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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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박경희
1994년 01월 143호
스님 그 동안 안녕하셨어요.
한 해의 마지막 하루를 남겨 두고 있는 저녁, 벽 한 귀퉁이에 매달려 있는 12월 달력처럼 왠지 온몸이 헐렁해지는 듯한 기분입니다. 스님은 물론 화두와의 씨름에 여념이 없으시겠죠?
언젠가 찾아뵈었던 문경 봉암사와 그 곳에서 정진하고 계시던 스님 모습이 떠오릅니다. 마치 엄한 노스님의 표정처럼 서슬 퍼렇게 살아있는 봉암사의 뒷산과 겨울 하늘, 그리고 눈 덮힌 계곡의 얼음장을 쩡쩡 소리나게 깨뜨릴 것만 같던 불같은 스님들의 눈빛이 지금도 눈앞에 생생합니다. 끝없는 의문, 화두 하나를 향한 단단한 의심으로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겨누는 비수가 되어 있는 스님들의 모습이 부럽고, 한편으로는 엉터리없는 자만과 집착으로 자신에겐 한없이 관대해지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늘 많은 것을 원하고 있는 제 모습이 부끄러웠습니다.
스님, 스님께서는 사람이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든 ‘이 뭣고?’를 잊지 않아야 한다고 하셨지요. 그리고 분별 심을 내지 말고 모든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라고요.
그런데, 스님. ‘잊지 말아야지’ 다짐에 다짐을 해도 그 놈의 ‘이 뭣고?’는 잘도 꼬리를 감춰 버리고 맙니다.
‘끊임없이 나를 만들어 내는 이 힘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하는 물음으로부터 십리, 만리 떨어져서 자꾸만 ‘나’ 라는 허상에다 누덕누덕 옷을 입히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할 때면 참 더없이 초라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슬쩍 잘도 꼬리를 감추고 마는 ‘이 뭣고?’ 라는 놈은 속세간의 땅을 싫어라고 산을 좋아하는 산뱀인게야, 하고 엉뚱한 생각을 내어보기도 합니다. 당치 않은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벌써 혀를 끌끌 차고 계실 스님 모습이 선합니다. 아직도 말뜻을 모르냐고요?
스님,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한편의 보고서를 작성할 때마다 그리고 제 삶이 시간과 욕망의 한 끝에서 그냥 사라져 버리게 될 것만 같은 불안감이 덮칠 때마다 과연 학문이란 특히나 문학이란 제게 무엇인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각자의 삶이 세계, 곧 수많은 우리 속에 던져진 하나의 문제라면 그 문제를 풀어 보려고 애쓰는 것, 문제의 핵심에 도달해 보려고 하는 것은 수행하는 스님들이나 속세간에 사는 저희 중생들에게나 회피해서는 안 될 의무일 테니까요. 각자 의무를 수행하는 방법은 다를 터이고 저는 그 방법의 하나로 ‘문학’을 선택한 것일 수 있습니다.
고구려 유리왕의 황조가(黃鳥歌), 서경별곡, 가시리 같은 고려가요, 또 황진이, 김소월의 시 세계를 하나로 찌르는 한의 의미를 되새겨 보기도 하고,「춘향전」에 나타나는 선조 여성들의 깨어 있는 자유, 평등의 정신에 놀라기도 하고, 「홍길동전」이 갖는 혁명성에서 서구 사상들에만 이끌려 우리 것이 이미 가지고 있던 혁신성을 간과하고 있었던 과오를 반성하기도 하며, 제 생활과 정신을 그 때마다 돌아다 보게 하는 문학은 제 삶의 문제 중심입니다.
존재의 궁극을 향한 의문과 끝없는 긍정에의 몸부림이 바로 삶이고 동시에 문학인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 길의 어디쯤 에는 ‘죽음’이 서 있을 테지만 삶 또 그 죽음을 끌어안고 도는 찬연한 몸짓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봅니다.
스님, 밖에는 종일 겨울비가 그치지 않고 불빛 사이로 가는 빗발들이 언뜻언뜻 스쳐 가고 있습니다.
다시 시작되는 한 해, 제게 주어지는 모든 인연들에 정성을 다하고 좀더 삶의 문제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세상에 너무나 많이 마련되어 있는 모범답안들을 물리치려면 용기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걸 생각합니다.
스님, 비가 그치면 내일 아침에는 좀 더 추워지겠지요.
날이 새면, 이 곳, 산에서 멀어져만 가는 사람들의 그치지 않는 아픔 같은 빗줄기들이 예쁜 눈꽃으로 영글어 있을 세상을 그려봅니다. 하얗게 아름다운 세상에 비치는 첫 새벽의 빛 같은 소망들이 모두의 가슴에 소복이 쌓이기를 기원하면서요.
스님, 새해의 정진에 성취 있으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