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역사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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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성전
1995년 11월 165호
무라야마 도미이치 일본총리의 ‘한국 병합조약은 당시의 국제 관계 등 역사적 사정 속에서 법적으로 유효하게 체결되었다 는 망언은 일본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가장 가까이 있는 나라, 일본. 그들의 민족 양심의 현주소는 어디이며 그들이 다시 한일합방의 법적인 유효성을 외치는 의도는 무엇인지, 그 저의에 대한 의구심이 치욕의 삼십육 년과 함께 강하게 고개를 든다. 한일합방이 법적으로 유효한 조약이었다는 일본 총리의 망언 속에는 어쩌면 삼십육년 동안의 조선 통치에 대한 향수가 짙게 깔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통치권의 상실이 그들에게는 절망이었고, 결코 지울 수 없는 군국주의의 꿈을 오십 년이 지난 지금 이 땅에서 다시 실현하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지니게 한다. 일본의 극우 세력들의 발흥은 언제나 이어져 왔다. 사라진 군국주의의 망령이라 할 그들은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며 강한 일본을 외치고 있다. 전범국으로서의 반성보다는 패권국가로서의 잃어버린 꿈을 아쉬워하고 있다. 총리의 망언을 간과할 수 없는 것도 이 점에 있다. 연발하는 일본총리와 각료들의 망언에서 우리는 그들의 지배 욕구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총리의 발언은 이런 뜻을 내포하고 있다. 곧 일본의 조선 지배는 합법적이었고 조선 통치에 대해 사과할 이유가 없다 고. 아마도 일본총리는 이 말 마저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오십 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는 지배와 피지배의 문제들.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회담에서 우리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국교의 정상화는 두 나라 사이의 과거사 대한 명료한 청산을 전제로 가능한 것인데도 당시 우리 정부는 공식적인 사과 한마디 받지 못한 채 일본과 한일기본조약을 서둘러 체결하고야 말았다. 당시 정권의 주체는 친일 성향적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정권의 구조는 저변이 취약한 군사 정권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일본은 화해의 대상이었고 일본의 경제 원조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들은 과거사의 해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라야마 총리의 망언도 이 조약에 근거해 정당하다는 것이 일본의 주장이다. 한일합방이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우리 정부의 요구를 일본정부는 가차 없이 묵살해 버렸다 그것은 해석의 문제가 아니다. 좀더 근본적인 인정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삼십육 년이 우리에게는 아픔이었고 그들에게는 과오였음을 인정한다면 일본총리의 그런 망언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정부가 어떻게 법적인 유효성을 운운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일본은 역사에 대해 오만하다. 그것은 역사를 자가식으로 해석함을 의미한다. 그들의 사라지지 않는 군국주의의 꿈과 계속되는 망언도 오만한 역사 인식에 근거한다.
그들의 오만한 역사인식이 사라지기 전에는 새로운 한일 관계는 공염불일 수밖에 없다.
이번의 총리 망언에 대해서는 취소와 사과를 반드시 받아내야만 한다. 그것만이 일본의 오만한 역사 인식을 깨트리고 새로운 한일 관계의 출발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민 모두의 강력한 대응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