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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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성전
1995년 12월 166호
을해년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저무는 시간은 시간을 살아온 모든 이들에게 살아온 시간을 정리하고 다가올 시간에 대하여 자신의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의미를 가진다. 정리하고 정리해도 언제나 회한이 남는 것이 시간에 대한 인간의 존재방식이지만 그래도 그 회한속에서도 인간이 환재해야 할 이유를 갖는 것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회한의 무게가 크고 무겁더라도 희망의 작은 길을 볼수만 있다면 우리들 모두는 살아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고 생을 긍정하며 살아갈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정치, 경제적 문제가 희망의 작은 길을 차단하고 무겁게 우리를 소외시킬 때 사회적 존재로서의 우리는 절망의 깊은 수렁을 표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노태우씨의 비자금사건은 우리에게 절망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다. 천문학적인 불법 비자금과 은닉. 그는 참담한 표정으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것은 통치 자금이었고 관례였다고. 그리고 이런 말도 덧붙였다. 국민이 내리는 어떠한 벌이나 돌팔매도 감수하겠다고. 우리는 그의 눈물이 진실이길 바랬다. 그러나 그에게는 돈의 출처에 대한 진실을 입증할 만한 용기가 없었다. 단지 자구책에만 골몰하는 그의 모습은 파렴치 해 보이기까지 했다.
국민의 계속되는 분노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내 입을 열지 않고 있다. 그의 굳세게 다문 입 속의 어둠처럼 우리 사회는 점점 어두워만 가고 있다.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고 그의 침묵이 빚어낸 어둠속에서 모두 거짓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검찰이 성역 없는 수사를 외치며 그의 불법 자금 전반에 걸친 수사를 하고 있지만 검찰의 수사가 결국 성역을 남길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진실에 접근한다는 것이 우리의 사회에서는 어쩌면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누가 무엇을 말해도 우리는 이제 아무것도 믿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현 정권이 수사의 공정성을 거듭 주장해도 우리는 현 정권에 대한 믿음을 전혀 가질 수 없게 되었다. 공정성이 언제나 편파성이 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사회의 구조적 폭력을 여전히 목격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헤게모니를 장악한 자는 언제나 정당하고 그 반대편은 언제나 부도덕하고 불법이었던 것이 우리 사회의 논리였던 것이다. 그러한 사회적 논리의 폭력 앞에서 우리는 진실에 접근한다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패배주의적 허무감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권력의 행태 속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국민들 앞에 이제 그들은 참회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솔직히 고백해야만 한다. 노씨도 검찰도 현 정권도 모든 것을 숨김없이 털어 놓을 때 국민 모두의 상처 받은 마음도 치유될 수 있고, 총체적으로 부패한 우리 시회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한 해가 저무는 이 시간, 컴컴한 어둠속의 거짓은 모두 끝내야만 한다. 그리고 그들은 진정한 참회자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감추어진 진실들을 국민들에게 낱낱히 고해야만 한다. 그 때 거짓에 가리웠던 희망에 이르는 작은 길도 선명한 모습으로 다시 드러날 것이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