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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에 눈 어두워 민족문화 유산을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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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5년 11월 165호
정부의 단견

6공화국 말기부터 추진되면서 그 배경에 대해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고속철도 문제가 드디어 불교계의 전면적인 저항을 받기 시작했다. 물론 고속철도가 필요하냐 아니냐 하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아니라, 그것이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성지 ‘경주`를 통과 하는데 따른 ‘문화재 보호’ 의 문제가 발단이다.
불교계가 고속철도의 경주 붕괴를 문제 삼은 것은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92년 고속철도 사업이 발표되면서
불거져 나왔다. 당시에는 고속철도가 동국대 경주 분교를 가로질러 지나가는 폐해를 지적하고 그 노선의 변경을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민자당총재 김영삼씨는 92년 12월 5일자 공문을 보내 경부고속전철 동국대 경주 분교 통과 `노선을 변경한다`는 공약을 했다. ‘불교계당 공약사항 통보’로 되어 있는 이 공문의 일곱번째 조항에 있는 내용이다.
‘조삼모사`의 고사처럼 현 정부는 동국대 경주 분교를 통과하는 노선에 대해 변경을 하였지만 민족 문화의 보고인 경주를 기어이 가로지르도록 결정하였다. 말하자면 정부는 불교계가 지적하는 문제의 단편만을 받아들이면서 생색을 내려는 것이다. 그것을 교계가 받아들일줄 알았다면 현 정부의 정책 담당자들은 조삼모사를 성공시킨 ‘원숭이 장사꾼 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92년 당시나 지금 단식과 조직적인 저항을 통해 고속 철도의 경주 통과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이유는 특청 집단의 이익을 위한 행동이 절대 아니다. 경주라는 곳이 불교 성지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불교 그 자체에 대한 편견을 갖고 성보 수호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 겨레의 유구한 숨결을 이어온 민족 문화의 보존을 위한 충심의 발로였다. 경주는 다른 어떤지역, 나아가 세계의 그 어떤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인류의 역사적 유물’이 고고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곳이다. 바로 그런 점으로 인해 유네스코를 비롯하여 세계 문화 유산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국제적인 지원과 감시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유적으로 인정하였다. 불교계가 정부의 국가정책 사업으로 추진하는 고속철도의 경주 통과를 극구 반대하는 이유 또한 거기에 있다.
설조스님이 열흘 동안 단식에 들어가며 정부와 지역주민의 단견을 꼬집으며 참으로 민족적 관점에서 지역의 문제를 현명하게 풀어가자는 호소는 이 나라의 정책 담당자들과 목전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지역의 소수 이권자들이 각성하고 새겨들어야 할 교훈이다.

인성을 망치는 개발

조계종단을 비롯해 태고종 등 여타의 종단이 범종단적으로 고속철도 경주 통과를 저지하는 운동에 나섰는가 하면 재가 단체들도 그동안의 개별적 대응의 차원을 벗어나 조직적 연대를 통한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전국의 주요 사찰에 현수막을 걸고 ‘겨레의 얼, 세계의 자랑 경주 남산을 지킵시다` 라는 문구가 새겨진 스티커를 집집마다 차량마다 붙이고 있다. 또한 고도보존법古都保存法 및 문화도시법의 제정을 청원하는 서명 작업 이 진행중이다.
10월 18일 오후 2시 전국의 재가 단체가 연대한 ‘고속철도 경주 통과 백지화 운동 추진위원회’ 가 창립되었다.
위의 활동과 아울러 대대적인 홍보를 통한 운동의 국민적 확산도 계획하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일백여 개의 단체 또는 단체 대표가 참여하는, 그야말로 불교계 최대의 규모를 갖춘 조직이다.
이 추진위원회가 발대식을하는 자리에서 한 청년 단체회장은 개발이 인성을 어떻게 망치고 있는지를 여실히 입증하는 사례를 공개하였다. 자신이 직접 고속철도가 통과할 예정지와 역사輝舍가 들어설 곳을 방문하고 난 뒤 지역 주민을 만난 소감이었다. 그의 얘기에 따르면 개발에 따른 이익을 노리고 다른 지역에서 경주로 들어온 사림들이 민족의 유산을 망치는 사업에 가장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그의 증언에 따르지 않더라도 그동안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한 부동산 투기꾼들의 소행을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벌레처럼 땅을 갉아먹고 민족 유산을 갈아 엎는 망국적 행위를 함에 있어 조금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고도古都에 살고 있는 주민들 사이에 분열을 조장하고 개발이 곧 주민에게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환상을 심는다. 하지만 이익을 얻는 사람은 주민 가운데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그들이 얻는 이익이란 것이 역사와 문화를 팔아 치부하는 가학적 행위인 것이다. 맹자孟子의 지적처럼 창을 만드는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해치는지를 노리며 방패를 만드는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보호할 것인지를 궁리하듯 이익에 눈이 어두운 자들은 오직 개인적 치부만을 노린다.
고속철도의 경주 통과는 정부 안에서도 반대 여론이 만만찮다. 이미 93년 감시원은 한국고속철도건설 공단을 상대로 특별 감사를 벌였는데 그 결과 대구와 부산간을 직선화하면 37키로미터 가량 짧아져서 9,800여 억원의 건설 비용이 절감되고, 운행시간 단축으로 해마다 25억여 원의 절감효과를 얻을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감사를 담당했던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경주 경유는 건설 비용이나 승객 요금부담, 전력 소모면에서 대구와 부산간 직선 노선보다 비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러 면에서 부적합한 경주 통과를 고집했고 기어이 지난 10월 3일 경주 통과 노선을 확정 발표하였다. 참으로 이해가 가지않는 정책 결정이며 정부의 억지 정책의 이변에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의심이 간다.


고집을 꺾어야 한다

경북 지역은 서울 다음으로 국가 문화재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문체부의 자료에 따르면 국보와 보물을 합쳐 약 삼백 에 달하며 사적과 명승, 천연기념물, 중요무형 문화재 동을 합쳐 사백오십여에 이른다. 경북외의 지역에는 문화재 가운데 천연기념물과 무형문화재가 상대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경북 지역은 국보급의 문화재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 가운데 상당수가 경주에 있음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덧붙이면 그 문화재는 물론 불교유산이다.
우리나라 학생이 역사를 배우는 장소로 단연 경주를 꼽는다. 학생만이 아니다. 어른도 경주에 들러 민족의 숨
결을 읽는다. 반도의 땅이지만 대륙을 능가하는, 힘차면서도 결코 허술하지 않으며 섬세한 민족 문화 앞에서 선조의 위대함을 배운다. 외국인 역시 한국 관광지로 경주를 뼈지 않는다. 한마디로 경주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역사를 배우는 곳이다. 그런 곳에 빠른 교통수단이 건설된다는 것은 부수적이다. 얼마쯤 교통이 불편하더라도 관광객 은 감수한다. 오히려 완벽한 문화재 관리와 보존으로 보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있어야 한다. 편리한 교통수단을 세우려고 문화재를 파괴하거나 훼손한다면 유흥장으로 전락할 뿐이지 역사와 문화를 배우지는 못한다.
외국의 경우를 보아도 그점은 명백하다. 이집트가 관광책의 편의를 위해 피라미드 부근에 철도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가 세계 문화유산 지정을 위해 전면 백지화했다. 스위스도 알프스 중턱까지 전차가 오르고 있지만 주변 환경을 전혀 훼손하지 않는 느림보 전차를 운용하고 있다.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불편한 교통 수단을 보고 타기 위해 줄을 선다. 그리스는 아테네의 유적을 보존하려고 도심에 차량 출입자체를 일체 금지했다. 세계화를 내세우는 나라가 문명의 이기로 국제적 문화 유산을 잠식하는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참담하기만 하다.
한국의 고속철도 공사 입찰이 독일, 일본, 프랑스의 삼파전으로 치열하던 당시 프랑스는 공사 수주를 위해 조선조 말에 훔쳐간 외규장각의 고문서를 포함해 몇몇 문화재를 돌려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래서 그런지 공사는 프랑스에 주어졌다. 하지만 아직 고문서의 반환은 실현되지 않고 있다. 그 속셈이 어떤지는 몰라도 내 나라의 문화유산을 훼손하면서까지 고속철도를 놓으려는 배짱을 갖고 있는 나리에 어찌 국보급 문화재를 돌려줄 수 있느냐는 항변인 것 같아 부끄럽기 그지없다. 내 나라의 문화재를 훔쳐갔으니 돌려달라는 자격을 갖추려면 지금 이 땅에 있는 문화재만이라도 안전하게 보존해야 한다.
지난 개천절에는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았다. 자신의 종교 때문인지 아니면 민족신화를 우습게 여긴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정부의 한심한 작태를 보면서 민족문화 유산은 한국 불교계가 합심하여 지켜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기필코 경주 통과 정책을 백지화해야 한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