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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을 돌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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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경당 바람결 - 영덕 1995년 11월 165호
저무는 들녘에서 풀꽃씨를 받았다. 눈여겨 보아 두었던 길섶을 찾아 나서면 소리도 없이 피었다가 지는 야생초들이 짧은 볕 속에서 한해를 갈무리하고 있다. 숙살薦殺하는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초훼하게 시들어 가면서도 대공 끝에 매어 달린 마지막꽃잎을 피워 보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모습이 측은하다. 풀꽃씨를 받아서 꼭 심고 싶은 풀어 있는 것도 아니다. 먼 곳에서 보내 주는 씨앗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맘때가 되면 낱알을 거두듯 풀꽃씨를 받는다.

한때는 미풍에 흔들렸지요. 보풀보풀 일어서는 산빛을 바라보며 걸음마를 배웠어요. 산벚꽃 흐드러지게 지던 밤 소쩍새 울음 사무쳐도 얕은 비얄에 무리지어 뿌리 내린 기쁨에 산다는 게 눈물인 줄 정말 몰랐어요. 이니스프리 보랏빛 꿈속에서 깨어나던 아침, 잡초란 아무렇게 뽑혀져도 좋다는 이름인줄. 무지랭이 업이 비로소 서러워 얘야 백초시불모百빼是佛母리더라(백가지 풀이 불모佛母). 얘야 하루 종일 헤매어도 약초 아닌 풀 없더란다. 곡기 끊고 번민하는 젊음보다 아픈 어머니. 이름 같은 거 없으면 어때. 꼭 고향 아니면 어때. 이 땅 어디쯤 지천으로 피었다 눕는 풀꽃이면 그뿐. 세차게 다시 살아나는 잡초 철학, 그런건 내게 말하지마 저만큼 바람이 지나가고 오늘도 여전히 노을이 타고 있잖아.
풀꽃독백


언젠가 적어 본 시다.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제나름의 씨를 간직하는 풀꽃들을 눈에 익은 대로 섬겨 보아도 적지 않은 수다. 산오이풀, 여뀌, 잔대, 아기메꽃, 큰꽃으아리, 가시메밀, 명아주, 모싯대, 마타리, 쑥부쟁이, 달개비, 꼭두서니, 씀바귀, 개망초, 수리취, 금원추리, 인동 강아지풀... 늦게 핀 용담과 개미취 푸른 빛에 눈이 부시다. 노란산국은 이제부터 피기 시작해서 무서리 속에서도 오래도록 향기로울 것이다. 풀꽃 이름을 나직히 불러 보면 신기하게도 돌이, 분이를 부를 때처럼 얼굴이 떠오른다. 목련이나 장미를 부를 때와는 달리 솔바람 소리와 산골 물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삐삐나 갈대, 새풀은 젖혀두고 가지가지 씨를 받아 봉투에 넣었다. 겨자씨 같은 작은 것에서부터 콩알만큼 한 것에 이르기까지 둥글고 모지고, 길쭉하고 얄팍하거나 두툼한 것, 마름모꼴, 물방울형, 날개를 단 것과 찐드기를 붙인 것과 건드리면 터지는가 하면 불면 날아가는 것. 푸른빛 붉은빛 검거나 흰빛, 갈색, 겨자색, 밤색. 생긴 것도 각양이고 빛깔도 각색이다.
이 작은 씨들은 보고 있으니 극미집합極微集合이생각난다. 범어梵語 루우파Rupa는 색色이라 번역한다. 색色을 정의하면 시간적으로 변화하고 공간적으로 걸림이 있는 것이다. 손(手)이 돌(石)에 걸리고 돌이 손에 걸리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하는데 물체를 이루는 기본가운데에 어떠한 방법으로도 분해하기 어려운 최소 분자를 극미極微라고 한다. 분지에서 원자, 원자에서 전자, 전자에서 핵으로, 핵에서 다시 극미로 가는데 극미 일곱 개가 일미취-微聚가되고 일곱 미취는 일금진一金塵이 되고, 일곱 금진이 일수진一水塵이 되고 일곱 개의 수진이 일토모진-免毛塵이 되고 일곱 개의 토끼털 같은 먼지가 일양모진一후毛塵이 되고 일곱 양모 같은 먼지가 일극유진一願遊塵이 된다. 이것을 소급하면 일십일만칠천육백사십아홉 개의 극미가 된다. 아침햇살이 문틈에 비칠 때 틈 사이로 이글거리는 먼지를 극유진 또는 아무 걸림이 없는 상태인 인허진曉虛塵이라고 하는데 그 문틈에 와글거리는 먼지 일곱 알갱이를 모으면 서캐(機) 하나만 해지고 서캐 일곱 개를 모으면 이(훨) 한 마리만 해지고 이 일곱 마리가 모이면 보리 한 알만 해지고 보리 일곱 알을 모으면 손가락 한마디만큼 커지고 세 마디가 모여서 손가락 하나를 이루고 이와 같이 차츰 집합해서 산, 들, 강, 바다같이 큰 형상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지극히 작은 데서 차츰 큰 것에 이르는 비교가 이렇게 재미 있을 수가 없다.
한 알의 씨 속에는 뿌리와 잎과 열매의 인因이 최소한으로 압축되어 있다. 적시에 연緣을 만나게 되면 하나의 생명으로 발아發芽 해서 우주를 떠 받치게 되는 것이다. 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 일미진중함시방, 일체진중역여시의 도리가 들녘 곳곳에 널려있다. 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 일미진중함시방, 일체진중역여시 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 ,一敵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 이 말은 법성게法性偏의 한 구절로서, ‘하나에 모두 있고, 많은 데 하나 있네. 하나 곧 전체이고, 전체 곧 개체이네. 한 티끌 작은 속에 세계를 머금었고 낱낱의 티끌마다 우주가 다 들었네 라고 풀이된다.
들에 들풀들이 무성하듯 산에는 나무들이 자란다 제각기 고유의 이름을 가지고. 나무가 햇살과 물과 자양분을 어떻게 나누어 쓰며 더불어 사는지 우리는 모른다. 다만 그들이 목소리 높이는 것을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는 것, 그것만은 분명하다. 사람도 더불어 산다 높으면 높은대로 낮으면 낮은대로. 승가도 사람 사는 세상에서 예외는 아니어서 모나거나
둥근대로 함께 사는데 이러해야 옳고 저래서 그르다고 한치 두치 건너가는 말들이 사나워질 때 돌아서서 들녘을 헤매는 가슴에는 별이 진다. 어쩌란 말이냐. 왜 이렇게 모멸감을 느껴야 하느냐고 눈시울을 붉히는 어린 등을 다독이며 다만 더 열심히 공부하자고, 그 이상의 어떤 위로도 해 줄 수가 없었다. 우리가 누군가를 비판할 때 더욱 신랄한 다른 눈이 나를 넘겨다보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비구 비구니는 새의 두 날개와 같아서 오른손이 하는 일은 왼손이 돕고. 왼손이 하는 일은 오른손이 도우며 조도助遺의 동행인으로 더불어 살아야 할 것이다. 큰 그릇에 작은 그릇 포개어 지듯 큰 품으로 안아 들이면 어떠한 시비도 있을 수 없다. 받들고 존경하며 자비로 섭수하는 그런 가풍이기를 이토록 바라는 것은 교육적으로 가르치는 길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말없이 물을 데워 돌아온 탕아의 발을 씻어 주는 스승만큼 귀한 분이 있을까.
요즈음은 세상이 그러해서 철따라 나는 과일도 없고 철 맞추어 나는 채소도 없다. 제철이 없는 전천후에 둘러싸여 살다 보니 보이는 것마다 철없는 짓으로 비칠 뿐이리라. 그러나 누가 뭐라 하여도 앞의 물이 뒤의 물을 데려고 가고 뒤의 물은 앞의 물을 따라 가듯이 가만히 소리없이 흘러가고 싶다. 따뜻한 물로 발을 닦아 주는 스승이나 물같이 더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스승이 그리운 세상이다.
슬몃 돌아보는 먼 산자락에 한줌 남은 햇살마저 떨어진 뒤 굽이진 길을 돌아왔다. 바람이 지나간다. 손끝이 시리다. 돌아가고는 있지만 정녕 돌아가야 할 곳은 어디쯤일까.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