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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파突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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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종림 1994년 01월 143호
벽은 어디에나 있다. 무엇이 벽인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욕망의 벽, 관념의 벽, 이데올로기의 벽과 같은.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갇혀 꼼짝 못하는 귀신이 있는가 하면, 걸릴 것 없는 허공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막대기에도 길은 있다.
우리가 한국인으로 태어났다는 것, 그리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이 자부심일 수도 있고 한계일 수도 있다. 주어진 것이든 선택한 것이든, 사람에 따라 그것이 벽일 수도 있고 허공일 수도 있다.
성철스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불자나 일반인들이 보인 반응, 성철스님 신드롬이라고까지 불렸던 반응의 의미는 무엇일까?
1993년도 인물로 선정되었다고 성철스님이 위대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결과에 불과하다. 스님께서는 한국 불교를 지탱했던 기둥이었다는 데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오히려 묻고 싶은 것은 거목이 남긴 새로운 씨앗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스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나타난 대단한 반응은 조계종 종정과 해인사 방장이라는 스님의 직이 지닌 영향력 때문만은 아니다. 또 하나 스님께서 가지신 인간적인 매력도 큰 요인이 되지만 그것만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것이 있다. 그 보다는 오히려 사라져 가는 마지막 전설이나 신화에 대한 아쉬움이나 향수 같은 것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해인사는 총림이다. 총림법은 일반 본말사법에 비해서 특별법이다. 해인사의 기질이라고 일컫는 많은 부분이 총림법이라고 하는 특별법의 영향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해인사에 대한 총림법이라는 특별 법적인 보호는 반대급부 적인 특수한 기능이나 목이라도 걸어야 하는 희생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총림이 갖는 기능이나 역할에 대해 한번쯤 되돌아보는 것도 좋다. 제도의 유지일까, 아니면 새로운 모형에 대한 시도일까. 이것은 해인사가 갖는 수행도량이라는 총림 체제와 교육을 위한 이념이나 방법의 문제로 귀착된다.
또 하나는 스님이 남긴 신화의 그림자이다. 신화는 인간을 움직이는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현대와 같은 복잡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지금도 종교나 예술에는 신화적인 모티브가 변화의 밑바탕으로 작용하지만, 근대 사회는 존재론적인 구조 속에서 탄생된 과학문명이다. 그리고 현대는 기능주의 적인 요소가 점점 강화되고 있다.
신화의 그늘에서 문제 해결을 기대하는 것은 조금은 무리인 것 같다. 신화적인 입장의 강화보다는 불교적인 세계관의 이념이나 방법론의 확립이 문제 해결에 접근하는 관건이 아닌가 한다.
변화의 근거를 신화적인 태도에서 찾을 수도 있고, 존재론적인 구조 속에서 발견할 수도 있다. 그리고 기능주의 적인 입장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 어떠한 선택이든지 이러한 선택에 의해서 우리들의 미래가 열려지는 것이다.
해인사에 살았던 한 사람으로서의 자성과 텅 빈 하늘에 그려보는 하나의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