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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는 이 길, 가야만 할 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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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지선 1994년 01월 143호
새해가 왔다.
그러나 나에게는 하루가 지나고 시간이 바뀌는 다반사의 일상적인 의미일 뿐 별로 색다른 느낌이 없다. 특별하게 무상을 느낀다거나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거나 기필코 해내고픈 사적 욕망도 없다. 오히려 연말연시면 각종 모임의 행사나 인사치레 따위의 번거로운 일로 더욱 피로하고 짜증이 날 뿐이다. 생활에 리듬이 없는 나의 풍찬 노숙, 동가식 서가숙의 고통스러운 지난 시절보다는 조금 한가한 편이지만 쌀 수입개방 반대운동 등으로 다시 바빠지고 걱정 속에 날을 보낸다. 이른바 문민정부가 들어서서 좀 괜찮은 삶이 되겠고 나 역시 내 본디 모습으로 돌아가겠거니 여겼는데, 웬걸 아무 것도 변한 건 없고 더욱 활동하기 힘든 조건과 많이 생겨나 좋을 것 없고 사라져야 할 운동(단체)의 일거리만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이 땅에는 아직도 민주여, 인권이여, 통일이여, 민족민중의 생존권이여, 아~ 자주성이여, 언제까지 이럴 것인지, 그러나 그런 것들이 얼마쯤이라도 극복되고 해결되지 않고서는 모두가 허구인데 그만 둘 수도 없지 않은가. 활동하던 지난 십이 삼 년 동안 수행하는 스님들을 보면 그렇게 부럽고, 큰 불사하는 스님을 보면 대단해 보이고, 큰 감투 쓰고 수십 년씩 넉살 좋게 사는 스님을 보면 기가 막히고, 무성무치 초출삼계 세상사 오무관으로 다 늙은 누에처럼 말쑥하게 지내는 스님을 보면 나는 언제 저렇게 멋져지려나 생각도 해보고, 사상 고민 저 환자 짊어진 채 그만 좀 하고 조용히 살아라 하면서 초라한 자신을 불상 하게 생각도 해보던, 이러저러한 생각마저도 이제는 무디어지고 효험 없이 이 상태 이 걸음으로 살아가게 되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슬퍼하랴. 세상은 타고 있는데...... 새해(양력) 아침에 “심수만경전하니 전처실능유요. 수류인득성하니 무희역무우로다.....나무아미타불” 글귀를 외우고 작설차 한잔 마셔 본다.
욕구 충족을 위해서 행동한다는 점에서는 동물과 다름없는 사람이지만 그러나 사람이기 때문에 욕구를 넘어서서 가치를 추구한다. 성불하려고 출가한 사문이지만 삼보신앙과 연기론적 세계관으로 사성제에 입각하여 인간사회를 분석하면서 팔정도 육바라밀을 수행하다 보니 이른바 운동가요 활동가로 규정지워진 내 현실적 삶은 새해에도 강요된 현실 속에서 고뇌에 찬 나날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앉은 자는 일어서게 하고, 걷는 자는 뛰게 하고, 뛰는 자는 춤추게 할 말과 글 그리고 행동으로 소란스럽게 살아갈 것 같다. 유식한 자들에겐 유식은 유능(실천)해지기 위한 조건이라고 말할 것이며, 유물론자에게는 유물주의가, 유심론자에게는 유심주의자가 되지 말라고 소리칠 것이며, 나처럼 - 사실은 정반대 - 이미지로 설치는 자에게는 인생의 절반을 잃지 말라고 충고할 것이며, 각覺의 노예가 된 자들에게는 인생의 전부를 잃지 말라고 외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생에 감투를 쓰지 못해 한이 맺혀 생겨난 승려들에겐 산지기 노릇에서 벗어나라고 말할 것이다. 세속의 권력에 남모르게 빌붙거나 튼실한 문중에 기대거나 줄서기에 급급한 자들에게는 그것의 타파를, 보수 쪽에서 보면 진보도 아니요 진보 쪽에서 보면 보수도 아닌 기회주의적 처세나 초월주의적 인기 관리인들에게는 확실한 주체적 삶을 살라고 권고할 것이다. 절에 많이 다녔거나 학생 시절에 활동했거나 경전을 많이 읽은 사람들일수록 절에 나오지 않아 신행활동이 없는 생불(?)이 된 비불자의 삶을 꾸짖을 것이다. 아직도 의인들은 갇혀 있는 세상인데 탄압받고 갇혀진 양심들에게 , 신들도 인간들도 부러워하는 정토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쓰는 운동단체들에게 물심 양면으로 도와주지 않는 부자 스님들과 신도들을 주시하며 기록할 것이다.
불교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인류 역사는 삼독三毒이 가득 찬 중생들이 이성과 반이성, 문명과 야만, 강자와 약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민족과 반민족 계급간의 갈등으로 끝없는 투쟁의 역사(오탁악세五濁惡世)임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속에서 바른 편에 서서 피땀 흘려 희생 봉사한 사람들 때문에 역사와 사회는 진보와 발전을 거듭해 왔다. 지금의 세계도 겉으로는 한울타리-정치, 경제, 문화, 종교-안에 있지만 민족과 종교의 분열과 분쟁으로 인류의 모순, 민족 민중의 모순으로 첨예화되고 있다. 이 문제는 앞으로도 강약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영원할 것이다. 이른바 선진국이면서 야만국가인 강대국들이 약소국가(민족)들의 개성과 가치를 인정하고 수용해 주지 않는 한 예속되지 않으려는 항쟁으로 세계는 끝없는 혼란이 올 것이다. 특히 자기 문화를 지키려는 민족과 국가들이 온갖 제도나 기구, 주의주장의 이념-GATT, EC, NAFTA, APEC, UR, 지배 이데올로기, 포스트류의 온갖 문화이념-을 만들어 내는 제국주의자들에게 항거하면서 약하지만 조금씩 조화가 되는 세계 문화로 발전해 갈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기술과 자원이 없는 나라, 민주화가 안 된 나라, 분단이 해결되지 않은 우리 같은 나라는 온갖 모순이 중첩된 현실 속에서 편하게 살 날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야 어찌 되어가든 담을 쌓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예외이겠지만, 우리 사회는 개혁과 경제 활성화 그리고 통일이 주요 정책이다. 이것을 성취하려면 과거 청산과 확실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어 신한국 창조의 에너지가 분출되지 않고 있으며 개방화, 국제화, 미래화로 나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쌀 수입개방 반대운동으로 의욕은 있으나 역량이 부족하여 고민하는 가운데에 이와 같은 나라 안팎 정세를 총체적으로 명확히 인식하고 부족한 힘이나마 통일 정토사회 건설에 열심히 노력하는 새해가 되도록 하여야겠다. 그러기 위해 나의 작은 지식이 있다면 획일화된 상품으로 팔려 나가는 일은 없어야겠고 이상적인 인격 완성을 성취하려는 끝없는 실천으로 모든 고난을 극복해야겠다. 먼저 나의 끝없는 개조에 바탕한 종단개혁문제와 사회개혁에 적극 동참할 것이다. 지금 무엇을 할 것인지에 답이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를 두고 반성과 참회, 비판과 지지, 겸허함과 수용, 창조적 실천으로 이어지는 새해가 되도록 하겠다. 그러나 저러나 이 나라는 세계질서 - GATT - 에 편입하느냐 마느냐 하는 이분법적인 경제질서 논리로만 국한하여 대립과 갈등 구조로만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언론과 정부가 큰 문제이고 농민들은 정치 세력화는 그만두고 완전 소외와 불순 세력화되고 있으니 이를 어쩐담. 산과 들에 토대를 둔 불교, 민족문화의 밑바탕인 불교가 농민문제와 농업문제 그리고 민족문화에 대재난이 닥쳤는데도 방관만 하고 있으니 이 또한 큰 문제이고, 전 불교도가 수입 쌀과 수입 농산물만 부처님께 올리지 않아도 큰 힘이 되겠는데, 통일 농업을 어찌할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