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고려팔만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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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의 얼과 멋 - 편집실
1995년 12월 166호
이우는 저녁, 법보전의 목탁소리가 바람의 길을 따라 가야산자락을 오른다. 참배객들의 발길도 끊기고 간간히 들려오는 목탁소리만 산사의 정적을 깰 뿐, 모든 것이 떠난 자리의 고요가 얼음처럼 시리다.
경판이 역사의 비원을 안고 자리한 고즈넉한 자리를 서성이며 나 아득한 옛 적의 소리들과 만난다. 외침과 저항이 ㅁ낳았던 이 땅의 사람들의 목소리. 그 소리들은 마른 겨울산의 밟고 지나는 바람소리처럼 휑한 슬픔의 여백을 남긴다.
몽고족이 이 땅을 침탈해 왔을 때의 사람들의 분노한 목소리 그리고 외침을 부처님의 힘에 의지해 물리치고자 하였던 그 때 그 사람들의 비원이 남기는 파문.
사람들은 노르이 지는 강화에 모여 그들의 비원을 하나하나 판각하기 시작했다. 조국의 안위와 팔만사천 번뇌가 다한 그 피안의 세계에 이르길 염원하며.
그들은 강화도에 대장도감과 남해, 강화에 분사대장도감을 설치하고 십육 년의 긴 세월을 돌아 마침내 미학의 절정인 고려대장경의 판각을 이루고야 말았다.
슬픔과 절망의 시간을 넘어 국가의 안위와 피안을 찾아 오르던 그들의 자취, 고려대장경.
하나하나의 판본에 담긴 그들의 비원은 길고 긴 시간의 능선을 넘어 아직 표류의 슬픈 신호음을 내고 있다. 그들 비원의 끝에 여태 이르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 무거운 자괴가 노을빛처럼 내 가슴에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