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거처는 서적들이 빽빽하게 사방의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어 한눈에 ‘공부하는 스님의 방’임을 실감할 수 있다. 마침 스님은 노보살님 한 분을 배웅 중이셨는데, 소매춤으로 눈가의 물기를 닦아내며 “스님, 우리 아들, 꼭 극락왕생케 해주세요” 하면서 나갔다.
노보실에 떠난 그 자리에 서서 스님은 혼잣말처럼 천정을 바라보며 허하게 말씀하신다.
“내게 신통이 있으면 참 좋겠어. 젊은이들 죽는 건 정말 딱하고 마음이 아파. 자녀들 대학 보내겠다고 간절히 기도하는 신도들의 정성을 보아도 다들 대학에 보내주고 싶고… ”
송산스님은 이 나라에서‘불교 사회복지에 관한한 학문적으로 널리 알려진 분이다. 사회복지라는 것이 기독교 계통의 자선단체를 중심으로 이뤄진 줄로 여기는 사회에 불교계가 오랜 역사 동안 이 땅의 복지를 담당해왔고, 어렵고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해왔음을 정리하고, 그 사회복지 문제를 체계화, 집대성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처음 재를 지내는 분도 아니련만, 나이든 보살의 아들 잃은 슬픔을 함께 아파하는 ‘스님을 보니, ‘불교사회복지’로 평생을 걸어오신 스님의 소탈하고 정 많은 ‘천성’ 탓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스님은 ‘사회복지’를 이렇게 정의한다.
“사회복지란 작게는 고아, 불우노인, 소년가장, 장해자 등을 위한 안락한 삶의 구현이지만 실제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상대적 빈곤감으로 인한 비행 청소년의 문제, 각종 범죄행위 등 사회불안 요소들을 소멸시키고 안정을 되찾자는 의미지, 인간성이 회복되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며 살 수 있는 정토의 건설이라고 볼 수 있지.”
신라, 고려, 조선시대를 거쳐오는 동안 불교계가 앞장서서, 절 마당 안에 솥 걸어 놓고 빈민을 구제한다던가 방역사업을 한다던가 하는 등의 활발한 사업을 펼쳤음에도 오늘날 그 맥이 끊긴 것이 무척 아쉽다고 스님은 전한다.
미국이란 나라가 한손엔 구호물자, 한손엔 기독교를 들고 이 나라에 온 이후로 기독교적 사랑이 전파되면서 오히려 기독교 쪽의 복지사업은 대량으로 확산되었다. 그래서 몇 해 전 송산스님께서 집계한 통계만 보아도 일천이백여 개외 복지시설 가운데 스물여섯 군데의 불교시설을 제외한 나머지가 기독교계의 것이다. 하지만 스님은 낙관하는 모습이다. 그건 ‘꼴’을 제대로 안 갖춰서 그럴 뿐 질로나 양으로나 불교계가 그래도 제 일을 한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웬만한 사찰치고 의지할 곳 없는 노인 분들 안 계신 곳이 없어. 애들 너덧 명 자라지 않는 절도 없구. 크고 작은 사찰, 암자 할 것없이 말야, 만약 전국 규모를 추산해 본다면 엄청난 규모겠지. 또 내용에 있어서도 그렇거든. 부처님 말씀에 의지해 자비심 배우면서 구김살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과 그저 종치면 식사하고 종치면 기도하는 아이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있거든.”
게다가 승가대나 동국대의 사회복지학과에서 불교사회복지를 꿈꾸며 학문에 정진하는 젊은 스님네들의 뜨거운 열기까지 존재하니, 머잖아 많은 것들이 현재 부족하기만 한 불교계에 ‘복지’의 새바람이 불어 올 것임엔 틀림없다.
발심이 뭔지, 불교가 뭔지도 잘 모르던 열여섯살, 그 시기는 전쟁이 막 끝나 사회적으로 혼란스럽던 시기였다. 막연히‘ 절에 가면 사회에서보다 사람답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하나만 들고 범어사로 와 하동산스님의 상좌가 되었다. 그때 일을 돌이켜보면 스님은 “기특하게도 참 잘 생각한 일”이라 여긴다.
그곳의 불교전문 강원을 마치고 입승을 보던 때의 일이다.
“낮엔 부엌에서 불 때주고 밤이면 처마 밑에서 자곤 하는 사람이 있었어. 그 당시는 스님들 잘 방도 여의치 않을 무렵이었지.졸업하면 주지스님께 내복이나 벼루 등을 선물해왔는데, 내가 제의를 했어.
‘큰스님은 우리가 선물해드리지 않더라도 부족함이 없으시지만, 밤에 잠자리가 없는 이에게 집을 지어주면 얼마나 좋은가’ 했지. 결국 돈을 모아 그이에게 작은 방을 마련해줬어.”
비록 물질적으로 어렵던 시절이건만, 부처님 제자가 된 이상 그늘진 곳을 위해 일하는 게 ‘승려의 삶’이라는 인식으로 기쁘고 신나는 ‘선업’을 닦았다. 경전 자체가 사회복지사상과 일맥상통하고, 부처님 말씀 자체가 ‘중생구제’ 라고 파악한 스님은 부처님의 자비행을 몸소 실천하는 보살이 되고자 사회복지 쪽으로 관심을 두었다.
강원공부로는 성에 안 차 동국대학교에 입학했다. 입학생들보다 열세살이나 많은 나이로 공부를 하는 데에는 어려움도 컸다. 사람의 마음이란 항상 정진심이 있기보다 퇴보심이 앞서기 마련이다. 그때마다 스님은 ‘불교란 이념이 아닌 실천을 전제로 한 이론이다. 보살심 발하고 이웃을 부모 형제로 여기지 않으면 참공부 이루기 어렵다’며 늘 자신을 채근했다. 그런 심정이 마침내 여섯해동안의 일본 유학도 성공으로 이끈 것이다. 일본 경도대학에서 불교사회복지를 전공한 스님은 귀국 후 지금까지 중앙승가대학에서 강의를 맡고 있다. 그리고 현재 사회복지학과장직도 겸하고 있다.
“학문을 하면서 가장 화가 났던 일은 고문헌을 뒤질 때야 고려사 편찬가들이 불교적 내용을 의도적으로 빼버려 가물에 콩나듯 자료를 찾아야 했어. 일본에서 수집한 자료 속에서 우리나라에 없는 귀한 자료들을 많이 찾아내 책으로도 냈지.”
학문의 성과물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수권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최근엔 늘어가는 자살에 관한 얘기로 자살방지론 등을 간행할 예정이다.
앞으로 스님은 최소한의 뒷받침만 이루어진다면 ‘불교계의 복지시설’을 대표할 만한 그런 시설을 운영해볼 생각이다. 복지문제를 전공으로 한 스님들을 종사케 하고, 최신 과학장비에 부처님 말씀을 전해주는 그런 시설이라면 성공적인 복지시설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스님은 젊은 스님네들이 주축이 돼 불교의 민주화,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애써온 승가단체인 ‘대승불교승가회’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불교인들이 너무 보수적이야 자비정신을 지키는 건지, 줏대가 없는 건지 얻어 맞어도 큰소리 한번 못 내잖아 사회에 대해서도 무관심하고 그런 걸 보면 아주 속이 답답하지. 내 나이에도 말야. 그런 의미에서 난 대승불교승가회나 정토승가회 등의 단체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불교의 소외된 부분을 사회에 알리고 진보적으로 활동하고 있잖아.“
스님은 스님 세대에 비해 생각이 진보적일 수는 있지만 실은 젊은 스님들을 따라가기는 벅찬 게, 이마도 세대차인 것 같다며 웃는다.
승가회 사무실에서 일하는 젊은 스님들과 청년불자들이 보수도 없이 땀흘리며 일하는 모습을 보면 고맙게 여기면서도 ‘내가 회장 역할을 변변히 못 하는구나’하는 자책감도 느낀다. 요즘은 ‘종교도 돈이 있어야’ 제대로 활동한다던가. 교통비라도 넉넉히 쥐어주며 불국정토의 구현을 위해 애쓰는 그네들을 제대로 격려하지 못하는 것 같아 스님은 마음이 몹시 아프다.
이번에 대승불교 승가회에서는 전국의 스님들을 대상으로 ‘한국승가의 의식 및 실태에 관한 설문조사’를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선원이나 강원에 거주하는 스님들 육백오십삼명이 보내온 설문지를 분석한 결과 예상 밖으로 전반적인 의식이 진보적이며 대 사회적인 부분에 적극적인 모습을 드러내 이 나라 불교의 앞날을 보는 듯 많은 불자들을 기쁘게 했다.
이 결과로 대다수의 스님들은 교육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종단개혁을 주도해 나갈 대중의 신망받는 주체 형성을 원하고 있는 것이 드러났으며 소외된 계층에 대한 복지사업과 사회문제 둥의 민족적 과제해결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동의 사회참여 문제에도 높은 관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분적으로 보수적인 관점도 있긴 하지만 칠십삼 퍼센트의 스님들이 주한미군철수를 지지하는 등의 진보적 반응은 그동안 패배의식에 젖어있던 만불자에게 불교인으로서의 자긍심을 확인시켜준 계기였고 대중의 신뢰받는 승가의 건설에 확신을 심어준 데 그 의의가 있겠다.
송산스님은 다수의 스님네들이 종단개혁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는 건 종단에 대한 애정의 반영이라고 본다. 그래서 중진스님들이 더욱 분발해야된다고 말한다.
“기성세대들이 다음 세대들을 격려하지 않은 채 무사안일로 지내는 경우가 많았지. 그러나 불교의 소리를 드높이는 일에는 소장, 중진이 따로 없거든. 스님들이 수행에 정진하는 일만큼 중생교화에 힘쓰고, 신도들도 제복짓는 일만이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어 갖는 ‘참 불자의 행’을 행해야 해. 그래야 불교가 세상에서 대접받게 될 걸세.”
중생을 구제하라 이르신 부처님의 가르침과 인간을 복되이 살게 하자는 사회복지이론이 결코 둘 아님을 아는 스님이기에 스스로가 공부하며 가르치는 일과 젊은 스님들과 머리 맞대고 불교계의 개혁을 꾀하는 일 또한 절대 둘이 아님을 잘 안다. 관습과 권위주의의 낡고 빛 바랜 껍질을 벗고 화합하는 승단으로서 이 땅 위에 제 역할을 다하는 불교의 참모습으로의 지향은 마침내 복지사회, 정토의 구현을 향한 길 닦음인 까닭이다.