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無礙의 교체
事相으로 포착되는 갖가지 敎法은 그 實體인 一實의 眞理로 귀결하고, 현상의 차별된 사장과 無分限의 보편적인 진리는 無礙라고 표현되는 체계로 통합된다. 전호에서 이러한 체계에 대해 얼마간의 설명을 부연한 바 있다. 현담의 교체론은 사실상 이러한 특정한 체계적 사고방식을 전제로 성립하는 것이다. 현담에 기술되어 있는 열 가지 단계의 교체론 가운데 일곱째, 여덟째, 아홉째 단계에 해당하는 회연입실, 이사무애, 사사무애의 교체론은 화엄교학의 핵심적인 교리체계인 동시에 역사적으로 누누하게 진행되어 왔던 교체 논쟁의 화엄교학적인 결론이 된다. ‘探玄記’의 논증방식을 계승한 현담의 교체론은 바로 자신의 교학체계와 과거의 교체논쟁을 교묘하게 접목시킴으로써 지신의 교학적 체계가 전통적 교학의 연장선상에서 정당한 근거를 확보하고 있음을 과시하려 한다. 게다가 나아가서는 그 교학체계 자체를 최상의 교체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현담의 교체론을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교체논쟁의 본성론적 해소를 규정할 수 있는)그 전통적 교체론과 교학체계 자체의 同一視는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교학체계를 구성하는 사고방식이나 전제들, 표현 방식 따위는 교체논쟁의 구체적인 문제들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이 글의 목적은 화엄교학의 사고방식이나 그 틀의 정당성을 시험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르침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 경전이 도대체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 경전을 통한 가르침의 수행이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지를 교체론이라는 주제 아래 문제삼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현담 교체론의 전개방식을 따라오면서, 특정한 교학적 전제들과, 교체론의 역사적 의의를 조심스레 구별해내려 했던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것이면서 현담 교체론 안에 교묘하게 위장된 채 뒤섞여 있다. 사실 화엄교학의 교리체계는 오늘날 거의 완전하게 신비에 쌓인 재해석되지 않고 있다. 사람들은 아무도 해석하지 않는, 해석할 수 없는 죽은 언어들, 화엄교학의 전제들에 이상한 매력과 권위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 이상한 전제들을 가르침이나 깨달음의 내용으로 이상하게 동일시한다. 화엄교학의 대성자인 법장 현수가 측천무후의 비호를 받으며 봉건적인 정치질서에서 능동적으로 기생했다는 역사적인 사실에는 의아해하면서도, 그의 사고방식과 그가 사용했던 논리나 언어의 시체들에는 의심없는 열렬한 신뢰와 찬사를 보낸다. 현담이 말하는 ‘무애’,우리는 아직도 이러한 환상적인 언어의 권위에 맹목적으로 감싸여 있다. 그러나 정작 이 ‘무애’ 의 최종 근거를 입증해야할 ‘교체론’은 엉뚱한 비약과 교묘한 기만 오류로 뒤얽혀 있을 뿐이다.
①理事無礙의 교체
회연입실이나, 이사무애, 사사무애 따위의 교체론은 義理分齊章에 기술된 화엄교학의 전제들의 재판일 뿐이다. 현담에서는 몇 단계의 비약적 논증을 거쳐 역사적인 교체논쟁의 논점을 지신의 교리체계로 이끌어오기는 했지만(앞에서 이를 ‘본성론적 교체론’으로 구별한 바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교체론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독자적인 주장일 뿐이다. 이사무애가 교체라는 주장은 그대로가 의리분제장의 法界歡인 까닭에, 현담에서는 이를 단지 몇줄로 넘겨버리고 그 자세한 내용은 의리분제장으로 넘겨버린다. 가르침의, 경전의 근거를 묻기 이전에 그 義理가 이미 완결된 채로 제시되어 있는 것이다. 그 앞뒤가 뒤바뀐 주장을 이해하는데 참고가 되도록 그 짤막한 몇 줄을 그대로 인용해 보겠다.
“이사무애의 체라는 것은, 모든 교법이 비록 그 자체가 그대로 眞理이지만 十二分敎 따위의 事相으로 완연히 顯現함에 장애되지 않는다. 眞如는 비록 그 자체가 一切의 교법으로 되지만, 一味로 湛然히 평등함을 장애하지 않는다. ‘如無礙’인 까닭에 부처님의 음성 또한 ‘여무애’에 따른다. 모두가 如智와 더불어 상응하는 까닭이다. 앞에서 의리분제장에서 널리 밝힌 바와 같다.”
가르침의 근거는 ‘如無礙’로 귀결한다. 그러나 정작 전제된 여무애는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말인가
②事事無礙의 교체
理와 事가 무애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매개로 事와 事가 무애하다는 결론으로 도달한다. 개개의 一切事는 모두가 보편적인 眞理를 동일하게 體性으로 삼기 때문이다. 이 一切事의 무애한 존재연관은 소위 十種玄門으로 나타난다. 현담에서는 교체론의 누누한 설명을 이 10종 현문에 대한 장황한 인증으로 마감하려 한다 먼저 사상으로 현현하는 일체의 교법을 文과 義의 二法으로 구별하고 소위 圓融이라고 표현되는 十種의 德相을 이 二法에 적용하여 해석하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번거롭기 짝이 없고, 오해의 소지가 많은 德相을 차근차근 설명하는 대신에 경문을 한 귀절씩 인용하고, 이 인용한 경문을 자기식으로 해석함으로써 그 德相에 대한 설명으로 삼는다.
가령, 文이 원융함을 밝히는 十玄門 중의 한 귀절을 인용해 보면, “(화엄경) 현상품에 이르되 ‘부처님께서 한 가지 묘한 소리로 연설하시니, 十方의 나라에서 두루 듣는다.(그 한소리에) 뭇소리를 모두 구족하였으니, 法雨가 두루 충만하더라’하였다. 이것이 곧 同時具足相應體이다”라 하고, 이어서 이를 一과 一切, 展과 卷이 무애하여 동시에 성립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식이다.
여기서 文과 義의 二分的 해석은 경문을 능소전으로 가르는 전통적인 二分法을 본성론적으로 변용한(가령 詮의 구조에서 顯의 구조로의 본성론적 전환 통상적 방법이며, 이 양자의 무애함을 文의 원융한 德相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화엄경문상에 자주 등장하는 音을 이 文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담은 여기에 원융한 소리에는 이미 名句文을 갖추고 있기 마련이라는 해석을 달아놓는다. 能顯의 諸法을 통칭하는 代表語로 一音을 해석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교체논쟁에서 가르침의 일차적인 근거는 佛聲의 現前性이라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이 소리라는 물질적 현상의 현전이 갖는 한시성으로 인해 名句文義 따위로 그 논쟁이 복잡해졌을 뿐이다. 현담에서는 그 논쟁 속에서 한계를 드러낸 소리의 현전성애다가 眞理의 보편성이라는 새로운 근거를 제공하여, 그 一音의 원융한 德.相을 가르침의 근거로 완결짓는 것이다.
8. 海印三味의 교체
이상의 여러 가지 단계로 복창하게 전개되어 온 교체논쟁은 해인삼매라는 전혀 새로운 지평으로 총괄지워진다. 앞의 아홉 가지 단계가 別의 교체론이라 한다면 이 해인삼매는 總의 교체론이 된다. 無盡의 교법은 모두가 부처님께서 海印三味에 드신 상황에서 밝게 나툰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가르침의 근거는 바로 해인삼매가 된다. 이 부분에서도 현담은 별다른 설명없이 화엄경의 경문을 한두줄 인용하는 것으로 經證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海印炳現이라고 표현된 이 교체는 앞의 法界歡의 총칭일 뿐이다. 앞의 세단계로 別說된 내용이 이 표현으로 통합된다. 이 海印을 근거로 가르침은 설해지며, 또 이를 근거로 十種 玄門의 德相을 갖춘 가르침이 수행되는 것이다.
Ⅲ. 결어
‘교체’라는 말은 ‘가르침이 성립할 수 있는 근거’를 뜻한다. 이 말은 가르침을 가르침이게 해주는 가르침의 實體를 의미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의미는 본성론적 교학의 사고방식 안에서 굳어진 것으로 실제로는 보다 구체적이고 역동적인 의의를 또한 담고 있다. 화엄현담의 敎體章을 소개하면서 “경전의 언어를 통해 가르침은 어떻게 수행되는가”라는 제목을 볼인 이유는 바로 그 본성론적 의의와 아울러 구체적인 의의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현담의 교체장은 첫째, 전통적으로 전개되어 왔던 교체논쟁의 비판적인 소개, 둘째, 그 논쟁에서 드러난 난점과 한계들을 자신의 교학적 전제들 로 매개, 셋째, 이러한 논쟁의 의의와 난점을 자신의 교학체계 안에 포섭해들임으로써 그 교학 체계를 교체론과 동일시하는 단계로 구성된다. 이 과정에서 화엄교학의 본성론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전통적인 논쟁 속에 내포되어 있던 구체적이고 역동적인 요소들은 본성론적으로 해소되고 그 實體라는 의미만이 남게 된다. 우리는 ‘문자로 기록된 가르침’인 경전에 맞서 있다. 이러한 경전을 통해 가르침을 실제로 수행해 내기 위해서는 그 가르침이 설해질 수 있었던, 또 이를 통해 가르침을 재현할 수 있는 근거를 당연히 선결적으로 물어야 한다. 현담의 교체장은 그 교학의 본성론적 특성이나 오류 투성이의 비약적 논증방식에도 불구하고 ‘언어문자를 통한 가르침의 수행’이라는 문제에 도움이 되는 많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 어쨌거나 현담의 교체론은 현담에 담겨있는 교학 체계를 단순한 사상이나 主義에 그치지 않고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간주할 수 있는 근거들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현담의 교체론은 화엄광학의 연장선상에 있는 우리 불교의 현실에서 볼 때 몇 가지 중요한 문제를 담고있다. 첫째는 부파시대의 교체논쟁에서 나타나는 聲名논쟁의 구체적 측면(존재론적 측면을 사상시킨)에서 현대적인 경전 해석학의 原流와 모법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논쟁은 역사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의사소통 이론의 측면에서 독창적이고 괄목할 만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둘째는 유식교학의 교체론에 나타나는 독특한 방법론과 심화된 논쟁에서 현대적인 교학의 지침들을 실험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유식교학은 교체론의 역동적인 논점들을 자신의 교학체계 안으로 포섭해 들임으로써 교체론의 참된 의의를 폐기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독특한 방법론으로 산만한 논쟁을 체계화하는 공헌을 했다. 셋째로 위와 같은 긍정적인 측면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본성론적 사고방식의 폐해가 교체론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부처님과 제자들 사이에 벌어졌던 생생한 가르침을 형이상학적 체계와 동일시함으로써 그 구체성을 사상시키고, 眞理의 보편성만을 寶體로 삼음으로써 가르침의 가치를 공허한 원리로 치환시켜 버렸다. 넷째로, 유식교학이나, 화엄교학이 ‘체계적’이라는 장점으로 인해, 가르침을 단지 언어의 해석이 아닌 지혜, 의식, 언어, 개념, 의미, 실천수행 동의 포괄적인 노력을 통해 체계화했다는 점이다. 이는 경문의 해석이 단순환 축자적 해석, 언어 상의 문제가 아닌 역사와 문화, 지혜와 의식, 실천 둥의 복합적인 연관 속에서 이뤄져야 할 가르침의 수행이라는 점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