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를 차별 없이 공경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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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 - 지관
1994년 01월 143호
법화경 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에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위음왕여래께서 열반에 드시고 정법이 사리진 뒤 상법象法 가운데 증상만增上慢 비구가 세력을 떨치고 있습니다. 그때 상불경이라는 보살이 그 회상에 함께 있었습니다. 상불경常不輕이라 이름한 까닭은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등의 사부대중을 언제나 예배하고 찬탄하는 까닭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당신들을 깊이 공경하고 경만 하게 생각하지 않나니, 왜냐면 당신들은 모두 보살의 도를 행하여 마침내 성불하기 때문이니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부대중 가운데 진심을 내어 마음이 맑지 못한 사람들이 악한 말로 꾸짖고 욕하기를
“이 어리석고 미련한 비구야. 너는 어디서 와서 우리들을 경만 하지 않는다 하고, 성불하리라는 수기까지 하느냐” 하고 욕하고 꾸짖으며 심지어 두드려 패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상불경보살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달아나면서도 그들이 성불하리라고 크게 외치곤 하였습니다.
마침내 이러한 수행으로 이 회상의 대중이 모두 성불하게 하였습니다.
오늘날 이 시기를 우리는 상법 시대를 지나 말법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무한대의 욕망으로 쌓아 올린 문명의 탑은 마침내 스스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갖가지 병폐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평화를 설교하는 수많은 이론이나 성인의 가르침이 넘치는 데도 세상엔 죽고 죽이는 전쟁의 참화가 그치지 않습니다.
이기적 욕망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안락을 위해 불신하고 미워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꿈을 상실한 사막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본디 상적광토(常寂光土)요 사람은 본디 부처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염된 마음 자리를 지혜의 눈으로 한번 돌이키면 그 자리가 정토요 본래면목입니다.
지금의 시대는 법화경의 상불경보살처럼 참고 견디는 보살들이 자신의 행을 나투는 무대임이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상불경보살이 되어 일체를 공경하고 찬탄해서 투쟁과 이기가 넘치는 말법시대를 정법의 시대로 이끌어야 합니다.
진정한 새해, 참다운 정법은 비방이나 억압에도 물러서지 않고 끝없는 동체대비로 보살의 길을 열어 가는 상불경보살의 인욕 행이 이루어 낼 것입니다.
서로 이기려 하는 자리는 끝없는 투쟁만 있지 진정한 평화와 정의는 없습니다.
서로서로 공경하고 사랑하는 자리가 새해이고 정법이며 평화와 정의입니다.
새해는 우리의 살림이 이 작은 아름다움에서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삼보 전에 지극한 마음으로 발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