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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귀산 운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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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의 글씨를 찾아서 - 조수현 1995년 11월 165호
가을은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계절이다.
해인지 연재로 인연을 맺은 다도회 모임이 지난 9월 말쯤 광주에서 있었다. 참석자 모두 이구동성으로 기왕 만났으니 대홍사 일지암으로 자리를 옮겨 하루를 더 보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비추어 다음날 저녁에 일지암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다. 때마침 나는 오래 전부터 천불천탑의 도량인 화순 영귀산 운주사를 답사하려고 했던 터라 더더욱 잘된 셈이었다.
다도회 모임을 끝내고 늦은 밤에 화순으로 자리를 옮겨 조촐한 여관에서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모든 번거로움에서 해방되어 홀가분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화순의 시골 정취를 느끼며 운주사로 향했다. 한가로운 시골길이지만 포장이 잘 된 길을 따라 운주사 입구에 닿으니 맑고 청순한 코스모스가 반겨준다.
고즈넉한 산자에 사찰이 있을 법해 보이지 않았건만, 좌우에 빼곡이 들어서 있는 탑과 돌부처가 인상적이다. 이 곳을 둘러보고도 시간이 충분하여 지나는 버스에 몸을 싣고 강진에 있는 다산 초당과 산넘어 백련사白運寺를 답사하고 목적지인 일지암에 도착하니 이미 어둠이 암자를 감싼다.

운주사는, 신라말에, 국사 도선스님 (827~898)이 단 하루 낮밤에 천불천탑을 조성했다는 전설이있는 곳으로, 지금은 애석하게도 18탑, 70불만이 남아 있다.
이 곳은 근래에 불사를 크게 하여 새로이 단장하였는데, 특이하다고 할까 좀 이상한 것은 대웅전 앞의 출입문이 기와집으로된 어느 시골 부잣집 대문과 같고 그 처마밑에 ‘운주사雲住寺’ 현액이 조잡한 글씨로 걸려 있어 사찰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점이었다.
출입문 앞에는 석조 감실 안에 등을 맞댄 불좌상이 사방을 지휘하는 듯하니 천불천탑 중심불인 듯하다. 한편 원형 다층탑은 버섯 모양의 옥개석을 갖춘 칠층탑으로 그 형식이 매우 특이하다.
또 서쪽 능선에는 천연암반 위에 새겨 놓은 쌍불이 누워 있다. 누워 있던 와불이 일어서는 날 국태민안한 태명성세가 열린다고 하는 전설이 전하는, 바로 그 와불이다.
아무쪼록 그런 날이 어서 오기를 기원한다.
운주사는 1979년 법진 비구니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중창의 서원을 세워 십여 년만에 지금과 같은 규모의 대웅전 들을 복원하였다. 현액과 주련 등은 모두가 월하종정 큰스님의 휘호이다. 글씨 내용과 품격이 모두 맑고 조출하다.
다음은 지장전地藏願 현액과 주련의 내용이다.

손바닥 위 에 밝은 구슬 하나 영롱하고, 자연스레 빛이 발하여 오네
몇 번이나 일어나 친히 나눌꼬.
어두운 방에 어린아이 밖을 보고 향하듯.
掌上明珠-顆寒 自然隨色辦來端 幾回提起親分付 暗室兒孫向外看

대웅전大雄殿 현액과 주련 내용이다

부처님의 법신은 두루 시방에 있으니 삼세 여래는 하나의 몸과 같도다.
넓고 크기가 항상 다함이 없으니 앙망한 각해 오묘하여 궁구하기 어렵네 .
佛身晋編十方中
三世如來一體同
廣大願雲桓不盡
汪洋覺海激難第

범종각梵鍾開 현액이다. 획의 굵고 가늠이 조화롭다.

다음은 법성료法性察의 현액이고 그 밑은 그 곳의 주련 내용인데, 도판은 마지막 주련 하나만 싣고 나머지는 생략한다.

삼계가 불난집이니 본체가 견고하지 않고 사대 색신의 형체는 실다움이 아니다
사람 늙어 일찍 이 소년으로 됨을. 꽃이 피니 한때 조촐하도다.
무슨 수고로움으로 밖에서 현묘함을 구할꼬.
본래가 스스로 천연하여 조작이 없거늘.
다만 능히 한생각 일없는 심 경이니, 목마른 즉 차 다려 갈증 면할까.
三界火宅體非堅 四大色身形不實 人老何會轉少年 花開能有幾時蘇 何勞向外別求玄
本自天然非造作 但能一念心無事 渴則煎茶困則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