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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청량산 청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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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의 풍광과 진경 - 이호신 1995년 11월 165호
절그림을 그리겠다고 마음을 다잡아 먹은 뒤로는 길을 떠나 머무는 곳마다 주변에 어떤 절이 있을지 궁금하다.
사실 처음에는 소문난 명찰이나 구산선문, 폐사지 등을 중심으로 답사하여 시도해 볼까 하는 계획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어 절은 보잘것 없고 왜소해도 풍광이 뛰어난 곳이 있기 마련이고 토굴이나 암자터일망정 가람의 이미지가 충만한 곳이면 외면하지 않기로 하였다.
또 그것을 꼭 예정된 연재에 맞추어 강행하거나 구태여 절기를 의식하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림이란 사실 의무적으로 될 수 없을 뿐더러 그린 뒤에도 스스로 삭힌 뒤에야 내놓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변명은 스님들
의 각별한 협조를 받아 그렸어도 발표하지 못하는 고충이 있기에 밝히는 바이다. 따라서 일정과 순서가 뒤바뀌더라도 설익은 것은 뒷날을 다시 기약하기로 하고, 나의 발길 또한 연緣이 닿는대로 자연스레 절을 찾아 가서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여름 개인전을 앞둔 안동의 선배 화실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또 한 분과 합류하여 모처럼 함께 사생을 나섰다. 도산서원을 돌아보고 봉화의 청량산으로 향한 일행은 안동에 둥지를 튼 선배차를 타고 봉호군 명호면 북곡리로
내달렸다.
구태여 청량산으로 고집한 것은 두달 전 선배가 보내준 「안동」 향토지를 통해 임세권 교수의 `작으면서 큰 산 청량산’ 연재를 의미 있게 읽은 터에 청량사淸凉寺의 수려한 전경이 새록했기 때문이었다. 청량교를 넘자 시야에 가득
들어오는 산 능선의 물결에 가슴 설레이는데, 찌는 더위 속에 차를 두고 가파른 산길과 바위산을 화구를 들고서 오
르기란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첫길에 숨이 차올라 주변 산세는 살필 겨를도 없이 앞 사람 발목만 보며 올라야 했다.
온몸이 땀에 젖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산정에서 아랫길로 통하는 능선에서 청량산을 바라보는 순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기암괴석이 봉우리를 이루어 장쾌하게 펼쳐지는데 그 아래 자그만한 절집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청량사였다. 일행은 달음박질치듯 내달아서 우물에서 갈증을 풀고 가람을 살펴보았다. 절은 대웅보전이 아닌 유리보전琉觸寶嚴으로 약사여래를 주불로 모셨다. 다음으로 나한전. 스님들의 공부방인 선불장 그리고 두 기의 탑이 유일하다. 본디 사리탑이 있던 자리에 1992년에 탑을 세웠는데 그 가운데 하나인 오층석탑은 가람의 규모에 걸맞지 않게 너무 크게 느껴졌다.
사생을 위하여 한 스님에게 청량사의 분위기를 구하니 건너편에 바라보이는 좌측 산 중턱의 절벽길을 타고 가다가
이쪽을 다시 바라보라고 하며, 좀더 산길을 돌아가면 유일한 암자인 응진전을 만날수 있다고 하였다. 길을 따라 내려
서니 퇴계 선생이 공부하던 오산당吾山堂이 그윽한 운치로 남았는데 바로 옆엔 초막산방이란 간판이 눈에 띄었다.산중 오지에 웬 휴게소인가 싶어 들렸더니, 주연 이대실 씨는 산을 타는 산사람으로 산길을 안내하고 길손을 쉬어가게 해 주며 사는데, 예전 서라벌대학 조각과 출신이라 산중 인연을 반기며 따라주는 차 한잔이 무척 정겨웠다.
산방에서부터는 벼랑길이 이어졌는데 나뭇잎새로 흔들리며 떨어지는 허공에 정신이 이찔하건만 뒤돌아보니 마침내 확트인 시야에 한마리 학의 닐개짓으로 비상하고픈 봉우리들이 전면을 병풍처럼 둘렀으니 그 형상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또 까마득한 산자락 아•래로 청량사가 터를 잡고서 산운山韻 위로 떠 있다.
청량산은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민왕이 산성을 쌓았다는 기록과 조선초의 성리학자 주세붕周世關의 칩거 생활이
유명한데 서른여섯 봉우리에 스물네 개의 절이 조선조까지 남아 있었다고 전한다. 봉우리마다 부처님 세계를 상징하여 연화봉, 보살봉, 의상봉으로 불리는데 지금은 청량사와 응진전 둘뿐인 가람이지만 창건은 문무왕 3년인 6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잠시 상기되어 풍광을 만끽하고서 저마다 흩어져 화폭을 펼치려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소낙비가 퍼부었다. 도리없이 산방으로 내려와 기다려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올라올 때의 부담으로 하룻밤 절집에 머물고 싶었으나 차를 산 아래에 두었기에 아쉬운 하산을 택했다. 지나가는 비려니 하고 우비도 없이 산을 내려오는데 빗줄기가 더욱 거세어져서 몸이 물수건이 되고서야 산을 내려왔다.
이튿날의 날씨도 심상치 않아 등정을 고민했으나 오기로 다시 청량산에 오른 일행은 간간이 이슬비가 흩뿌리는 산길에 흩어져 화첩을 펼치고 먹을 갈았다. 바라볼수록 암봉을 휘감고 잠긴 먹구름과 물안개에 둘린 청량산은 그야말로 선경에 든 느낌이요, 그 가운데 청량사는 선객의 주인인듯 싶었다.
굵어진 벗줄기에 몇 번이고 화첩을 열고 닫은 시간속에서 그림을 끝낸 일행은 그 날 저녁 숙소에서 그림을 펼쳐 놓고 서로 품평을 가졌다. 비와 먹구름 속에서의 풍광을 제대로 소화 하였는지는 알수 없으되 그림은 저마다의 생각과 제 모습들을 담고 있었다.
선배들은 주로 ‘청량산’ 과 ‘청량사’를 그렸고, 나는 내심 ‘청량산 청량사’를 담고자 했음이 그것이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