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기는 삶, 여유 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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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공종원
1994년 01월 143호
밤 늦은 시간에 모범택시를 잡았다. 매서운 겨울밤 바람을 맞으며 늦은 시간에 빈 일반택시를 기다리는 것이 너무 어려웠던 탓이다. 영업 행위를 하는 자가용 승용차가 우리 앞에 자주 멈추어 서고는 했지만 우리는 번번이 모른 채 했다.
차를 탄 뒤에 고교 선배 안형은 자신이 영업 행위를 하는 자가용을 절대로 타지 않은 까닭을 이야기하였다. 술에 취해 두 번 그런 차를 탄 일이 있었는데 비몽사몽간에 집은 찾아 들어갔지만 번번히 몸에 지니고 있던 지갑의 돈을 털렸던 불쾌한 기억을 지울 수 없다는 얘기다. 그들이 뜨내기이기 때문에 자기의 직업에 충실하지 않고 손님의 지갑을 노린다는 생각이 확실하게 자리잡았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안형은 자신이 경험한 모범택시에 대한 좋은 기억을 회상하는 것이다. 언젠가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온 다음날 아침, 아내가 지갑이 어디 있냐고 묻더라는 것이다. 저고리 주머니를 다 뒤져도 지갑이 없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지갑 속의 월급이며, 신용카드, 신분증을 생각하며 한심해 하는데, 아내가 지급을 내놓더라는 것이다. 안형을 내려놓고 가던 모범택시 운전사가 뒷좌석에 떨어져 있는 지갑을 발견하고 그 속의 신분증과 명함에서 안형 집 전화번호를 찾아 내 친절하게 전화해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곤드레가 되어 있는 안형 대신 아들이 자가서 지갑을 되찾아 왔다는 것이다. 안형은 그 고마운 기사양반에게 사례도 없이 지갑만 받아 온 아들을 나무랐지만 자신의 고마운 뜻을 전할 도리가 없어 안타까울 뿐이었다는 것이다. 다만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 기사의 고마운 뜻이 가슴속에 남아 있어 자신으로서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안형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어떤 때 자신이 일반택시를 타고 가다 그 기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였더니 그 기사는 한숨을 지으며 이렇게 말하더란 것이다. 일반택시 기사들은 짤각짤각 올라가는 요금 미터에만 신경을 쓰기 때문에 그런 마음의 여유가 없다. 만일 그런 일이 일반택시에서 일어났을 경우에는 아마도 지갑을 돌려주는 것이 50퍼센트나 될지 의심스럽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납금을 내고 얼마쯤 돈을 남길 수 있는 지에만 신경을 써야 하는 자신의 인생이 너무 한심하지 않냐고 하더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안형은 자신이 그런 처지일 때 과연 어떠했을까 하고 생각해 보고, 또 일반인들이 그럴 경우 과연 30퍼센트쯤이나 지갑을 찾아 돌려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모범택시 기사는 그 일반택시 기사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자신도 얼마 전까지 일반택시를 몰면서 사납금에 신경을 쓰고 요금미터가 잘 올라가지 않는 데 마음을 빼앗겨 초조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마음의 여유가 너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모범택시 기사의 제복을 입고 생활하면 서는 자긍심도 생기고, 비싼 요금에 따른 당연한 서비스를 하려고 마음을 다 잡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직업에 대한 만족도 커지고 생활 태도도 여유로워 졌단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쫓기는 삶과 여유로운 삶에 대해 생각하였다. 미터기를 의식하며 사는 일반택시 기사의 쫓기는 삶과 하루에 단 몇 사람만 태우면 살 수 있다는 모범택시 기사의 여유도 생각하였다. 물론 일반택시 기사는 모두 쫓기면서 살고 대신 모범택시 기사들은 모두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산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직업이 인생의 전체를 결정한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두 유형의 직업이 수입 면에서 차이가 나고 그럼으로 해서 직업 관의 차이를 가질 수 있고 인생관에도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적 여유가 반드시 인생관의 여유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도 적어도 상당히 중요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쫓기는 삶을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 일반택시 기사의 처지를 동정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답답해하기도 한 것이 우리 국외자들의 태도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하면 우리 모두는 결코 국외자가 아니다. 우리가 비록 일반택시 기사는 아니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일반택시 기사처럼 인생살이의 운전대를 잡고 살아간다. 자신은 아니라고 하지만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운전대를 잡고 짤각짤각 올라가는 택시미터기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초조한 삶을 살아간다. 택시를 탄 손님의 입장이 되어도 마찬가지이다. 택시 기사는 미터기의 숫자가 더디 올라가는 데 답답해하고, 손님은 반대로 미터기의 숫자가 왜 이리 자주 바뀌는지를 탄식하지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초조하게 쫓기며 사는 신세는 다를 것이 없다.
우리 인생은 어차피 쫓기며 사는 신세라는 생각이다. 살려고 쫓기고 더 잘 해 보려고 쫓긴다. 잘못하면 낙오자가 되고 가족의 생계조차 어렵다는 강박이 우리를 초조하게 한다. 생업은 그처럼 신성한 것이다. 운전대를 잡는다는 일 자체가 생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렇지만 일 자체가 우리의 인생이고, 우리의 삶의 의미라는 점도 생각할 일이다.
우리의 삶이나 직업이 생계수단이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생각은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 이것이 아닌 다른 일거리로 우리의 생계는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적어도 우리의 마음에 작은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운전대를 잡는 일을 하나의 인생살이로 보고, 하나의 가치 있는 일로 파악한다면 아마도 우리 인생이나 일에 대한 태도가 얼마쯤은 달라질 것이다. 좀더 여유롭고 성숙한 삶이 될 것이다. 기왕 우리가 이 세상에 와서 살게 된 이상 우리의 삶 자체를 즐기며 성실하게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스물 네 시간도 짧다고 바쁘게 뛰는 일본 수상 호소가와는 최근 자신의 측근에게 “이건 정말 사는 것 같지 않다.”라고 했다. 나라 일로 몹시 바쁜 한 나라의 수상이 그런 소리를 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그는 “야끼도리도 먹으러 가고 싶고 테니스도 일 주일에 한 번쯤은 쳤으면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비근한 이야기이지만 한 나라 제1의 권좌에 있어도 사람은 여유롭게 살수가 없는 것은 확실하다. 일반 택시를 모는 기사가 마음의 여유 없이 쫓기며 사는 것과 결국 별로 다를 바 없다는 얘기이다.
우리들에게 종교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모두 자신의 운전대를 잡고 쫓기듯 살아감에는 누구도 차별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인생에서도 삶의 의미를 터득하고 아름답게 살려고 하는 이는 여유를 아는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쫓긴다고 우리의 마음마저 옹색해지면 우리의 삶 자체가 아무런 의미도 여유도 없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바라보며 좀더 가치 있고 뜻 있는 삶을 조정해 가는 것은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 운전대를 잡는다고 모두 똑같이 서둘고 앞서겠다고 다투며 앙탈하다가는 우리 사회는 온통 싸움판이 되고 말 것이다. 쫓기며 달리는 차가 교통 사고를 내게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럴수록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좋은 일,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로 새기며 이를 생활에서 실천하는 일은 바로 이 여유일 것이다. 새해를 복되게 하는 삶도 바로 여유에서 반드시 찾아지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