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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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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정병조 1990년 07월 101호
성불합시다
불교방송국이 생기던 날, 나는 까닭 모를 목메임으로 그 불교의 소리들을 음미하였다. 늘 듣던 가수들, 그 노래였지만 한결 새롭게 느껴졌다. 넉살좋은 코미디언이 쑈를 마무리 하면서 “여러분 성불합시다” 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마치 견성이라도 한양 어깨를 으쓱이기도 했다.
그날부터 우리 집 식구들은 T. V 대신에 라디오 앞에 모여 앉는다. 아이들은 새벽부터 이슥한 밤까지의 모든 프로를 구구단 외우듯 달달 외운다. “여기는 B. B. S 불교방송입니다. 몇번으로 전화 주십시오”라는 M. C의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아이들은 전화통에 매달린다. 비록 한번도 전화통화는 안되었지만, 그래서 경품은 못타 봤지만 아이들은 그 일 자체를 신나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던 나에게 전혀 엉뚱한 ‘사건’이 터졌다. 내가 직접 출연해서 진행을 맡아 달라는 섭외를 받은 것이다. 라디오나 T. V에 가끔 나가서 불교이야기를 해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내가 주체가 되어서 진행을 맡는다는 것이 망설여졌다. 솔직히 말해서 진행의 기술이나 방송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싫은 것은 매일 오후에 그 일에 매달려야 한다는 점이다. 일요일도 없는 생방송이라는 점이 제얼 마음에 걸렸다.
다음으로는 프로구성에 대한 설명을 듣고 품위손장에 대한 걱정을 했다. 뭐 별로 지켜야 할 품위가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명색이 교수라서 유행가를 직접 틀고 교계 뉴스를 전하는 일 등이 아무래도 챙겼다. 그리고 이 프로를 맡도록 내정된 이가 극구사양하는 통에 퇴주잔이 내게 왔다는 자존심 상하는 소문도 망설여지는 부분의 하나였다. 감정의 쌍곡선이 무심한 하늘을 몇번이나 맴돌다가 나는 그 프로를 맡기로 결심하였다. 부처님 덕에 밥먹고 사는 주제에 그 자그마한 부름을 쥐꼬리 같은 자존심으로 물리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방송을 시작하고 보니 어려움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앞말은 시작했는데 도대체 뒷말이 연결되지 않는다. 한번 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도 없고, 더듬거리다 보면 한시간이 지난다. 출연해 준 게스트가 자꾸 삼천포 쪽으로 빠지는 것도 진땀나는 일이다. 나는 사회자이기 때문에 언어를 절제해야 하고, 답답한 가슴에 속병이 생길 지경이다.
더구나 기막힌 일은 아이디어의 빈곤이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라든가 “지구는 돈다”라는 이야기는 방송의 주제가 될 수 없다. 평범한 속에서 ‘감동’을 찾아야 하고, 그것이 제대로 전달되어야 한다. 그래서 늘 나는 한 주일을 앞서 산다. 내일은 무엇을 해야 되며, 내주는 어떻게 진행해야 하느냐로 해골이 복잡한 것이다. 그래서 방송하러 들어가는 내 모습은 도살장가는 소걸음이며, 마치고 나오는 발길은 모래주머니 단 것처럼 처지고 너절하다고 느껴진다.

고독한 밀실
방송실의 문이 ‘철컥’ 하고 닫힌다. 이윽고 숨막히는 몇 분이 지나면 P. D의 무정한 신호가 들어온다. 머리 위로 ‘방송중’ 하는 빨간 불빛이 들어오면서 이제 많은 이야기들을 토해 나간다. 그 순간이 얼마나 고독한지 모른다. 밖에서는 엔지니어·작가·리포터 등이 웃고 떠드는 기색이지만, 안에 있는 나는 적막강산이다 1초의 여유도 용납하지 않는 긴장, 숨소리, 바늘 떨어지는 소리조차 거부감을 일으키는 절대의 공간인 셈이다. 밖에서는 쉬지 않고 주문이 들어온다. 큰 글씨로 ‘너무 빠르다’‘목소리가 처진다’‘몇분 몇초에 노래를 소개하라’ 등등. 그때 나는 교수가 아니라 학생이 된다. 저 주문이 옳은가 그른가를 판단할 능력을 상실하고 만다. 정신없이 P. D의 눈치만 훔쳐 볼 뿐이다. 방송이 끝나면 즉석 품평회가 열린다. 내 방송을 들을 기회가 없는 ‘나’에게 격려와 공격이 교차한다. 칭찬하는 소리는 왜 그렇게 짧고, 질책하는 음성은 왜 그리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지 모르겠다.
방송을 시작하고부터 학생들의 반응도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가장 보편적인 거부반응은 역시 그 노래 소개하는 일인 듯싶다. 강의실에서 고담준론을 일삼던 덕 높은 스승(?)이 어느날 갑자기 ‘사랑의 미로’가 어떻고, 펄 시스터즈 운운 하니까 역시 좀 언짢은 모양이다. 반면에 열혈적 불교인들은 좀 다른 각도에서 불만을 터뜨린다. 찬불가를 틀든지 가곡·클라식으로 선곡(選曲)을 바꾸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충고이다. 물론 다 옳은 지적이기는 하다. 우리는 기독교 이야기를 들으려고 불교방송을 듣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 말씀을 여법하게 전해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도 있을 수 있다.
문제는 그 전달방법이다. 방송은 말 그대로 불특정 다수를 향한 ‘열려진 매개체’이다. 따라서 모든 계층·직업층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다. 요컨대 보다 많은 이들에게 보다 진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밖에는 없다. 따라서 호교적(護敎的)인 안목에서 불교를 보려는 태도는 지양될 수밖에 없다.
부처님의 초전법륜을 다시 음미해 보자. 사제·팔정도·십이인연으로 묘사되는 가르침의 어디에도 ‘부처님 믿으면 극락간다’는 말은 없다. 담담하게 삶과 생명의 실상을 밝히셨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천명하신다. 또 삶과 죽음의 번민이 내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지시하셨고 그 실천적 극복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불교홍포라고 해서 책상 두드리며 불교 믿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능사이지는 않다. 오히려 한 마디도 불교 이야기를 안하면서도 불교적 감각과 태도가 배어 나오게 하는 센스가 필요하다. 그게 바로 포교이다. 아직 그와 같은 최상승 법문을 하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되도록 노력은 해야 하는 것이다.
이래저래 요즈음은 고독하다. 남에게 벌거벗은 몸을 노출시킨 것처럼 자꾸 두려워지고 쑥스럽게 느껴진다.

참다운 공양
나는 ‘머리’부터 불교에 짖기 시작한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지독한 예수교인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불교에 호감을 가질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 파란만장한 학교생활 끝에 동국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불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편견이 벗겨지면서 한없는 애착을 갖는 질적인 변환이 나의 학창시절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지성적 불교 이해라는 병폐를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사십줄을 넘어서면서부터 소위 ‘신심(信心)’이라는 걸 가지게 되었다. 배우면 배울수록 모르겠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암담해지니 이제는 말뚝 신심 밖에는 어디 기댈 데가 없게 되고 말았다. 그래서 기도를 한다. 독송도 한다. 참선도 한다. 그러면서 부처님이라는 위대한 인격을 향한 끝없는 사모의 생각에 빠져 들곤 한다.
요즈음은 우리 불교서적들을 영어로 출판해야겠다고도 다짐한다. 미국·캐나다 등지에 있는 동료들과 함께 반드시 이 일을 마무리지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1천6백년 역사를 들먹이면서 기초적인 개론서 하나 영어로 없대서야 체면이 말이 아니다. 부지런히 돈 모아서 능력있는 젊은이들도 키우고 좋은 불서도 내고 싶다. 한국말로 8만4천권이 있으면 다른 나라 말로도 있어야 한다. 그것이 불교홍포가 아니겠는가.
우선 지금 쓰고 있는 「한국불교사상사」를 마무리지어야 하는데 3백 매에 걸려 있는 원고가 여섯달째 요지부동이다. 방송을 시작하면서 더 짬이 나지 않는다. 원래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는 주제에 그 일에 매달리다 보니 더 게으르게 되고 만 것이다.
사실 가장 안타까운 일은 공부할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는 강박관념이다. 학기중에는 늘 강의의 부담에 시달린다. 사실 전공과목을 다섯 강화 이상 한다는 것은 무리이다. 늘 새로운 시각과 언어를 칭f아야 하기 때문에 그 스트레스는 형언하기 어렵다. 잡지나 불교계 신문에 쓰는 원고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논문을 쓰는 일은 피를 말린다. 아이디어는 고갈나고 날짜는 부득부득 다가온다.
법회 보는 일은 또 얼마나 신경 쓰이는가. 그래서 학기중에는 발이 공중에 떠 다닌다. 방학이 되면 더 바빠진다. 전가의 보도처럼 “방학 때 해 드리겠다”고 실언을 한 일들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는 만악(萬惡)의 근원이 ‘바쁜데서’ 비롯된다. 바쁘다 보면 소홀해지지 않을 수 없고, 소홀하다 보면 그 무지를 감추려고 위선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요사이는 강의를 절제하기로 결심했다. 당분간은 ‘쓰는’ 일에 주력할 작정이다. 벌써 눈이 아물거려서 책을 오래 보지는 못하지만 핵심을 이해하는 일
은 예전보다 나아져 가고 있다. 부지런히 원고 써서 부처님께 진 빚을 갚아야겠다. 참다운 공양(供養)이란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