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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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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 배평모 1989년 10월 92호
극도로 절제된 행동과 무거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회교도인 인도인 사드팔의 일거수 일투족을 뱀처럼 싸늘한 시선으로 감시하고 있는 지가 벌써 닷새째이다. 짙은 눈썰 밑으로 움푹패인 그의 두눈은 생명 없는 물체에 뚫린 두 개의 동공처럼 공허하였다. 예각을 이루듯이 불거져 나온 광대뼈 때문에 더욱 수척해 보이는 그의 수염투성이 얼굴에 회백색의 콘크리트 먼지가 침엽수에 내려앉은 눈송이처럼 하dig게 뒤덮여 있었다. 그는 힌두교도인 카심이 얼음이 담겨진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있는 물통 곁을 지나치면서도 끝내 눈길 조차 주지 않았다. 쇠잔해진 육신이 무거운 듯 휘적휘적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른 모래먼지가 풀석풀석 일고 있있다.
나는 속으로 ‘네놈이 비굴한 웃음을 흘리며 물통으로 다가서지 않고는 못 배길 테지, 네놈에게 당한 것을 꼭 갚고야 말리라”고 되뇌며 그의 뒷모습을 적의에 찬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이슬람력으로 9월, 아라비아 말로 더운 달이라는 뜻인 라마단이 시작하자 모든 회교도들은 일제히 단식을 시작하였다. 내가 속해 있는 작업장의 천여 명의 인도인 근로자들 중에서도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회교도들은 단식을 시작하였다. 해가 뜬 후부터 질 때까지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것이다. 심지어는 즐겨 우는 담배까지도 피우지 않았다. 단식을 시작한 회교도들은 오전 동안만 작업을 하고는 모두 숙소로 돌아가 쉬었다. 그러나 서양력으로 8월 하순 무렵부터 9월 하순에 해당되는 이 기간은 낮기온이 50도가 넘는 불볕 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때이다.
우리가 있는 작업장은 금세기에 몇 안 남은 오지로 꼽히는 텅 빈 지대라는 뜻을 지닌 광막한 룹 앨 할리 사다이 시작되는 지점에서부터 40킬로미터나 깊숙이 들어와 있는 사막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 작업장에서는 조립식으로 고층 아파트를 짓는 데 쓰이는 여러 형태의 콘크리트 벽을 제작하였다. 벽 모양을 이룬 열두 겹의 거대한 무쇠틀 속에다 물이 질척한 콘크리트를 채우고 나서 무쇠틀 속으로 배관된 파이프에 140도의 스팀을 넣어 열을 가하면 불과 네 시간 만에 빵틀에서 빵이 구워지듯 건물의 커다란 벽이 완성되어 크레인에 들려 나오는 것이다. 무쇠틀은 가로가 7미터, 세로가 4미터나 되는 대단한 크기인데, 콘크리트 벽을 들어내기 위해 무쇠틀에 설치되어 있는 기계로 틈을 벌리면 1미터 남짓한 열두 칸의 공간이 생긴다.
나는 마혼두 명으로 구성된 인도인 작업조의 조장이다. 인도인들은 완성된 콘크리트 벽을 들어내고 난 그 열두 칸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 무쇠틀의 벽에 형성된 짧은 콘크리트 막을 끝부분이 일직선인 부채꼴 모양의 쇠칼로 긁어내고는 기름칠을 하는 일을 도맡아서 하였다. 하늘에는 뜨거운 햇살의 채찍으로 잔인하게 등가죽을 내려치는 태양이 이글거리고 있었고, 140도나 되는 스팀의 열로 달구어진 무쇠틀은 살인적인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게다가 쇠칼로 무쇠틀의 벽을 긁으면 삽시간에 강한 독성을 지닌 회백색의 콘크리트 먼지가 시야를 가리며 자욱하게 퍼졌다.
나는 그 지옥 같은 공간 속으로 짐승 떼를 몰아넣듯 인도인들을 무자비하게 몰아넣고는 그들의 작업을 악랄하게 독려하였다. 처음 한동안은 잔인한 노예감독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자책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무미건조하게 되풀이되는 하루하루의 타성에 빠져 그러한 자책감마저도 무디어져 버리고 말았다.
단식이 시작된 지 사흘째로 접어들자 대부분의 회교도들은 물을 찾기에 급급하였다. 나는 “그러면 그렇지. 알라의 계율보다는 당장 창자 속까지 타들어가는 갈증이 더 무섭겠지” 하고 그들의 고통을 십분 이해하였다.
그러나 간혹 짓궂은 한국인 근로자들은 그들은 가리켜“나이롱무슬림”이라고 빈정거리기도 하였다. 심지어는 같은 국민인 힌두교도들까지도 “무슬림 남바 텐” 하고 비아냥거렸다.
단식을 시작한 지 일주일째로 접어들자 사드팔이라는 회교도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알라의 계율을 어겼다. 깡마른 체구에다 키까지 작달막한 그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자신의 체액을 고갈시키는 열악한 조건의 힘겨운 노동과 싸우면서도 알라의 계율을 굳게 지키고 있었다.
열흘째가 되는 날이었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열풍이 수미터 앞에 있는 물체를 식별할 수조차 없을 만큼 자욱한 모래 먼지를 동반한 채 불어닥쳤다. 대기에 과밀해있는 모래입자들 때문에 이글거리던 태양은 구름 속의 달처럼 흐릿하게 빛을 잃고 있었다. 낮도 밤도 아닌 음산한 어둠이 사막을 뒤덮고 그 어둠 속으로 사막의 모든 모래가 살아서 하늘로 비상하고 있었다.
작업장의 모두는 바람막이가 됨직한 물체가 있는 곳으로 대피를 하였다. 나는 완성된 콘크리트 벽들을 세워둔 곳으로 뛰어가다 헌 누더기뭉치처럼 쓰러져 있는 사람에 걸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하였다. 직사광선을 피하기 위해 보자기로 얼굴을 감싼 그가 누구인지 확인해볼 겨를도 없이 끌다시피 하여 콘크리트 벽들이 세워져있는 곳으로 갔다. 땀과 기름때에 절어서 암회색의 콘크리트 빛깔보다 더 더러워진 보자기를 벗기고 보니 열흘 동안의 단식으로 야윌 대로 야윈 사드팔이었다.
그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는 나를 초점 없는 시선으로 흘깃 바라본 후, 두 무릎을 세워서 두 팔을 괴고는 떨어뜨리듯 얼굴을 묻었다. 그러한 자세로 한참이 지나도록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dig게 소금간이 핀 채 뺏뺏한 작업복 주름 사이로 열풍에 실려온 모래가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흡사 생명이 없는 물체처럼 보였다. 나의 뇌리 속으로 그가 과중한 노동과 처절한 단식으로 인한 심한 갈증 때문에 생명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얼핏 떠올랐다.
나는 그 불안을 떨쳐 버리지 못하여 물통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빈 콜라깡통에다 물을 가득 채워 가지고 왔다. 붙박이 바위처럼 꼼짝도 않고 웅크리고 있는 그의 이름을 큰 소리로 몇 번 불러 보았으나 반응이 없었다. 얼음이 채워져 있던 찬물을 그의 목덜미에 조금 붓자. 그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치켜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조금은 안도하며 그의 시선 앞으로 물이 담긴 깡통을 내밀있다.
그는 물이 담긴 깡통을 일별하고는 다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이 창날처럼 날카로워서 섬뜩하였다. 뒤이어 그는 나에게서 물이 담긴 깡통을 나꿔채더니 물을 죄다 쏟아버리고는 획 던져버리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세차게 고개를 돌려 땅바닥에다 “돼” 하고 침을 뱉았다. 그러나 메마른 그의 입에서는 단 한방울의 침도 뱉어지지 않았다. 그러한 그의 행동은 극도의 증오와 모멸을 동시에 나타내는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적의에 찬 눈초리를 번뜩이며 그를 감시하였다. 그가 만약 단식기간 동안 한방울의 물이라도 마신다면 내게 보인 증오와 모멸에 대한 앙갚음을 톡톡히 하리라 벼르면서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열나흘째가 되는 날 오전휴식 때였다. 회교도들에게는 하루에 다섯 번씩 행하는 오전예배에 해당하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힌두교도인 카심이 내게로 다가와 턱짓으로 물통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놀랍게도 사드팔이 빈 콜라깡통에 다 물을 받고 있었다. 이 밀고자는 나의 적의에 찬 감시의 눈초리를 진작부터 감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나의 속마음을 내보이는 것 따위에 연연할 때가 아니었다.
그는 깡통에다 물을 가득 채운 다음 완성된 콘크리트 벽들이 세워져 있는 사이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나는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네놈도 별 수 없었을 테지”하고 쾌재를 부르면서 그가 들어간 콘크리트벽이 세워진 곳으로 은밀히 다가갔다. 내가 도착했을 때, 그는 오른쪽 손바닥에 물을 받아서 막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나는 마치 그가 저지르고 있는 범죄의 현장을 홈쳐보고 있기라도 하듯 숨을 죽이고 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는 쾌재를 부르고 있는 나의 기대와는 달리 입안의 물을 도로 뱉어내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나는 “설마 제깐 놈이 물을 안 마시고는 못 배길 테지” 하는 심정으로 계속 지켜보았다.
그러나 끝내 나의 기대는 빗나가고 말았다. 그는 굴뚝 속처럼 메마른 입안을 축여만 내고는 마지막 한방울의 물까지도 끝내 마시지 않았다.
그는 성지 메카를 향하여 무릎을 꿇고는 온몸이 땅에 밀착되도록 엎드려 절을 한 뒤에 상체를 세워서 두 손을 배꼽 부분에 포캔 후 나지다히 코란을 외었다.
“라-일라-하-알라-일라-무하마드라슬-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