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문명에 대해 보다 넓고 깊게 이해하면 정치와 종교는 어쩔 수 없이 상관되며, 종교는 적어도 정치가종교에 영향을 미친 그만큼의 영향을 정치에 미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 둘의 독립은 가변(可變)적인 것이며 종종 둘 사이의 긴장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역시 결합될 수 있는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종교가 ‘사적(私的)’이며 ‘비정치적’이라거나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 또 국가가 ‘공적 (公的)’이며 ‘세속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대개는 특수한 종교적 전통이 현대 서구인의 사고와 사회생활에 가해 온 엄청난 충격에서 기인한다는 점이다.
위의 설명에 의하면, 현대에 이르러 종교와 정치의 무관성을 강변하는 것은 그만큼 양자가 밀접한 관계에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종교와 정치가 서로 별개임에도 불구하고 두 영역 사이엔 어쩔 수 없는 상관성이 있는 이유는 정치에 있어서의 권력이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항상 강압적인 힘과 영향력과 권위가 복합되어 형성된다. 이 중에서도 무엇보다도 권위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따라서 정치는 권위로서 수긍되어야 할 의미 있는 목적과 통찰력(미래에 대한 이상적 전망)을 요구한다. 플라톤의 「공화국」에서처럼 서구의 고전적 전통에서는 그러한 권위를 제공하는 기본적 요인은 지혜였다. 그러나 실제의 정치에 있어서 철학적 지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마키야밸리의 「군주론」에서처럼 현실적인 힘을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철학적인 의미에서의 지혜는 그것이 철학 그 자체로부터 종교로 전환될 때에만 결정적인 권위를 지니게 된다. 즉 철학이 지혜와 현실적인 힘을 초월한 ‘정말로 진실한 것’에 대한 형이상학적이면서도 도덕적인 통찰력으로 바뀔 때에만 그러하다.”종교학자의 위와 같은 견해에 따르면, 불교야말로 정치가 요구하는 권위를 가장 이상적으로 제공할 수 있을 것임을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불교는 그 어떠한 사유체계보다도 지혜를 중시하면서 그것을 종교와 도덕적 통찰력으로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뜻 보아 정치와는 가장 무관한 듯한 불교가 어디에서나 통치자들의 비호 아래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2. 불교의 비정치성과 정치성
인생의 고(苦)라는 문제를 기본적으로 자각(自覺)으로부터 해결하자 했던 불교는 교의상 가장 비정치적인 종교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실제로 과거든 현재든, 그리고 승려에게 있어서나 일반인에게 있어서나 세속의 정치는 물론이고 교단 내의 정치에도 무관삼한 이가 진정한 승려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또 정치적 생활이 어떻게 권력․이익․힘, 심지어 세속적 지혜와 연관되느냐 하는 문제는 확실히 불교의 교의에서 부수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불교는 정치로부터 초연해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불교가 출범할 때부터 견지해 온 사회에 대한 본래적 시각이 지금도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인도에서는 억압받은 일부의 사람들이 근래의 몇 년 동안 카스트제도(四姓제도)에 저항하여 불교도로 전향하고 있다고 한다.
불교가 그 출범부터 확고하고 분명한 사회적 태도를 표명했다는 것은 비록 그것이 교의상 부수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나름대로의 정치적 관여라고 보아야 마땅하다. 오히려 불교의 그러한 부수적 양상이 간접적으로는 막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불교는 바라문교의 계급차별인 카스트의 권위를 근본적으로 파기했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가 기능적으로는 제2이하의 계급, 특히 사제(司察) 계급의 권위에 눌려 있던 왕족계급을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했다. 불교가 전파된 어느 곳에서나 왕족의 통치자들에 의해 지지를 받아 확산되었던 것도 이에 기인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남방불교의 국가에서는 말할 것도 없지만 북방불교국가, 즉 과거의 중국․한국․일본에서도 불교는 지배층과 특수한 유대관계를 갖고서 지배자의 권좌에서 최고의 보배로 간주된 적이 있었다는 점은 불교의 정치성을 입증하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는 결코 불교가 단순히 그때그때 시대적 상황에 부응한 결과가 아니라, 교의상의 중생구제라는 종교적 사명(이를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정치적 사명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을 현실에서 실현코자 한 데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물론 그 사명을 제대로 실천했는가 하는 문체는 우리가 반성하고 비판해야 할 일이다.
3. 불교의 정치 사상
중생구제의 종교적 사명의 실현이라는 점에서는 확실히 부처님 자신이 정치성을 띠고 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불교의 사회성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선 불교의 상가(僧伽)에 대해서도 정치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낯설지 않다. 즉 “기존의 상황을 될 수 있는 대로 이용하여 불교의 자세와 원리들을 널리 채택하는 데에 보다 유리할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의 발전을 고취코자 하여 잠정적인 계획”으로서 상가를 구상했다(Trevor Ling의 《The BuddhaX) 거나, “상가의 구성원은 물론이고 인류의 선을 위해 붓다가 확립한 것이 민주주의 제도이다”(jayaIilleke의 《The Principles of InternaIional Law in the Buddhist Doctrine〉)고 하는 것이 그런 시각이다.
불교의 근본 성전을 토대로 하여 나름대로 위와 같은 견해를 표명하고 있는데, 그런 정치적 시각에 선뜻 수긍할 수 없다 하더라도 초기의 성전들이 전하는 부처님에 대한 일화나 불교의 사회관(社會觀)은 불교 나름의 정치 사상을 표명하고 있다. 정치학 관계의 사전에 의하면 “정치 사상은 철학적 문제의 연구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사상가들과 그들의 이념에 관심을 집중하며, 또는 정치적 이론이라도 경험적이거나 분석적인 이론의 발전에는 관심을 쏟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런 의미에서 불교의 정치 사상은 교의상 부수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불전(佛典) 속의 도덕적 교훈 속에 담겨져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보면 율장(律藏)은 물론이고 경장(經藏)의 곳곳에 불교의 정치 사상이 산재해 있으며, 그 중에서도 최초자경․전륜왕사자후경․구라단두경(究羅遭頭經) ․육방예경 동은 본격적으로 정치 사상을 피력하는 불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처님 자신이 정치 사상을 피력한 가장 유명한 예는 장아함 권2의 유행경(遊行經)에 나와 있다. 거기서는 마가다국의 왕이 맛지 공화국을 합병하기로 결심하고 부처님께 사람을 보내어 조언을 구하는데, 부처님은 제자 아난에게 핫지국의 사회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질문하여 긍정적인 답변을 얻음으로써 그 사회의 건전함을 입증했다. ‘공화국의 사업을 합심하여 수행하고 있는가? 자기 종족의 오랜 관습에 합당하게 행동하는가? 윗사람을 부양하고 공경함은 물론 필요할 때마다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가? 여성과 타종족에 대해 부당한 행동을 삼가하는가? 조상들의 사당을 보존하여 예법을 지켜 제사를 지내고 있는가? 성인(聖人)을 보호하여 부양하고 있는가?” 한편 증일아함의 권42 결금품(結禁品)에서는 사회에 법을 적용시키는 주체로서 국왕이 지녀야할 10가지의 덕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주로 통치자로서의 올바른 품격․자세와 정책의 원리에 관한 것이다.
앞에서 말한 엘리아데의 「종교대백과」 에서는 종교가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네 가지 방도로서 경건성(신앙심)․정체(政體)․정책․정치적 행위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위의 불전의, 내용은 4방도 중 정치적 행위를 제외한 세 방도에 관한 것이라 파악된다. 현재의 상황이 그렇듯이 결국 불교와 정치와의 관계에서 주목되는 것은 정치적 행위에 관한 문제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적 행위란 종교와 유사한 정치적 조직을 의도적이고 특수하게 형성하는 것이다. 이는 종교적 신앙․정체․정책에서 기반을 마련하여야하며, 그런 기반으로부터 정치적 수단을 통해 직접적으로 정책에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시도한다. 그러나 역사상 그러한 운동의 예는 많이 발견할 수 있지만, 고도의 종교적 합의가 이미 현실화될 때, 정치 자체가 신성화될 때, 사회제도가 그러한 발전에 상대적으로 개방될 때에만 그것들은 효과적이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무엇보다도 주목해야만 한다.
결국 불교를 포함하여 종교는 정치적 행위로써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위와 같은 조건(사회적 분위기)을 조성하는 데에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는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불교 역시 아무리 정치와의 무관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불교 고유의 목적 실현을 위해서는 간접적으로나마 정치적 행위를 하고 있으며, 또 그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선택적 당위성의 문제가 아니라, 적어도 역사적으로 둘러싼 종교의 속성상 그렇게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체 내의 정치 시장을 다듬고 개발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아울러 “만약종교가 잘못된다면 그에 잇따라 위험한 정치가 일어난다”는 충고를 항상 명심해 둘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