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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구포신(除舊布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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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미영순 1994년 01월 143호
비롯함을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내 적지 않은 나이에 다시 한 살을 보태고 있습니다. 철없이 보낸 십 년 세월을 공제하고서도, 살아갈 날들보다는 살아 버린 날들이 조금은 더 많은 듯하기에 이제 더해지는 한 살은 전보다 조금 더한 무게로 다가오는가 봅니다. 오늘과 내일의 때매김을 확실하게 해보겠노라고 작은 무릎 끌어안고 온 밤을 지켜 앉았던 어린 날이 있었습니다. 어제가 그 날의 오늘이었듯 내일도 또 그 날의 오늘일 뿐이라며, 인류가 만들어 낸 약속 부호 ‘시간’ 앞에서 괜스레 당당해 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 날이 그 날토록 마련된 내일이련만, 오늘의 내일은 어제의 내일과는 그 때깔이 다르다는 걸 새록새록 되새김질해 보는 그런 나이가 되었기에 오늘의 한 살은 또 그만큼의 무게를 지닌 거라고 슬며시 저울질해 봅니다.
송구영신(送舊迎新). 우리 식 한문으로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중국어로 말해 보면 제구포신(除舊布新)이라는 게 있습니다. 어쩐지 막연하고 피동의 느낌이 강한 송구영신보다는, 직접 주체가 되어 적극적으로 사역시키는 제구포신이라는 말이 훨씬 마음에 듭니다. 나는 지금 제(除)하여야 할 구(舊)는 분명한데 무엇을 어떻게 포(布)해야 할지를 몰라 이렇게 이 밤을 지킵니다. 내가 남들을 위하고 사랑한다고 여기는 방법, 그것이 바로 구(舊)입니다. 그 남들이 내게 바라는 방법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싶지만 이제까지 실패만을 되풀이하였는가 봅니다.
귀국한 지 일 년쯤 되었을 때 방황하는 어떤 젊은이를 만났습니다. 나의 유한능력(有限能力)이 그를 구제하지 못하는 걸 보면서 부처님의 위신력을 빌리기로 하였습니다. 집이 잠실이라고 두곳 사찰을 추천받고서는, 골목 안에 숨어 있는 ㄱ사를 찾지 못하여 큰길가에 나서 있는 ㄴ사로 찾아들었습니다. 손수건 가슴에 차고 다니던 어린 때 광나루에서 배 저어 소풍 갔던 ㄴ사를 아직 기억한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ㄴ사 청년회와의 관계는 이렇게 이루어졌고 나는 이 곳을 하심下心의 연습장으로 삼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난 실패한 것 같습니다. 차츰 신분(?)이 드러나 나를 지도위원으로 한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여태 그들과 대화하는 언어를 배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행동양식에 당혹해질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절 밖에서 그들을 마주치고는 사회에서 존중되는 가치를 지향하려는 나는 행여 나를 알아보는 누군가의 눈에 띄기 전에 얼른 그 곳을 벗어나려고 애를 쓴 때가 있기도 합니다. 이렇듯 나의 하심은 ㄴ사 경내하심境內河心에만 머물러 있고, 그나마도 끊임없이 치오르는 아상我相을 다스리기에도 자주 지쳐버려 차라리 하심을 포기하고 편하게 살아 버리고 싶어질 때가 꽤 여러 번 됩니다.
나는 이제까지 ‘우등優等’이라고 선별되던 집단 속에서 비록 좌절의 아픔이 있었다 해도 그 보다 많은 성취의 경험으로 이를 이겨 낸, 그래서 확실한 자기 신념을 가지고 좀더 충실한 ‘우등’ 이 고자 노력하는, 그런 사람들을 주로 보면서 살아왔습니다. 청년회에서 이들과는 사뭇 다른 젊은이들을 적잖이 만나고서는 가슴 한켠이 서늘하다고 느낍니다. 성취의 경험이 별로 없어서 진한 상대적 패배감으로 응어리진, 그래서 ‘저항’을 행동 양식으로 선택해 버린 젊은이들이 뜻밖에도 많았습니다. 이들을 위한 역할이 나에게 주어졌다고 믿었습니다. 나의 삼십 년 신앙생활이 실명失明의 세월을 이겨 낸 나의 신념이 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기를 바랬습니다. 나는 관세음보살이 내게 다시 빛을 주었다고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혜안慧眼을 뜨고 말겠다는 내 강렬한 자기 확신이 그보다 쉬운 육안肉眼을 다시 뜨게 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대학 마당에서 노닌 지 그럭저럭 이십 년 가까이 되어 갑니다. 교수란 지식이나 팔아먹는 글장사가 아닙니다. 지식을 바탕으로 쌓아 올린 자기 인생 자체를 파는 직업이라고 믿기에, 대학을 가보지 못한 많은 젊은이들이나를 활용해 주길 바랬습니다. 그러나 이는 내가 그들을 위한다고 여기는 방법일 뿐 그들이 원하는 방법은 못됩니다. 그들은 불합리한 사회구조를, 하다못해 어느 특정인이라도 아둑아둑 짓씹어 그들을 후련하게 해 주길 바라지만 나는 그런 걸 할 줄 모릅니다.
무소유無所有․무소주無所住란 불경 속에서는 거룩한 그르침입니다. 상대적 박탈 감에 늘 울분이 목구멍에 차 있는 이에게 그것을 실천해 보자고 하면, 도전을 두려워하는 기득권자가 도전자의 의식을 마비시키려고 쓰는 교활한 술수라고 저항을 받게 됩니다. 보시라든지 봉사라든지 하는 대승행大乘行을 실천해 보자는 젊은이가 청년회 회장이나 서울지구 임원에 야심이 있는 것으로 의심받는 걸 보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행하는 보살도로서 사바세계가 곧 극락정토일 수 있음을 체험하려 들지 않습니다. 염불이나 주력으로 단숨에 피안으로 도피해 버리려고 할 뿐입니다. 구제받지 못할 말법시대를 빨리 파괴해 버려 미륵의 하생을 앞당겨야 한다고도 합니다. 자력신앙의 의미를 일깨워 주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나는 삿된 알음알이에 빠져 버린 마구니로 되고 맙니다. 혼자서 유한능력을 서러워할 밖에 없다는 생각을 이따금씩 해보곤 합니다.
1993년은 장애인 미영순을 확인 받은 한 해였습니다. 각종 언론매체가 몇 달을 두고 나를 소개했습니다. 참선으로 보낸 실명의 시간이 있었어도 감기를 앓고 난 그런 것인 줄로만 알았을 뿐 스스로가 장애인이라는 건 몰랐습니다. 내 시력이 문제가 되어 연구능력을 평가받을 때도, 남을 헐뜯지 않고서는 제 자리를 지킬 수 없는 이를 딱하게 여길 수 있을 만큼 늘 당당했습니다. 중국 전문가로서 매스컴을 타기 전에 장애인으로서 알려져 버린 것이 좀 불만스럽긴 하지만 많은 장애인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을 위한 나의 역할을 찾고자 하면서, 스스로 장애의식이 조금도 없는 나는 그분들과 대화하는 언어를 전혀 모른 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그분들을 위한다는 나의 방법이 그분들이 바라는 방법은 아니라는 걸 말입니다. 그분들이 바라는 방법, 신新을 알아보고자 이 밤을 지킵니다만 묘안이 있을 리 없습니다. 누구처럼 교계의 명사가 되려 함이 아니요, 교계 조직을 이용해 보려고 함도 아닐진대, 법당 안 커다란 기둥 뒤에 있는 듯 없는 듯 자리하고 서서 나름대로 열심히, 이제까지보다 조금 더 열심히 사랑을 쏟아보려고 합니다. 밤새워 찾아낸 신(新)이 결국은 구태의연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과 내일에는 경계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