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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총림 방장 혜암 큰스님께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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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탐방 - 향적 1994년 01월 143호
퇴설당은 어둠에 몸을 숨긴 채 노란 불빛의 창문으로 존재의 의미를 내보이고 있다. 여러 날 불 밝히지 아니한 창문에 이제 새로이 주인을 맞이하여 곱고 따뜻한 불빛으로 자신을 장식하고 있다. 임제선의 기상처럼 긴장된 적요와 섬광과 같은 반전이 있는 선실이 오늘은 왠지 따뜻하다. 그 따뜻함의 고요가 새벽 안개 속에 떠오르는 갠지스강의 그윽한 평온과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인도 평원 부다 가야 평온과 이 땅 가야산 자락의 고요가 똑같은 심정으로 다가오는 까닭은 무엇인가. 억겁이 흘러도 예스럽지 않고 만세를 뻗쳐도 바로 이 자리라 했던가.

실로 오랜만에 가야산에 겨울이 온 듯하다. 사십 구일 동안 참배 객이 이백여 만이라니 어디 겨울을 느낄 겨를이나 있었겠나. 깊어 가는 겨울날처럼 총림의 살림 또한 그러한 깊이로 가라앉아 봄의 개화를 준비하겠지 하는 상념을 떠올리며 염화실의 문을 두드렸다.

방장스님의 밝은 얼굴을 뵈니 저 또한 기쁜 마음입니다. 겨울 날씨라서 꽤 쌀쌀한데 건강은 어떠신 지요.

사람 몸이란 게 본디 고통이지요. 달리 건강을 생각하고 살지 않습니다. 이 몸에 끄달리면 할 일을 못해요.

저희 월간「해인」에서 새로이 총림의 방장으로 추대되신 큰스님을 모시고 좋은 말씀을 듣게 된 것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먼저 여쭙고 싶은 것은 성철 큰스님의 입적으로 변화된 한국 불교의 위상을 어떻게 보시는지, 혜암 큰스님께서는 성철 큰스님의 뒤를 이어 앞으로 어떻게 해인총림을 운영하실 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데 이러한 점들을 먼저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입적하신 큰스님의 청백가풍도 되지만, 원리원칙으로 말하자면 제불 조사의 청백가풍은 가난한 것부터 배우는 것으로 이것이 스님들이 하는 수행의 출발이어야 합니다. 난행고행이 끊어지면 정법안장이 망가진다는 말이 있는데, 역대 조사나 성철스님도 이러한 가풍으로 정법의 맥을 잇고 중흥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앞으로 총림 본연의 의무인 수도의 지침은 없는 법을 새로 만든다 거나하지 않고 열반하신 방장스님의 청백가풍을 받들어 이어 나갈 생각이에요.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수양 면에서 대중적인 생활의 지침으로 삼단유시가 있어요. 첫째, 지계청정 곧 청정한 계행을 지켜라. 둘째, 화합애경 곧 서로 사랑하고 공경해서 화합하라. 셋째, 이익중생 곧 우리 수도인은 일체 모든 중생에 대해서 부처님같이 섬기는 동시에 이익 되게 하라. 이 유시를 지켜 나갈 것입니다.
밖으로 이러한 유시가 있는가 하면 안으로 참선의 바른 길을 제시한 지침도 있지요.

아, 성철스님께서 직접 방장스님께 그러한 유언을 하셨습니까. 언제쯤 그러한 말씀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오래 전부터 늘 총림 운영에 대한 부탁이 있었습니다. 상당법문을 할 때는 반드시 육조 혜능스님의 육조단경, 중봉스님의 돈오입도요문론, 황벽스님의 전심법요, 임제스님의 임제어록, 이 네 가지를 의지해서 법문 하라고 못을 박아 놓으셨습니다. 임제어록에 대해서는 일본의 예를 들어가며 얘기를 했습니다. 약삭빠른 일본 사람도 다른 것은 다 불타 없어져도 이 책만 있으면 괜찮다고 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면서요.
이 네 가지 책으로 법문 하라는 이유는 이 책들이 모두 돈오돈수법을 말하는 책이기 때문이에요. 돈오돈수법을 간단히 말하자면, 일초직입여래지하여 한번 깨달으면 다시 닦을 필요가 없다는 얘깁니다. 수행의 과정에서는 깨쳐서 다시 닦을 일이 있다면 장엄문이요. 방편문이요. 소승문으로 이것은 정법이 아닌 외도법이지요. 한국 불교는 이것이 혼동되어 있으니, 누가 무어라고 비방을 하더라도 원칙론을 살려야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이를 지시하였습니다. 이는 한두 번들은 얘기가 아니에요. 선지식이 이렇게 부탁한 것을 뒤를 이어 정법을 선양해야겠다는 마음이 확고부동합니다. 다음에는 어떻게 되든지 내대에는 스님이 지시한대로 이끌어 나갈 생각입니다. 지금은 나의 뜻으로 법문을 하고 있지만, 조만간 위 네 권을 돌아가면서 법문할 것입니다.

성철스님의 유훈을 받들어 총림을 운영하시겠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제방선원이나 신도들은 새로이 방장스님께서 한국 불교의 메카라 할 수 있는 해인총림, 종합수도원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실 것인지에 촉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몇 십 년을 해인총림에 살면서 수도 생활을 지도해 왔는데, 성철스님이 계실 때도 스님이 몸이 좋지 않고 해서 내가 직접 큰 일들을 많이 해왔어요. 그래 방장이 되었다 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거나 하지 않아도 된다고 봅니다. 옳고 바른 일을 굳이 혁신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점들이지요.
전과 마찬가지로 소신껏 해나갈 것입니다. 있는 법을 지키느냐가 문제이지 길이 없어서, 혹은 길을 몰라 당황할 일은 없어요. 부처님의 말씀대로 지낼 생각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면에서의 총림 운영에 대한 지침은 몇 가지를 생각해 두었지요. 첫째, 본사의 현실을 직시하고 사내의 안정과 질서 유지를 다하자(대중 화합 유지). 둘째, 우리는 하사를 막론하고 선배자의 지시를 준수하자(위계 질서 확립). 셋째, 우리는 종단적 개헌 법이라도 비법이면 단호히 배격한다(정법의 수호). 이런 것들인데 상식을 떠나서 법이 없는 것처럼 대중이 함께 살면서 서로 경우를 잘 지키면서 수행에 전념하면 되요.

총림 운영에 대한 고구정령한 말씀을 듣고 보니 새로운 각오가 다져진 듯합니다. 다음은 스님의 출가 동기나 발심하신 때는 언제인지 듣고 싶습니다.

책 한 권으로 모자랄텐데.
동기부터 말하죠. 시골에서는 설이 되면 노인들이 점을 치러 다니는데, 모친이 점을 치고 오셔서 너는 금년에 꼭 절에 가서 기도를 하고 와야 된다고 하셨어요. 그 때가 일곱 살쯤 되었을 때였죠. 그 말을 듣고 나서 얼마나 절에 가고 싶었는지 몰라요.
그런데 여름이 다 가도록 절에 가자는 말씀이 없어 혼자 서운하던 차에 추석 무렵 동네 아이들과 씨름놀이를 하다가 목을 크게 다쳤어요. 어린 마음에도 절에 가지 않아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나 생각했어요. 그 다음부터는 언제나 나는 앞으로 절에 부처님을 찾아 다녀야겠다 하는 마음이 생겨 소풍을 가서도 꼭 절에 들렸는데 참 좋았어요.
열 여섯에 일본에 갔습니다. 그 무렵은 배움에 대한 뜻이 있으면 일본으로 가고 사는데 쫓기면 만주로 가고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 일본에 있으면서 구약과 신약, 유교의 사서삼경, 그리고 불교의 조사어록들을 두루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홀연히 왜 눈 두 개가 둘 다 앞에 붙어 있을까? 앞에 하나 뒤에 하나 달려 있어도 되었을텐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것에 대한 답이 어디 책에 나와 있습니까. 그러다가 내 나름대로 앞 눈 한쪽이 고장나면 다른 한쪽으로 쓰라고 그렇게 해놨다고 생각을 했어요. 이게 시원한 답이 아니지요.
사는 것이 더 답답해지고 해서 독서에 심혈을 기울였어요. 한번은 일본의 고승전집을 읽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밥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으면서 책을 읽고 또 읽었어요.

그렇게 좋은 책이라면 기억에 남을 만한 구절이 있지 싶습니다. 그 대목 한 구절 들려주십시요.

이 책에 일휴(一休)선사 이야기가 나옵니다. 선사는 일본의 소송(小松) 천황의 아들입니다. 모친이 왕비 노릇을 하다가 모략으로 쫓겨나게 되어 자살을 결심했어요. 그런데 마침 이 왕비가 임신을 하고 있었는데, 왕비가 생각하기에 지금 뱃 속의 아이가 왕이 될 사람인가 성인이 될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답니다. 나 같은 아녀자는 죽어도 일 없지만 뱃 속의 생명은 살려 보자 해서 자살을 피하고 절에 가서 살았지요. 태교를 열 달 하고 기도하고 참선해 애를 낳았는데 이 이가 바로 일휴선사입니다. 아들이 여섯 살 때 어머니가 중병에 들어 절의 선지식을 찾아가 아들을 맡기면서 성인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는 도인이 되기 전에는 나를 찾지 말라 하고 유언장을 써주었지요. 일휴선사는 언제나 이 유언장을 가지고 다니면서 어려운 일을 참고 열심히 공부를 했어요. 이 유언서는 이런 내용이었어요.
‘내가 이제 이 사바세계의 인연이 다 해서 무위의 나라로 가노라. 그대의 귀중한 몸은 속히 출가승이 되어 불성을 깨달아 그 밝은 눈으로 불쌍한 부모들이 지옥에 떨어지는가 떨어지지 않는가, 나고 죽는 죄 쌓는가 쌓지 않는가를 살펴다오.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달마스님을 종으로 삼을 정도의 사람이라면 속인이라도 괴로움을 해탈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사십여 년을 설법하시고 필경에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아서는 내가 나를 보고 나를 깨닫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세상만사가 다 허망한 것이다. 죄송할 뿐이다. 구월 하순 나지도 죽지도 않는 그대에게 이 글을 준다.
거듭거듭 되풀이 팔만대장경의 방편설을 지키는 사람들은 똥버러지나 매한가지로 알지니, 팔만대장경의 가르침을 다 아는 한이 있더라도 불성을 보지 못하면, 이 글의 뜻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별한 뒤에는 이 유언서를 보물처럼 보아다오.‘
나는 여기서 감화를 받았고, 발심의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방장스님께서 출가한 절이나 처음 만난 스승의 얘기를 해 주십시요.

일본에서 돌아와 처음 간 절이 백양사 였어요. 살다 보니 환경이 의심스러웠어요. 알고 보니 대처승들이 많아 이듬해 봄에 해인사로 왔습니다.
이 때가 스물여섯이었어요. 서옹스님이 인곡스님을 소개해 은사를 정하고 계를 받았지요. 계사는 효봉스님이었습니다.
이렇게 중이 되는 길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지요. 해인사에 방부를 들이는 것도 일 주일 동안 시비가 대단했어요. 중 만들지 않겠다고 가라고 그래요. 그래도 가지 않고 한데서 잠을 자고 밥도 굶고 그랬어요. 일주문까지 끌려 나갔다가 스님들 몰래 다시 들어와 풀도 매고 소제도 하고, 그러다가 겨우 공양주를 하게 되었는데 밥을 잘해서 쫓겨나는 것을 면했어요. 그 무렵에는 해인사는 대중이 이백여 명 살았고 방장은 효봉스님이었고, 주지는 대처승인 환경스님이었어요.
참선에 대한 열정은 진작부터 있었지만, 효봉스님을 찾아가 ‘무자’ 화두를 받아 공부를 하는데 얼마나 기쁜지 계속해서 잠도 안 자고 정진을 했습니다. 공양주를 하면서 공부를 계속했고, 칠월 보름 해제 날에 계를 받았는데 밥을 잘 지으니 공양주를 한철 더하라는 거예요. 견성성불하려고 왔는데 공양주를 하면서 공부를 하려니 잘 안 되는 것 같아 초조했어요. 그래 아침에 밥을 푸다가 다른 스님에게 부탁하고 백련암 뒤 환적대로 올라갔어요.
쌀 한 톨, 누룽지 한 주먹 가지지 않고 일 주일 만에 견성하지 못하면 죽겠다고 맹세하고 용맹 정진했어요. 처음엔 무얼 좀 가져갈까 했는데 귀신이 앝볼까 생각이 들어 아무 것도 가져가지 않았지요. 옆에 계곡 물이 조금 있었지만 물 한 모금 마실 생각이 없었어요. 물론 대변은 안 나왔고 하루에 한 번 소변은 봤죠.
그런데 칠 일쯤 되니 망상이 생겨요. 내가 올바른 공부를 못해서 깨우치질 못했나보다 하는 생각과 함께 그렇다면 공부 길도 몰라 죽는 것이 목적이 아니니 다시 화두결택을 하자고 용단을 내렸어요. 길이 어딘지도 모르고 내려오는데 송이 따러 온 스님들과 맞닥뜨렸지요. 일 주일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으니 비쩍 마르고 눈빛만 보였대요. 뒤에 들으니 마치 귀신이 나타난 줄 알았대요.
해인사에 내려가니 이번에 종정스님이 되신 서암스님이 미음을 쑤어다 주고, 효봉스님은 공부를 그렇게 하면 되느냐고 야단을 치셨어요. 다시 효봉스님께 공부가 급하니 퇴설당 용맹 정진하는데 올려 달라고 했어요.
점심 공양 때 대중공사를 하더군요. 여기 이 수좌가 용맹스럽고 고마운 사람인데 퇴설당에 공부하게 하자고 효봉스님께서 말씀하자 구참 스님도 많은데 누가 엊그제 계를 받은 사람을 용맹정진에 올리냐고 대중들이 반대했어요.
그러자 효봉스님께서 공부하는데 구참, 신참이 어디 있느냐, 이 수좌만큼 간절히 공부하는 사람이 있느냐 하자 대중이 아무 소리를 못했지요. 그 당시 퇴설당은 하루 세 시간 잠을 잤는데 굉장히 엄중하여 밥만 먹으면 나무토막처럼 좌선을 했습니다. 이 때의 공부가 긴요한 시절이었음을 이제 알겠습니다.

성철스님과 봉암사 등지에서 함께 수행하신 걸로 아는데 그에 얽힌 말씀도 재미있고, 귀중한 교훈이 될 듯 싶습니다.

그 뒤 해제하고 오대산에서 한 철을 나고 돌아와서 다시 퇴설당에서 삼년결사를 준비하는데 성철스님이 오셨어요. 장좌불와한다고 사람들이 수군댔지요. 보니 육환장을 짚고 보조국사 가사를 입었는데 지상이 엄중해요. 봉암사로 간다 하니 책을 실은 차에 몰래 타고 따라 갔지요.
거긴 능엄주를 안 하면 방부를 받지 않는데 나는 이 공부가 너무 중요해서 능엄주는 도대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요. 그래 말도 않고 장좌불와를 하면서 공부를 계속했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아무도 시비를 하지 않아요. 나중에 사람들이 능엄주 공덕이 하도 크다 하고 일만팔천 독을 하면 무상 정에 들어간다 해서 바로 외워서 해야 겠다 싶었지요. 쌀을 한 가마니 탁발해서 김용사 도솔암으로 갔어요. 본디 눕지 않고 잠을 자지 않으니까 그냥 쉽게 외워져요. 나중엔 숨 한번 쉴 시간이면 능엄주 한 주를 그냥 외웠지요. 그런데 다 외우고 나니까 망상이 생겨요.
망상의 병통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김용 사에서 능엄경을 가져다 읽어보았어요. 능엄경 한 대목 가운데 부처님과 아난존자의 이런 문답이 나와요.
“아난아 저녘 어두운 때 네 눈이 보느냐 못 보느냐” 하고 부처님이 물으니 아난이 “못 봅니다” 하니, 부처님이 “아난아 네 눈이 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어두운 것을 아느냐” 하셨어요.
이 대목을 읽다 보니까 세상이 환해져 버려요. 하도 기뻐서 해인사로 와 은사(인곡)스님께 거량을 했지요. 그러자 은사스님께서 “과거심도 불가 득이요, 현재심도 불가 득이요. 미래심도 불가 득이니 어디에 점을 찍을 것이냐” 하고 묻더군요. 그래 주먹을 쑥 내밀었지요. 다시 이말 저말 들으시더니, 다시 가서 공부하라고 그래요. 그래서 내가 견성하지 못한 걸 알았지요. 구경 각에 대한 노정 기를 알고 싶어 사방으로 선지식을 찾아다녔지요. 그러다가 성철스님께서 삼단법문, 곧 공부에는 기본이 있어야 된다며 동정일 여, 몽중일여, 숙면일 여를 기본으로 삼아야지 무슨 경계가 나왔다고 공부를 삼으면 안 된다는 말씀에 마음이 탁 가라앉고 편안해졌어요. 그 때부터 의심을 안 하고 내가 내 공부를 새로 했어요.
장좌불와에서 덕을 얻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화두를 지어 나가는 것은 꼭 눕지 않은 데 있다고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일 하면서나 바루를 펼 때나 어디서고 화두를 생명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루 일종식을 하거나 장좌불와를 하는 것은 견성의 길을 빨리 가자는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상을 내거나 해서는 큰 병이 됩니다. 장좌불와를 무리하게 해서 척추가 썩어 주는 사람도 봤어요. 그런데 나는 그것 하면서 힘들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보지 않았어요. 얼마나 기쁘던지 뒤로 기대거나 앞으로 엎드릴 생각은 꿈에도 해보지 않았어요. 그렇게 사십 년의 세월을 살다 보니 이제는 눕는 것보다 앉아 있는 것이 편합니다.

저희가 듣기로 방장스님의 공부에 도움을 주신 스님으로 효봉스님, 인곡스님, 서옹스님, 성철스님이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공부의 스승이나 도반에 대해서 말씀 좀 해 주십시요.

내가 한참 공부에 열중일 때 동산스님께 이 뭣고 하는 한 물건 밖에 없는데 무엇을 공부하랸 말이냐고 달려 들었지. 그러면 스님은 무조건 정진하라고, 타파하는 데 정답이 나온다고 하셨는데, 그 때는 참 많이 달려들었고 그렇게 잘 지도해 주셨지요.

앞으로 자주 시간을 내서 방장스님의 좋은 말씀을 듣기로 하고 후학들에게 공부하는 방법을 들려 주십시요.

공부에 비법은 없어요. 첫째, 진실하고 신심이 있어야 해요. 그리고 화두 결택에 신중해야 합니다. 화두를 들 때는 무조건 재미도 없고 알래야 알 수도 없는 의정처에, 답답한 대목에 대고 바늘 끝 같은 의심을 일으켜야 합니다. 처음 공부하는 사람은 근기가 약해 달을 가르키는데 손가락만 보는 경우가 많아요. 의단을 바로 파고 들어가야 하는데 이 뭣고 자체에 세월을 보내요. 진실하게 공부하면 상대가 끊어진 대목에 들어가 저절로 경계가 나오게 되어 있지요. 오래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공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허물이 가르치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본인에게 있어요.
간절한 마음을 내면 구태어 남에게 배우지 않고도 바로 들어가게 되는데, 도에 정이 무르익지 못하면 중간에 흩어지고 풀어져 공부가 늦어져요. 화두를 타파할 때 정답이 생기는 것으로 알고 공부를 진실하게 하기만 하면 한철 아니라, 일 주일 만이라도 공부를 성취합니다.

스님께서 좋아하시는 게송을 하나 들려 주십시요.

후학들에게 공부에 도움이 되는 게송이 되면 좋겠지요. 사명스님이 금강산에 계실 때 비구니 스님들에게 준 말씀 가운데 이런 게송이 있지요.

子牛殷懃修白業하야
不須虛浮好光陰하라
一超直入好來地커니
莫向閻浮滯五陰이리오
밤낮없이 부지런히 도업을 닦아서
헛되이 바로 여래의 본성을 볼지니
오음의 안락에 머무르지 말라.

달리는 말에 채찍을 더하는 것처럼
공부인은 촌음을 아끼며 자신의 공부를 챙겨야 해요.

스님이 좋아하시는 어록은 무엇입니까?

조주스님의 어록은 어느 것이고 좋아합니다.

새해를 맞이한 불자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십시요.

세상 일도 잘해야 하지만, 불자들로선 하루를 사는 한이 있더라도 영원한 생명 속에 있는 무한한 능력을 개발해서 일시에 성불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바쁘신데 귀중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방장스님의 말씀을 잘 받들어 수행에 더욱 매진하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