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불교의 기본 성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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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의 부처 - 장휘옥
1995년 12월 166호
석가모니 입멸 뒤, 불교교단이 어떻게 변해갔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석가모니가 입멸한 뒤 곧바로 교법과 계율이 흐트러질 것을 우려해서 석가모니가 생전에 설한 가르침들을 수집하는 회의(제1결집이라 함)를 열었으며, 인도에서만 네 번의 결집이 있었다고 하는것에서, 불교 교단은 교리의 정비와 교권의 확립을 위해 노력해 갔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불교는 처음에는 중인도의 일부 지방을 차지하는 작은 조직에 불과했지만 석가모니 입멸뒤 치츰 전국으로 전파되면서 교세를 확장해 갔으며, 약 백여 년 동안 각 지역의 불교 교단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지키면서 동일한 교단규칙(律)에 따라 통일된 교단조직을 유지하였다. 학계에서는 이 시기의 불교, 곧 석가모니의 성도에서 입멸 후 약 백 년(일설에는 이백 년) 경까지의 불교를 일반적으로 원시불교라 부른다. 여기에서 입멸 뒤 약 백 년까지라고 기한을 정한것은, 그무렵 불교 교단내에 처음으로 분열이 일어나 그 때까지 한 형태로 전해오던 불교 교단이 진보파인 대중부와 보수파인 상좌부로 분열되었기 때문이며, 따라서 분열 이전의 불교를 ‘원시불교’ , 아후의 불교를 ‘부파불교` 라 부르게 된 것이다.
학자들 가운데는 원시불교라는 말이 ‘뒤떨어졌다` 는 인상을 준다고 해서 ‘초기불교’라 부르는 사람도 었다. 또 원시불교를 다시 근본불교와 원시불교로 니누는 학자도 있다. 이 경우 근본불교란 석가모니 및 그 직제자 시대의 불교를 의미하며 대체로 석가모니 입멸 뒤 삼십 년 까지의 불교를 말한다. 그러나 근본 불교와 원시불교의 구별은 원시불교와 부파불교의 구별처럼 명확하지 않아서, 이러한 구별이 그렇게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부파불교가 일어나기 전까지의 불교를 통틀어 원시불교라 부르기도 한다.
원시불교의 교리는 경, 율, 논의 삼장三藏 가운데 경장과 율장에 설해져 있다. 경장에 포함되어 있는 원시불교 경전 가운데 한문으로 된 경전을 총칭해서 <아함경>이라 부르고, 팔리어로 된 경전을 <니카야>라 부른다. <아함경>은 석가모니가 성도한 뒤 사십오 년 동안 설한 가르침을 전한 것이다. 물론, <아함경>이 석가모니의 설법을 전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자들의 기억이나 이해를 섞어서 편집한 것이고, 또한 수백 년 동안 말로 전해 내려오는 사이에 알게 모르게 개변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현존하는 여러 계통의 <야합경>이 석가모니의 가르침 그대로 라고는 할 수 없더라도 석가모니나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전하는 유일한 경전이고 또한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가장 진실에 가깝게 전해 주는 것이므로, 여기서 우리는 역사적인 석가모니의 언행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석가모니의 사상과 정신에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불교 최초기의 모습을 엿볼수 있는 자료로는, 경장이 현재의 형태로 집성되기 훨씬 전부터 단행본으로 성립되어 있었고 주로 운문으로 쓰여진 가장 오래된 경전들, 예를 들면 「숫타니파타」(經集)를 비롯해서 <자타카>(本生話), <담마파다>(法句經) 등을 들수 있다.
원시불교의 기본 교리로 삼고 있는 삼법인이나 사성제와 같은 교리에서도 알수 있듯이 석가모니로부터 시작되는 초기불교의 기본 입장은 불교 전체를 통해 그대로 일관되고 있다. 초기 경전에 나타나는 석가모니의 교설은 대부분 석가모니를 방문한 사람들의 물음에 대해 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그 대답은 묻는 사람의 현실적 고뇌가 치유될 수 있는 직접적인 방법이나 대책이 아니라, 그 고뇌에 대처해 가는 현실적 태도에 대해 그들의 능력에 맞게
적절한 비유를 섞어가면서 설하고 있다.
그러므로 석가모니의 대답에는 베다성전이나 바라문교에서와 같은, 인간의 힘을 초월한 신이나 기도, 주술에 의한 불가사의하고 초자연적인 힘 같은 것이 일체 없으며 오히려 그를 배격하였다.
이를테면, 현세의 운명은 전세의 업의 결과에 의해 이 세상에 태어날때에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믿는 운명론자들에 대해, 석가모니는 전생의 선악업이 현세의 운명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자유의사에 의한 선악 행위나 노력 여하에 따라 현세의 운명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만일 지신의 운명이 태어날때부터 결정되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자유의사나 노력이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없으며 , 따라서 수행으로 현세에서 고통을 해결하고 생사의 윤회를 벗어나 열반에 도달하려는 노력도 무의미해진다. 무아설의 입장에 선 석가모니가 이와 같은 결정적 숙명론은 올바른 업보설이 아니라 하여 배제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또 인간의 운명은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고 지배하는 신의 의사 따라 결정된다고 하는 신의설에 대해서도, 인간의 자유의사는 완전히 무시되고 다만 신의 환심을 사기 위해 신에게 공물을 바치는 것만이 운명 개척의 유일한 방법이 되므로 배제하였다. 최고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불교에서 아론적으로 실제적인 면에서 신을 부정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당시 인도에는, 운명론자나 신의론자 외에도, 인간의 운명은 우연히 돌발적으로 결정된다고 믿는 우연론자도 있었다. 석가모니는 이러한 우연론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하였다. 우연론은 인간의 운명은 태어난 뒤 순간순간 일어나는 우연한 사건으로 갑자기 결정되는 것이므로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잘 이용하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한다. 이것은 우연한 기회를 포착해서 행운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찰라적 향락주의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서도 주체적인 의사의 자유는 물론 인생의 법칙인 인과나 연기의 도리를 전혀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배제하는 것은 당연하였다.
결국 석가모니는 우리의 운명은 예정적으로 고정되어 있거나, 절대자인 신의 의시에 따라 좌우되거나 무궤도적인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인과나 연기의 도리에 따라 작용하는 것이라 하였다. 더구나 인과 연의 배합 방식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될 수 있으므로 우리들의 자유 의지나 노력에 의해 운명을 개변하고 개척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교육이나 도덕, 종교의 존재 의의가 있는 것이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