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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성스님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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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방 한담 - 지묵 1989년 10월 92호
기차를 타고 가던 차에 기독교 전도사 한 사람이 이 사람 저 사람을 붙들고 예수님 믿으라고 하면서, 춘정스님 앞에 와서는,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하고 치근거렸다. 잠자코 있던 춘성스님이 전도사에게 말하였다.
“뭐? 죽었다 살아났다고? 나는 여태 죽었다 살아난 건 내 ××밖에 못 봤다.”
그러자 주위 승객들이 박장대소하였고 전도사는 잠잠해졌다가 자취를 감추었다.

2
육여사의 생일 법문이 베풀어 진 자리에서였다. 선지식이라고 모시는 노덕스님네와 고관대작의 남편을 둔 아낙네가 법석을 가득 메운 가운데서 춘성스님이 법좌에 올라 한 마디 하였다.
“오늘은 육영수 보살이 지 에미 뱃속에 들있다가 ‘응아’ 하고 ××에서 나온 날이다.”
듣고 있던 대중들은 영부인의 생일에 한 이 법문에 놀라, 서로 얼굴만 바라보고 어쩔 줄 몰라했다.

3
소견이 몹시 좁은 딸을 둔 노보살이 있었다. 하루는 이 장성한 딸을 춘성스님 처소에 보내어 법문을 청해 듣도록 하였다.
춘성스님이 말하였다.
“내 그 큰 것이 네 그 좁은 데에 어찌 들어가겠느냐?”
딸은 얼굴이 벌개져 방 문을 박차고 울면서 달아났다. 집에 돌아와서 노 보살에게 춘성스님의 법문 내용을 사실대로 일렀다.
“스님은 엉터리요, 엉엉엉.”
노 보살은 잠자코 듣고 나서 말했다.
“아이구, 이것아! 네가 그래서 소견이 좁지. 큰스님 법문이 네 쪼그만 소견머리 속에 어찌 들어가겠어?”
딸은 그제서야 울음을 그치고, 제가 스님의 소중한 법문을 잘못 알아차린 줄을 깨달았다.

4
통금시간이 넘어서 밤길을 가고 있을 때였다. 방범 순찰중인 순경이 춘성스님에게 말하였다.
“누구요?”
춘성스님이 어둠 속에서 말하였다.
“중대장이다!”
목소리가 노인네 소리인지라 순경이 플래쉬를 비춰서 춘성스님을 찾아냈다.
“아니 ? 스님 아니시오! ”
“그래, 내가 중의 대장이야! 맞지?”
듣고 있던 순경은 웃음을 참지 못하더니 그냥 자리를 떴다.

5
춘성스님의 은사 만해스님은 불교유신론을 펴내서 불교개혁운동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만해스님의 취지를 잘 이해 못해서 완고한 스님들이 만해스님에게 몽둥이 찜질을 내리기까지 하였으나, 독립운동가로서 서대문 감옥에서 굽히지 않던 지조는 소나무와 대 같아서 차츰 주위에 감화를 주있다.
춘성스님은 만해스님의 유일한 상좌가 되었다. 스님은 은사 스님이 제창한 산신각과 칠성각 등을 폐지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고 있었다.
망월사(望月寺)에서 조실로 주석하고 있을 때였다. 춘성스님은 범성(梵聲)이 뛰어나 아침 도량석 목탁을 손수 해내곤 하였다. 대중 스님들은 말하였다.
“춘성스님 도량석 목탁 소리를 듣고 눈을 뜨는 날에는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거든, 종성(鍾聲)도 그만이지요.”
그런데 어느 날 도량석 중간쯤에서 목탁소리가 뚝 그쳐버렸다.
그때 대중들이 이상하게 여기고 춘성스님을 찾아보니, 법당 앞 축대 아래에 떨어져서 딩굴고 있는 것이었다. 춘성스님은 정신을 치리고 일어나 앉아 말하였다.
“수행자라면 도량신(道場神)을 업신여겨서는 안 돼. 산신각과 칠성각 탱화를 불태웠더니 과보가 바로 오는구나. 도량신을 편안케하고 공부해야지 함부로 날뛰는 일은 삼가해야 해.”
춘성스님은 은사 만해스님의 취지를 소중히 생각하였으나 끝내 산신각과 칠성각은 물론이고 고풍어린 제반 의식을 버리지 아니하였다.

6
춘성스님이 제자들을 모아놓고 유언을 말하는데, 그 중에 방귀 뀌는 법을 이렇게 일렀다.
“사람은 기가 안 빠지게 방귀를 뀌어야 해. 힘 주어서 뽕뽕 뀌게 되면, 첫째는 치질 따위가 걸린다. 둘째는 기가 빠져서 좌복에 오래 못 앉아 있어. 좌선 중에나 그밖에 처소에서도 소리 안 나게 가만히 뀔 일이다. 되도록이면 문 밖에 나가 바지를 헐렁하게 하고 시원히 뀌되, 힘은 조금도 주지 말라.”

춘성스님은 육두(肉頭) 법문으로 입이 거칠고 직설가이긴 하나, 끝내 무소유로 일생을 마쳐 만해스님의 지조에 못지 않게 청정한 납자의 귀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