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수좌야! 불안한 맘을 가져 오너 라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뜰앞의 잣나무 - 동봉 1989년 10월 92호
하루는 한 수좌가 임제 큰스님 처소에 찾아와 큰스님을 참배하였다. 마침 큰스님은 절 앞을 흐르는 개울의 다리 위를 서성이고 계셨다. 수좌가 공손하게 합장을 하고는 여쭈었다.
‘큰스님, 저 개울의 깊이는 얼마나 됩니까?”큰스님은 느닷없이 뭍는 수좌를 다리 아래로 밀쳐 버렸다. 실로 순식간의 일이었다. 때마침 큰스님의 시중을 들며 옆에 있던 한 스님이 재빨리 손을 쓰는 바람에 물에 빠지는 것은 겨우 면하였다 그리고 큰스님은 이미 여유있게 자리를 뜨고 계셨다. 너무나 창졸간에 일어난 일이라 수좌는 어리둥절하였다.

우리 인간이 자기의 생각, 어렵게 얘기하면 자기의 사상을 남에게 전달하는 방법으로는 대체로 세 가지가 있다. 그 첫째 방법은 자기의 사상을 조리 있게 논리적으로 정돈하고 이를 문자를 통하여 또는 언어를 구사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기의 생각이나 사상을 남에게 전달하고 어떠한 학문적인 성과를 발표하는 것도 대부분은 이러한 방법에 의존하고 있다.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물량의 서적들, 평소에 아주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대화 등은 모두 이러한 자기 의사 전달의 한 방법인 것이다.
그러나 종교적인 체험에서는 또 다르다. 특히 그 중에서도 선의 깨달음과 깨달음의 세계에서의 소식은 문자라든지 언어를 통해서 전달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가령 음식의 미묘한 맛은 먹어본 당사자는 알고 있지만 그 맛을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설명할 수 없다. 또한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설령 아무리 자세히 설명한다 해도 본래의 맛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이른바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온갖 언어와 문자를 다 동원하여 전하려 해도 전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종에서는 첫째의 방법을 가장 꺼린다. 음식의 맛을 언어로 설명하지 않고 직접 먹어보게 하며, 물의 깊이를 설명에 의한 것이 아닌, 직접 들어가서 몸소 느껴보게 하는 것이다.
며칠 전 한낮을 조금 지나 객은 오지 않고 혼자 빈 절을 지키며 앉았노라니 무료하기도하고 하여 녹차를 한잔 우려놓고 보니 손톱이 꽤나 길어 보였다. 그래, 돌아앉아 손톱을 깎고 나서 큰잔에 반넘어 남아 있던 치를 마셨다. 그리고 나는 게우고픈 충동을 느꼈다. 손톱이 찻잔에 튀어 들어간 것이다. 난 거기서 비로소 원효 큰스님이 무덤 가에서 밤에 해골물을 마시고 이튿날 아침 구토증을 일으키며 만법이 오직 마음 하나에 달렸다고 한 법문을 이해할 수 있었다. 원효 큰스님이 마신 물은 남의 해골에 담겨졌던 물이니 구토증이 날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그런데 나는 어떤가? 다른 이의 몸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의 일부분이던 나의 손톱이 튀어 들어갔을 뿐이지 않는가?
우리는 늘 하루 세 때의 끼니를 통하여 생명을 부지한다. 그 때 그 음식은 모두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물론 요즈음은 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음식을 만들기도 한다지만 그래도 음식 맛은 손끝에서 나오는 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어머니나 아내, 또 다른 음식을 만드는 이의 손톱맛(?)을 보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단 한번도 손톱 또는 손가락을 연상하며, 또 설사 연상한 다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구토증을 일으키며 음식을 들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게 뭔가? 바로 내 몸의 한 부분인 손톱 때문에 게우고픈 충동을 일으키다니!
원효 큰스님의 그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여 불제자라면 누구나 들어서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곧잘 그렇겠거니 하고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원효 큰스님의 당시 마음 상태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싶다. 어려운 얘기다. 실로 마음의 상태를 말로 설명하고 문자를 빌려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0말이다. 나 역시 숱하게 그 법문을 들어왔지만 그날 그 찻잔에 튀어 들어간 손톱을 보고서야 비로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역시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다만 나 스스로 느낄 뿐이다. 이는 오관을 모두 동원하여 직접적으로 느끼게 하는 전달 방법의 두번째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그 때 그 장소에 있던 사람에게는 전달할 수 있겠으나 그 자리에 없던 사람이나 후대 사람에게는 전달이 불가능하다. 거기서 옛선사들은 자신이 깨달은 경지를 자연을 빌려서, 혹은 게송을 의지하여 비유적으로나 상징적으로 표현하려 하였다. 이른바 오도송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대하는 옛조사들의 오도송이 비록 문자를 빌려서 씌여졌지만 그것은 문자 이전의 소식이다. 문제는 그러한 오도송, 즉 깨달음의 경지를 노래한 것을 문자로만 보고 문자에 의해서 해석하려는 데서 길이 어긋나는 것이다. 이는 제삼의 전달 방법이다.

여기서 필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두번째의 전달 방법이다.
어느날 중국 선종의 제 2대 조사인 혜가대사가 보리달마를 찾아뵙고 말했다.
“저는 마음이 몹시 불안합니다. 큰스님께서 제 마음을 편안케 해 주소서.”
“그래? 그러면 너의 그 불안한 마음을 가져오너라. 내 편안케 해 주리라.”
“큰스님 ! 아무리 찾아도 마음을-찾을 수가 없습니다.”
“찾아지면 어찌 그것이 네 마음이겠느냐? 벌써 네 마음을 편안케 하였느니라.”
그러고는 다시 “너의 마음을 이미 편안하게 해 주었느니라. 그대는 그대 마음을 보겠는가?” 하자, 혜가가 활연히 깨닫고 스승께 사뢰었다.
“오늘에야 모든 법이 본래부터 공적하고, 오늘에야 깨달음이 멀리 있지 아니함을 알았나이다. 그러기에 보살은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깨달음의 바다에 이르며,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열반의 언덕에 오름을 비로소 알았나이다.”
이와 비슷한 문답은 제 3조인 승찬이 스승 혜가대사를 찾았을 때도 있었다.
하루는 한 거사가 혜가대사를 찾아뵙고 성명도 밝히지. 않은 채 말했다.
“저는 풍병을 앓고 있습니다. 큰스님께서 저를 위해 참회하여 주옵소서.”
“참회를 구한다면 죄가 있을 것이니, 죄를 가져오너라. 참회하여 주리라.”
“큰스님 말씀을 듣고 죄를 찾아보니 찾아도 찾을 수가 없나이다.”
“그대의 죄는 이미 참회가 끝났느니라. 그대는 그저 삼보만을 의지할지어다.”
“큰스님을 뵈오니 승보가 있음은 알겠으나 어떤 것이 부처이고 법입니까?”
“마음이 부처요 마음이 법이니, 부처와 법은 둘이 아니니라. 알겠는가?”
이러한 예를 한 가지 더 들어보자. 제 3조 승찬대사의 문하에 열네살 먹은 사미가 있있다. 이름을 도신이라했다. 조사(승찬)를 찾아 뵙고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의 마음입니까?”
“너는 지금 무슨 마음인가?”
“저는 지금 무심(無心)입니다.”
“네가 무심이라면 부처님에게 무슨 마음이 있겠느냐.”
“큰스님, 제게 해탈법문을 들려주옵소서. 제 마음이 몹시 답답합니다.”
“누가 너를 속박했더냐, 해탈을 구하게?”
“아무도 속박한 이가 없습니다.”
“아무도 속박한 이가 없다면 너는 이미 해탈한 사람이니라. 어찌 다시 해탈을 구하겠는가?”
초조 보리달마로부터 제2조 혜가대사에게, 혜가대사로부터 제3조 승찬대사헤게, 승찬대사로부터 제4조 도신대사에게 전해지는 전법의 기틀이 이처럼 비슷하다는 것은 어찌 보면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다. 이들 내용에서 우리가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인간 모두가 지니고 있는, 그리고 구명하고자 하는 대상, 그 마음의 소재다. 이 마음이란 곧 모든 법의 근본이다. 이 마음의 세계란 언어라든지 문자에 의해서 설명되거나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질 따름이다. 이른바 ‘이심전심(以心傳心)’이다. 이해가 아닌, 느낌이다.
며칠 전, 사시마지를 올리고 방에 돌아와 점심공양 시간까지 반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좌선 겸 다리를 틀고 앉았는데, 마침 서울에서 안면이 있던 청년이 찾아왔다. 그래, 둘이 차를 끓여놓고 앉아 밀린 얘기들을 주고 받노라니 어느덧 공양 시간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청년이 주로 얘기를 했고 나는 그의 얘기를 들어주는 편이었다. 한참 뒤 그가 말했다. “전 스님의 세계를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길래 나는 대답했다.
“머리를 깎아보지 않은 사람은 출가사문의 마음을 알 수 없다네.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