야기 - 이영일 1995년 12월 166호
해가 바뀔 연말무렵이 되면 으레 생각나는 얼굴이 있다. 다름 이닌 어머니 얼굴이다. 78년에 이승을 떠나셨으니 어언 십칠 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내 기억에 각인된 어머니의 모습은 처녀시절부터 노인이 되신 시절까지 참 다양하다. 그 가운데 처녀시절의 모습은, 물론 사진 속에서 변치 않는 포즈로 내 뇌리에 남아 있다. 일제시대 만주벌판을 오가던 시절의 중국 옷차림의 모습에서부터 금강산의 빼어난 배경을 뒤에 두고 찍은 누렇게 빛바랜 사진 속의 젊은 처녀는 늘 내 마음속 고향이었고 부러움이었으며 때로는 긍지이기도 했다. 나어릴 적 , 어머니는 학교 소풍에도 빠진 적이 없었고 매사에 그런 어머니의 열성 덕분에 부처님과 나의 만남도 자연 빨랐고 또 잦았다.
그러나 머리가 크면서 어머니가 점점 작아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철이 들어가는 증거였다.
부족하거나 못마땅한 점도 적잖게 눈에 띄었다. 내가 어른이 되고 어머니 얼굴에 주름이 잔뜩 패이면서 나는 비로소 진짜 철이 들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회학적 용어조차 모를 수 있느냐는 투의 건방진 교만은 가시고, 기가 막히게 내는 반찬솜씨가 훨씬 더 경이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별 것도 아닌 것에 고집을 부린다고 생각한 것도 당신 나름의 인생에서 얻어낸 교훈을 건네주려는 것임을 알았고, 입시 때마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 보여준 기도와 자식 사랑을, 억척스럽게 대들 일도 아닌데 극성을 부린다고 생각했던 내가 오히려 생각이 짧았음을 이제는 어느 정도 짐작한다. 그 같은 솜씨 , 그 같은 열성 , 그 같은 희생적 사랑을 어찌 감히 정작은 더 못난 내가 흉내내랴.

나의 음악감상 변천사도 이런 단계를 밟는 듯하다. 예전에는 판소리나 민요가나 오는 라디오나 텔레비전은 일 분 이상 듣거나 본 적이 없다. 가요, 팝송, 클래식을 세대가 비뀌면서 섭렵하던 내가 지금 가장 많이 듣는 음악은 우리 가락이다. 나이를 먹어서가 이니라 세계화시대에 걸맞게 세계인이 되어가는 증거로 나는 여긴다. 지금도 아마 우리 청소년들은 이런 우리 가락을 별로 선호하지 않을 것이다. 신세대도 철이 들지 않기는 예전과 다를 리 없을 테니까.

요즘 지구상에는 이직도 굶어 죽는 인구가 많다고 한다.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이 세계 여러나라의 구호를 기다리고 있다. 가난과 어려움에 놓인 이웃에게 우리가 가진 것 , 줄 수 있는 것을 주는 일은 살면서 보람다운 보람을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여기에 자만을 도입시킨다. 가난하고 못배운 나라나 사람들을
한울타리 안에 표시해 놓고 우리가 구원할 대상이 바로 이 사람들이라고 강변한다.
자기네들은 잘살고 많이 배웠으니 무지한 사람들에게 조금 선심을 쓰자는 투다. 그러나 개발과 문명이라는 이름 때문에 지금 아프리카에서는 동물들의 멸종과 자연 파괴가 가속화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개중에는 시장성을 노리고
원조를 베푸는 나라도 없지 않을 것이다.
지원은 필요하지만 잃는 것이 없도록, 교만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하나를 알았으면 둘도 알이야 한다. 이른바 잘사는 나라들이 얼마나 이 지구를 물질주의와 환경오염 , 약육강식의 논리로 물들이고 있으며 그러한 것들이 얼마나 세계를 갈등 속으로 몰아넣고 인류의 문명과 미래를 불안하게 하고 있는지에 생각이 미치지 못해선 안 된다.

이제 사 년여만 지나면 서기 2000년이다. 백 년이 꺾이는 한 세기의 고개를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천 년 대륙의 산맥을 넘어가는 실로 역시적인 순간이 오고 있다.
하긴 서기니 단기니 하는 것도 사람이 편의상 만들어 쓰고 있는 것이지 서기 2000년이 된다고 해서 기념 휴거가 일어나거나 해가 두개씩 뜰 리는 없다. 또 사람의 눈이 갑자기 세 개로 늘어나는 일 따위도 벌어질 턱이 없다. 설령 특별한 이적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서기 2000년을 넘기는 순간에 휴거가 이 땅에서 숨쉬며 살고 있다는 사실은 새삼
감격적이기까지 하다.

여기서 우리는 인류사 천 년을 되돌아 봄직하다. 기원전과 서기 1000년, 그리고 1000년과 2000년 사이에서 인류는 어떻게 변해왔으며 , 그 의미는 어떤 것인지 곰곰이 살펴보고 교훈을 얻는 일은 인류가 놓쳐서는 안 될 의무이다.

그 동안 인간의 생활은 엄청나게 변했다. 지구 반대편에 있으면서도 얼굴을 마주 대하고 대화를 나눌 정도로 편리함을 누리고 있고 달을 밟는 데서 나아가 우주에 사람 살 곳을 민들 준비를 할 만큼 역량이 신장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잘산다는 것이 무엇이며 , 우리가 잘 살려고 바둥대는 부유하고 편리한길, 눈 앞의 이익을 생각하는 동안 인류가 따뜻한 마음을 잃고 세계가 파괴의 길로 가서는 안 된다. 아무리 가는 길이 바빠도 한뼘 쯤의 하늘과 같은 여유는 가지고 한번쯤 진지하게 뒤를 돌아보아야 한다.

2000년대 인류는 진짜 잘나야 한다. 슬기로워야 한다. 껍데기로 사는 허수아비여선 안 된다. 유행과 분위기로 사는 미시족이어선 안 된다. 삭막한 우주에서 홀로 유영을 즐기기만 하는 우주인이어서도 안 된다. 2000년대 인류는 2000년대 인류답게 새로 태어나야 한다. 하나를 얻기 위해 잃어 버렸던 둘을 되찾고, 그 얻었던 하나마저 허구였다면 다시 버릴 줄 아는 신인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